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 24.의귀리공동목장①

케릭터·승마장·에코힐링 마로 건립 등 사업 활발
말 활용 체육대회·승마교실 등 이미지 강화 추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는 조선시대 우수한 말을 사육해온 '제주마의 본향(本鄕)'이다. 특히 의귀리에서 교래리까지 광대한 목장을 활동무대로 1만여마리의 말을 사육하며 국란이 있을 때마다 국가에 헌마로 공을 세운 '헌마공신' 김만일(1550~1632)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졌다. 의귀리는 이같은 마을의 역사를 살려 김만일의 구심점으로 말을 테마로 한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며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김만일 산마장 위치…현재는 소 사육
민오름 일대 330만㎡에 달하는 의귀리공동목장(조합장 오문식)은 과거 조선시대 우수한 말을 사육하던 마장 역할을 맡아왔다.
의귀리 목장은 특히 '산마장'으로 말사육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조선시대 최대의 말 생산기지였던 제주에는 국영목장 10곳이 있었지만 의귀리출신 김만일이 운영한 사목장은 국영목장을 압도했다.
김만일이 말을 사육했던 장소는 9소장과 인근의 산마장으로 추측되고 있다.
의귀리가 발간한 「의귀리마을지」는 "실질적으로 의귀리 지역의 산간쪽으로는 9소장이 위치해 있다. 현재도 이 일대는 목야지로 구성돼 있어 축산이 발달하기 좋은 곳이다. 김만일은 이러한 지리적·기후적 조건을 활용해 목축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을지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지역은 현재의 반데기왓(반득전), 민오름, 물영아리 일대로 보이며, 9소장에서 말을 방목하기 시작한 이후 번창하면서 효종 9년(1658년)에 설치된 산마장 지역으로 방목지를 넓혀간 것으로 보고 있다.
산마장은 현재의 남원읍(9소장), 표선면(10소장), 조천읍(2소장) 등의 한라산 중턱 위쪽 200여리에 걸쳐 해발 400m이상의 초지와 산림지대에 분포돼 있었다. 그후 숙종과 영·정조 때에는 침장, 녹산장, 상장으로 개편됐고, 녹산장내에는 갑마장이 들어섰다. 지금도 이곳은 목장지대로 우마가 방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말은 밭갈이와 밭볼리기 등 밭농사에 필수였고, 향교 방문이나 외부 출타시 교통수단으로도 이용됐다. 집안의 중요행사인 혼인식 때에 신랑이 말을 타기도 했다.
의귀리에서 번성했던 말 사육은 1960년대를 정점으로 1970년대부터 농기계와 자동차의 등장으로 사양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종을 이루는 가축은 소로 바뀌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거의 소를 사육했다.
노동력 제공에서 육우로 소의 용도가 바뀌면서 체구가 큰 외국산 육우 품종도 도입, 거의 모든 소들이 고기량이 많은 교잡종으로 바뀌어 제주 전체가 육우를 사육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도 이들 품종 후손 일부가 사육된다.

의귀리공동목장의 주요 역사유적 및 지명으로는 진구슬목장과 경계를 이루는 중잣성, 의귀마을 목장의 남쪽 경계인 하잣성이 있다.
잣성은 의귀 마을 목장 지역이 조선시대 산마장 지역으로 말을 방목하는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말이나 소가 다른지역으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울타리 역할을 했다.
산마장으로 목장경계 지역에 상잣·중잣·하잣성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목장내 구역을 구분하는 간장담은 현재 시멘트 기둥과 철조망을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주민들을 동원해 담을 쌓았다. 마을 공동목장은 19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기르던 소를 봄부터 가을까지 방목하던 중요한 공간이었다.
의귀마을공동목장내 중요한 자연식수원인 '물나는 이멩이'도 있다. 이곳은 목장 주변 유일한 샘물로서 매우 중요했다.
샘물은 목장이나 화전생활의 급수원으로 뿐만 아니라 매년 목장내에서 치러지는 백중제를 지내기 위해 쓰이는 정한수로 쓰이기도 했다. 제를 모시기 2~3일 전에는 일반 주민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성을 들인 후 이 물을 길어다가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백중제를 지냈던 장소는 '장제동산'으로 그 위치는 현재 마을 공동묘지 뒤쪽 언덕이다. 10년 전까지 목초지였지만 가축사육두수가 줄면서 현재는 소나무가 무성한 산림지역으로 바뀌었다.
백중제는 마을목장에 사육농가를 중심으로 매년 음력 2월20일에 목장내에서 지내는 등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목장내 물 공급원으로 봉천수를 파기도 했다. 여름철 흐르는 물을 담아두었다가 소들이 먹을 수 있도록 민오름 동남쪽 등 목장내 3~4곳에 만들었다. 현재는 상수도 발달로 1곳만 활용되고 있다.
김만일·말 테마 마을발전사업 추진
의귀리는 '제주마의 본향'이란 자부심을 계승하기 위해 말을 테마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첫 사업으로 2008년 4월25일 의귀리 마을회관 앞마당에 박경훈 화백이 디자인 한 '제주마의 본향 - 의귀'라는 표석을 세웠다. 또 말을 형상화한 엠블럼과 캐릭터, 마을기도 제작했다.
이듬해에는 의귀청년회가 창립30주년을 기념해 제2의귀교 인근에 말 조형물을 설치했다.
또 말을 활용한 지역 소득 창출과 관광 인프라 확충을 위해 '의귀마을영농조합법인'을 설립, 말 테마 체험마을로 육성해나가고 있다.
마을영농조합법인은 먼저 목장의 중심인 반데기왓 옆에 승마장과 교육장을 만들어 현재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목장을 돌며 힐링과 레저 등 특색있는 승마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에코 힐링 마로(馬路)'도 조만간 개설할 예정이다.
임진왜란·정묘호란 등 국난극복에 공헌한 김만일을 재조명하는 사업도 함께 펼치고 있다.
김만일은 탁월한 목축능력으로 한라산 중턱의 광활한 목장에서 수천필의 말을 키우면서 국가가 필요할 때마다 말을 바쳐온 공로로 인조 5년(1628년) 종1품 승정대부에 제수되고 헌마공신으로 칭송되고 있다.
의귀리는 이처럼 말 사육과 헌마를 통한 나라사랑과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킬 수 있도록 김만일 묘역 진입로 정비와 함께 마을연구소 설립, 동상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도 의귀리는 납원읍 체육대회 개회식에 말을 타고 입장하는가 하면 의귀초 4~6학년을 대상으로 승마교실을 운영하는 등 제주마의 본향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사업을 지속추진하고 있다. 김봉철 기자 ▲자문단=강만익 문학박사·문화재 전문위원, 좌동열 문화관광해설사.

의귀리 공동목장은 조선시대에 9소장과 김만일 개인목장, 그리고 산마장(녹산장)으로 이용되던 곳에 일제시기에 형성되어 현재에 이른다.
의귀리에는 「공동목장관계철」(1943)에 의하면, 2개의 공동목장이 존재했다. 제1목장은 1933년 11월10일에 설립된 것으로, 1943년 당시 조합원수는 133명이었다. 이 목장은 민악(민오름) 하단부에 발달한 산 158번지 일대의 초지대를 목장조합에서 매입해 형성된 후,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1목장 경계 내에 있었던 한남리 산85번지와 수망리 산158-2번지에는 여름철 더위를 피하기 위한 피서림, 한남리 산84번지 면유지에는 급수장이 있었다. 특히 수망리 산158-1번지에는 물을 모으기 위한 집수장과 목장을 관리했던 목감의 임시거처였던 감목사(監牧舍)가 있었으나, 현재는 집수장만 남아있다.
특히 공동목장 내 민악 남사면에 있는 집수장 부근 일대는 조선중기 '헌마공신' 김만일(金萬鎰)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반득전(班得田)'이 있다. 이곳은 제주를 대표하는 명당터로 알려졌으며, 현재 이 명당터에 의귀마을공동장이 위치하고 있다.
한남리 산84번지와 수망리 산117번지는 남원면 소유의 토지였다. 제2목장은 현재 물영아리오름 부근에 위치한 더클래식 골프장 인근에 위치했었다. '진구술' 목장으로 불렸던 이 공동목장은 1936년 10월 9일에 설립되었으며, 이곳을 이용했던 조합원들은 52명이었다. 진구술 공동목장은 52명이 단체로 소유했으며, 해방 이후 개인에게 매각됐다.
현재 민악 일대의 의귀리 공동목장에서는 김만일과 승마장 운영을 중심으로 하는 옷귀테마타운을 조성해 용틀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