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의 유래를 찾아서 26.화북동

▲ 화북동은 옛날 제주 목사가 부임할 때 이용하던 해상교통의 요지로 제주의 관문 역할을 했다. 사진은 별도봉에서 바라본 화북동 전경
농·어촌, 도시, 공업지역 공존 제주 동부 중심축
공업단지 환경문제 그림자...주민 갈등 해소 과제

화북동(禾北洞)은 현재 농·어촌과 도시, 공업지역,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이 공존하는 제주 동부의 중심축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현재 법정동으로 화북1동과 화북2동을 관할하고 있으며 6개의 자연마을과 5개의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이뤄졌다. 화북동은 서쪽에는 별도봉, 동쪽에는 원당봉이 있고 그 사이를 화북천이 흐르고 있다. 옛 제주의 관문으로써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화북동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마을 팽차에 따른 문제점을 짚어본다.

'화북' 이전 명칭 '별도'

화북동의 옛 이름은 '벨돗개' 혹은 '벳뒷개'이다.

문헌상 화북(禾北)이라는 명칭은 17세기 중반부터 사용됐으나 이보다 먼저 별도(別刀)라는 이름으로 쓰였다.

1653년(조선 효종 4년) 별도를 화북으로 개편했으나 1843년 화북을 다시 중좌면 별도리로 개편했고 1879년부터 1907년까지 기간에는 성적호구장에 공북리(拱北理)라고 쓰여 진 기록들이 있다.

1908년부터 화북리(禾北理)라 했고 1914년에는 제주면 화북리라 하다가 1955년 제주시로 승격되면서 화북1동과 화북2동으로 분리됐다.

1962년 제주시 40개 동(洞)이 14개 행정동으로 개편되면서 다시 화북동이 됐다.

현재 화북1동에는 벨돗개마을과 고놀개마을, 버렁개마을이 화북2동에는 거로마을과 부록마을, 황사왓마을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지명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남사록」에는 '별도포(別刀浦)', 「탐라지」·「동국여지지」에는 '화북포(禾北浦)', 「증보탐라지」·「호구총수」·「제주읍지」에는 '별도리(別刀里)', 「조선지지자료」에는 '화북리(禾北里)'라 표기돼 있다.

「탐라순력도」에는 '별도포리(別刀浦里)', 「탐라지도병서」에는 '별도촌(別刀村)', 「제주군읍지」의 제주지도에는 '공북리(拱北里)', 「조선지형도」에는 '화북리(禾北里)'·'별도(別刀)' 등으로 기록돼 있다.

별도·화북 '신역의 뒤' 의미

이들 이름의 의미와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별(別)과 화(禾)는 모두 신역(神域)을 뜻하고 별도와 화북은 '신역의 뒤'를 의미한다는 설이다.

다음은 제주도의 초북방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로 공북(拱北)이라 한다는 설이며, 세 번째 설은 별도봉 북쪽 사면이 깎아지는 듯 가파라서 별도라 부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별을 하는 나루터라는 뜻에서 별도라 했다는 설도 있다.

거로와 부록마을의 형성은 약 900년 전 맑은 셈터(속칭 절샘)를 중심으로 살기 시작해 셈터 부근에 사찰이 생긴 후부터 마을이 점차 확대됐으나 4.3사건 때 마을이 전소되는 불행을 맞아 화북1동 및 제주시로 흩어졌다가 4.3사건이 완전히 끝난 후 1954년부터 대부분 현재의 마을을 이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로마을과 부록마을은 설촌 연대로 보아 거로보다는 부록이 먼저 사람이 살았으며 부록에 살던 사람이 점차 거로까지 내려와 거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부록마을은 속칭 '부루기'라고 불리어지는데 이는 처음 이곳에 큰 사찰이 있어 '불전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불전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불우(佛宇)란 말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1702년의 탐라순력도에는 마을명칭을 부로(夫老)로 표기돼 있으며 1864년 거로마을의 양헌수 목사가 제작한 제주양씨세보에는 고조부 묘의 위치를 부록사동산(富祿寺童山)으로 기록돼 부록(富祿)으로 쓰기도 했다.

거로마을은 부록마을 사람들이 제주성이나 화북포로 가는 도로에 사는 사람이 사는 곳이란 뜻에서 거로(居路)라 하기 시작해 오늘의 마을명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탐라순력도 28도 중 제1도인 한라장촉에 거로(居老)라고 표기돼 있다고 하며 1700년대 말에 그려졌다는 고지도에는 거로촌(巨老村)으로 돼 있다.

화북동은 삼사석과 화북진성, 화북동 비석거리 등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가 많다.

특히 옛날 제주 목사가 부임할 때 육지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화북 마을은 해상교통 요지인 제주의 관문이었으며 목사가 직접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던 해신사가 있다.

제를 지내던 풍습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1년에 한 번씩(음력 1월5일) 제를 지내고 있다.

공업단지 환경오염 문제

해상교통의 요지로 제주의 관문 역할을 하던 화북동도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다.

해안에 접하고 있어 풍부한 수산자원을 갖고 있으나 영세어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어획고가 많지 않아 어업 현대화가 필요한 실정이다.

마을 곳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유입인구가 늘어나고 마을 확장으로 자연마을이 훼손됐다.

또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도 문제가 되고 있다.

화북공업단지가 위치하고 있어 이에 따른 소음과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지역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마을안길 확장사업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대오 거로마을회장


김대오 거로마을회장은 "화북동은 제주목사가 이용하던 해상교통의 요지로 농업과 수산업이 주를 이루는 마을이었다"며 "하지만 마을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교통과 환경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도로문제는 주민들의 숙원사업으로 연북로가 개통되면서 차량이 화북동 마을로 진입하는 경우가 늘어 마을안길이 큰 혼잡을 빚고 있다"며 "도로 확장 등 개선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거로사거리의 신호 주기가 짧아 봉개동 방면으로 주행하는 차량들이 정체되면서 출퇴근시간이면 난장판으로 변한다"며 "신호 주기를 늘리고 2개 차선을 확보해 차량 소통을 원활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해신사에서 매년 제를 올리고 있지만 규모면에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산신제처럼 도에서 맡아 진행, 화북동의 이벤트를 넘어 도민 모두가 참여하는 도민의 이벤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김 회장은 "화북동 일대가 공업단지로 묶여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따르고 소음과 매연 등의 피해가 막심하다"며 "행정에서 적극 나서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고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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