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어디선지 연기가 피어오른다. 좁은 돌담길을 지나니 새로 지은 집 앞에서 여러 사람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그리고 고만고만한 키의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

표선 귀농인 모임인 ‘억새회’의 젊은 회원이 이곳에 정착한지 4년 만에 꿈같은 내 집을 갖게 돼 여는 축하파티다. 작은 마당은 금새 사람들로 북적댄다. 모임 회원들은 물론 마을사람, 성당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제 집 생겼으니 평생 소원 풀었네”하며 함께 기뻐한다.

#IMF가 말이죠, 귀농에 불을 당겼단 말이죠

2000년 11월 7일. 이 날은 표선 13개 마을에 정착한 귀농인들의 모임 ‘억새회’가 발인된 날이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주축 된 귀농인들은 농사를 짓거나 직장, 가게 등을 운영하면서 살고 있다. 77가구 중 제주연고자 20명을 제외하면 모두 외지인이다. 여기서 45%는 농사를, 20%는 직장, 나머지는 주낚배를 타거나 일일노무직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귀농인 80%정도가 남제주군기술센터(소장 김영철)에서 농사기술지도를 받고 농촌정착자금을 받았다. 주로 밀감과수원을 하고 이외에 양계장, 채소작물, 배하우스 등을 하고 있는데 내년에 첫 수확을 걷는 가구들이 많다. 아직은 투자 단계라 힘겹지만 ‘어디에서 이런 구슬땀을 흘릴 수 있나’를 늘 염두에 두고 경작에 힘 쓸 뿐이다.

외지에서 장사를 했거나, 직장생활 하던 그들에게 있어 제주는 ‘환상의 섬’ 그 자체였다. IMF는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초 살인적인 현실이었으나 가족을 이끌고 제2의 고향을 향해 올 때만해도 휴가 받은 기분을 안고 왔다. 그러나 웬걸? 표선까지 흘러 들어온 이방인에게 토박이들은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그러쥐었다. 이웃들은 언젠가는 떠날 사람들이란 생각에 정을 주기는커녕 냉담한 시선으로 그들을 쏘아봤다. 표선의 귀농인들은 외지인이란 것, 연고가 없는데서 오는 허탈감을 달래야 했다. 그러나 정 드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한 것. 이제는 형제처럼, 부모처럼 정을 담뿍 담아주는 이웃들이 있기에 이들은 힘을 얻었다. 제주인의 인정, 어디 외지 인정에 비교될까. 현재 8가구가 외지에서 더 들어와 현재 84가구가 됐다.

억새회 회원들은 빈집을 소개해 주고 토지 임대를 싸게 해 주거나 농사기술 등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면서 공동체 못지 않은 결속을 다지고 있다. 자녀있는 귀농인들은 군에서 집 수리비 200만원을 지원받는다. 그리고 빈집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싸게 임대해주고 있다.

#각자 자리에서 나름의 철학으로 가꾸고 배우고

32년 간 직업군인으로 객지를 떠돌던 홍호교씨(58)는 97년 표선리로 와 오일장에서 옷 장사를 하고 1000여 평되는 땅에 유기농법으로 귤농사를 지었다. “꿩 똥, 한방약재 등의 거름과 영양제를 준 덕에 올해 귤의 당도가 12∼13브릭스로 나와 수확에 보람을 느꼈다” 홍씨는 “현실여건에 맞는 농사기술을 배우고 싶다. 귀농인들에게 필요한 농사기술과 정보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현씨(43·성읍 2리)도 대구에서 6년 전에 와서 24000평 땅에 무공해로 무를 비롯, 채소 농사를 지었다. 올해 수확한 무는 육지와 일본 등지로 수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박씨는 “작년 풀벌레 때문에 채소 농사를 망쳤는데 나의 무공해 고집이 모처럼 빛을 본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이외에도 배를 타거나 직장을 다니거나 일일노무직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가정이 많다. 이렇게 아웅다웅 살면서도 인정받은 만큼 베풀려고 야학선생을 자처하거나 교육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양화가 김창웅씨(58·세화 1리)는 방학때마다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사군자지도를 해주고 있다. 홍선미씨(35·세화 2리)는 밤마다 초·중학생들에게 영어를 지도해주고 있다.

귀농인들은 한파가 몰아칠 이번 겨울이 결코 춥지 않을 거라 입을 모았다. 가족들이 따스한 집에서 겨울을 나고 새 생활에 부푼 꿈도 꿀 수 있게 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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