ࢲ 스탕달의 ㅂ적과 흑

 

▲ 칼스피츠베그 작 '신분증 좀 봅시다'

신분상승을 생존 목표로 꿈꾸던 청년의 야망과 추락 그려
의사·검사 등 획일화된 성공 가치 쫓는 현시대 모습과 닮아

새봄이 움트고 있다. 겨우내 헐벗었던 마른가지에도 좁쌀만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생명이 그 안에서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경이롭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마저 무심하게, 아무런 감동 없이 늘 있어왔던 하나의 과정으로만 여기는 것 같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과 오감훈련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
다. 오늘 아침, 본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 것도 본 게 없어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눈을 감고 있었구나 고 혼잣말처럼 했더니, 그런걸 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무엇이 우리 눈을 가로막고 있을까? 하고 다시 물으니 공부 때문에요 라는 대답을 한다.
학생들에게 꿈을 써보라고 했더니 하나같이 의사, 검사, 변리사, 교사 등사 자 돌림으로 적어냈다. 그들에게 꿈은, 희망직업을 뜻하는 것이며 그것은 의사가 되고 검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꿈이 잘못됐다기보다는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에 숨이 막혀온다. 마치 출세 길이 군인이 되거나 성직자가 되는 길밖에 없었던 19세기 초 프랑스 왕정복고 시대를 연상케 한다. 시대의 편향된 가치로 인해 한 개인의 욕망이 높은 곳으로만 향하다가 끝내 추락하게되는 현실을 그린 작품이 있다. 바로 스탕달의 적과 흑 이다.

적과 흑 은 1829년 프랑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치정 사건인 라파르그 사건과 베르테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단순한 정치소설이나 연애소설이라기보다 왕정복고라는 반동적인 정치형태의 사회에서 살았던 스탕달의 통렬한풍자 소설이다. 여기서 적 은 군대,흑 은 성직자의 길을 암시한다.

이 작품이 쓰인 시기에 정국은 실정과 부정, 혼란으로 점철되면서 권력을쥔 군인과 성직자들의 아귀다툼이 절정을 이뤘고, 국민들의 원성과 반발은 극도에 달했다. 타고난 신분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포기 해야만 했던 국민들 사이에서 신분상승을 위한 욕구가 분출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사건들도 심심찮게 발생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베리에르라는 가상의 도시, 그곳에 가난하고 괴팍한 제재소 주인의 아들 쥘리엥 소렐이 있었다. 그는 집안환경과 달리 귀족적 용모를 타고 났으며 책 읽기를 좋아하고,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베개 밑에 숨긴 채 출세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는 청년이었다. 쥘리엥은 돈과 명예만을 중시하는 귀족계급을 증오하면서도 자신의 출세를 생존의 목표로 삼고 성직자의 길을 갈구한다. 그러던중에 그의 총명함과 라틴어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안 레날 시장은 그를 자기집의 가정교사로 들인다.

그런데 시장의 부인인 레날 부인은쥘리엥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영특한 쥘리엥은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렸고, 그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은 그녀의 사랑을 거머쥐는 것으로부터 어떤가능성을 감지하게 된다. 특정 계층에 대한 증오심으로 시작한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느새 뜨거운 사랑으로 변 했지만 둘의 관계는 발각되고 만다. 쥘리엥은 레날 부인을 떠나 브장송의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신학교 교장의신임을 얻어 권력가인 라몰 후작의 비서로 들어가게 된다.

라몰 후작은 곧 쥘리엥의 명석함을 알아보고 그를 신임한다. 쥘리엥은 사교계의 모임에 드나들면서 서서히 귀족의 풍모를 지니게 되고, 후작의 딸 마틸드는 쥘리엥에게 사랑을 느낀다. 쥘리엥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신분의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라몰 후작의 결혼 승낙을 기다린다.

라몰 후작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동안 쥘리엥에게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기병연대의 중위 자리를 얻어준다. 비로소 비천한 제재소 집 아들은 기사 쥘리엥 소렐 드 라베르네이로 승격하게된 것이다. 성공이 눈앞에 와 있었다. 그런데 쥘리엥에게 마틸드로부터 급히 파리로 돌아오라는 전갈이 온다. 레날 부인의 고발 편지 때문에 후작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레날 부인은 고해 신부의 강권에 못이겨 쥘리엥의 부도덕함을 고발하는 편지를 라몰 후작에게 보냈고 이를 알게 된 후작이 결혼 반대를 선언했다. 분노에 휩싸인 쥘리엥은 베리에르로 달려가교회에서 미사에 참석한 레날 부인에게 권총을 쏜다. 체포돼 투옥된 그는 재판의 날을 기다린다. 마틸드는 매일같이 쥘리엥을 찾아 면회를 하고, 죽었다고 생각한 레날 부인도 쥘리엥의 부주의 한 행동을 용서한다는 탄원서를 배심 원들에게 제출한다. 후작에게 보낸 편지도 레날 부인이 쓴 게 아니었고, 신부에 의해 조작된 음모였다.

쥘리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배심원 만장일치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마틸드와 레날 부인은 상소할 것을 간절히 원하지만 쥘리엥은 죽음을 원한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막 머리가 잘리려 하는 이 순간 처럼 시적(詩的)인 감상이 떠오른 적은 생전에 없었다. 한때 베리에르에서 레날 부인과 지낸 아름다운 추억이 한꺼번에 뒤얽혀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결국 쥘리엥은 사형에 처해졌고, 쥘리엥이 죽은 사흘 뒤 레날 부인 역시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죽고 만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대귀족의 비호없이는 출세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잊지말게. 자네 성격엔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려운 뭔가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자넨 출세를 하지 않으면 박해를 당하게 될걸세. 자네에겐 중용이란 게 없거든. 자네가 앞으로 활동할 사교계에선 남의존경을 받게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하든지 두 갈래 길밖엔 없다네.

(중략)

어쩌면 죽은 후에도 감각만은 남아있을지 몰라. 그렇다면 나는 베리에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마루에 있는 동굴에서 쉬고 싶어. <쉰다>는 말이 꼭 지금 내심경을 표현하는 말이야. 벌써 여러 번자네에게 말했지만 나는 밤중에 그 동굴 속에 숨어서 프랑스에서도 가장 비옥한 그 지방을 내려다보며 야망으로 가슴을 불태우곤 했거든… 아무튼 나는동굴이 그리워. 옳지! 브장송의 수도회 양반들은 돈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분들이니까. 자네가 잘만하면 내 시체를살수있을 걸세….

쥘리엥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라고 한 자크 라캉의 말을 환기하게 된다. 성공하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갖는 욕망이다. 인간은 자존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인이 되거나 성직자가 돼야만 성공이라고 하는 관념은누구로부터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사회가 주입한 관념이며 사슬이다. 쥘리엥은 사회가 만들어낸 관념에 스스로 종속되고 말았고, 끊임없이 급류에 휩쓸리다 추락하고 말았다. 자기 스스로 창조한 관념이 아닌 것으로 하여 끊임없이 종용되고 종속되는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끝은 자명한 것이다.

이로부터 현 시대 우리 삶의 단면을 또한 본다. 성공에 대한 가치가 천편일률적으로 주입되고 있기에 자라나는 학생들마저 의사가 되고, 검사가 돼야만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래서 열심히 책상머리에 앉아있지만 공부가 재미있거나 행복하지 않다. 주변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누가 아파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과연 살아있는 삶 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레밍족을 떠올리게 한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 또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향하여.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1783~1842,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 은 필명이며, 본명은 마리앙리 벨(Marie-Henri Beyle) 이다. 7세 때 어머니를 잃은 그는 애정을 주지 않는 완고한 아버지, 위선적이고 까다로운 숙모, 엄격하기만 한가정교사 신부 밑에서 굴욕적이고 증오에 찬 소년시절을 보냈다.

대신 어머니 쪽 친척인가니용 가의 사람들로부터 정신적 영향을 받으며 자랐는
데, 그 중에서도 외할아버지로부터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나폴레옹 군에 입대하였으나, 1814년 나폴레옹이 추방되자 군대를 그만두었다. 모차르트 로시니의 음악과 이탈리아 미술을 좋아하였으며, 각지를 여행하면서 소설 평론 여행기 등을 썼다. 정열적인 이탈리아의 풍물을 사랑하였고, 자신처럼 아무것
도 구속받지 않고, 자기의 행복을 쫓 는 정열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썼다.

△주요작품
연애론 De l amour (1822) 라신느와 셰익스피어 Racine etShakespeare (1823~1825) 아르망스 Armance (1827) 로마 산책 Promenade dans Rome (1829) 적과 흑 Le Rouge et le Noir(1830)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 Viede Henri Brulard (1835~1836)파름므의 수도원 La Charteuse deParme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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