“IMF가 예상치 못했던 경험을 하게 하네요”
인천에서 하던 사진관 팔아치운 정완씨(38)네는 99년 표선으로 들어올 때만해도 전혀 연고도 없었다. 처음에는 마을사람들이 마음의 빗장을 꽉 닫은 채 얘기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부인 홍광희씨(32)는 남편에게 다시 인천으로 가자고 졸랐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이웃의 냉대를 받는 것은 이들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이다. 1년이 지났다. 달라진 것이 많았다. 젊은 이 부부가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타향에서 애쓰는 것이 여간 안쓰럽지 않았던 것일까. 감귤철이면 콘테이너 채로 귤은 담아다 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마치 제 친족처럼 인정을 베풀었다. “정 한번 받기까지 힘들고 외로웠는데 이제는 정말 이 곳이 내 고향이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요즘 감귤가격이 예전 같지 않아 이 곳 사람들은 결혼사진도 개인사진, 단체사진 구분하지 않고 간소하게 1판만 찍는다. 인천서 사진관 할 때보다 경영하기 더 어렵다. 그러나 평생 살집을 짓고 두 아이가 탈 없이 자연과 벗하며 노는 게 그지없이 좋단다.
◈억새회 회장 최달민씨
“26년간 직장, 사업 등을 하다 지난 IMF때 이래선 안되겠구나 싶더라구요”
최달민씨(45)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성공하려고 올라간 타지에서 삶의 쓴잔을 마시고 방황해야 했다. 그러던 그는 마음 한구석에 숨겨놓은 고향을 떠올렸다. ‘그래 이젠 됐다. 조금 벌지만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자’ 땅은 거짓말하지 않음을 믿고 4년 전 고향인 표선면 세화 1리 땅을 밟았다. 남제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사짓는 기술을 배우고 농사자금을 지원 받아 콩과 유채를 심었다. 3200평 노지에 귤을 경작했을 때엔 ‘이젠 농사꾼 되겠구나’하는 보람도 있었다. 그 해 가격은 폭락하고 첫해수확의 쓴잔을 다시 마셔야 했다. 자신과 같은 귀농인들의 시름도 깊었다. 뭔가 필요했다. ‘경제적인 도움은 못되더라도 농촌의 훈훈한 인심을 서로 베풀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보자’뜻대로 되지 않다가 지난 해 말에야 비로소 뭉치게 됐다. “모진 바람에도 꿋꿋한 억새가 되자고 모임명칭을 "억새회"라 지었지요” 최씨는 즐겁다. 점점 농촌을 떠나는 요즘 세태에 오히려 먼 미래를 생각해 들어온 그와 억새회 회원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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