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최근 이 장발장의 이름을 딴 '장발장 은행'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은행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엄밀히 말해 은행이 아니다. 시민들이 기부한 돈을 갖고 대출해주며, 이자와 담보도 없다. 은행의 문턱은 없지만 아무에게나 대출해주지 않는다. 장발장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은 다음 생계 곤란 등의 이유로 벌금을 내지 못할 형편에 있거나 벌금 미납으로 인해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이다. 소년소녀가장, 미성년자,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와 차상위 계층은 심사 우선 대상이다.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이 해마다 4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권연대가 그동안 벌금제 폐해를 바로 잡기 위해 전개해온 캠페인 이름 '43,199'는 지난 2009년 감옥을 선택한 사람들의 숫자다.
장발장은행에 모인 성금액이 지난달 26일 1억원이 넘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벌금 미납으로 교도소에 갇힐 위기에 처한 시민 47명에게 총 8200여만원을 무이자·무담보로 대출해줬다. 소득 불평등이 곧 형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현실이 만들어낸 장발장은행의 모토는 '자유'다.
또다른 한국의 현실 속에서는 '자유' 대신 '감옥행'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펼친 일부 주민과 사회활동가들이 법원의 벌금형 판결에 반발해 노역형을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정당성을 잃은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벌금으로 위축시키려는 국가 권력의 남용에 맞선다는 뜻에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벌이다 벌금형을 선고 받은 시민운동가들도 과도한 액수의 벌금형에 맞서 자진노역을 선택하고 있다. 벌금이 아닌 노역을 선택함으로써 집회·시위의 자유를 훼손하는 부당한 법집행에 저항하겠다고 이들은 밝히고 있다.
장발장은행을 찾아가는 이들과 스스로 감옥을 찾는 이들은 서로 정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장발장'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