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청소년 인문학콘서트] 25 조지 오웰「카탈로니아 찬가」

▲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 '랜드 앤 프리덤' 속 의용군들.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작가의 경험 쓴 소설
이념의 대립·권력의 배반에 따른 좌절과 환멸 그려

벚꽃잎이 지고, 파릇파릇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4월은 잔인한 달 이라고 엘리엇이 노래했듯이 제주도는 4 3의 아픈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봄꽃 만발한 4월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오늘의 나를 돌아보고 내일을 모색해보는 것에 있다면, 4 3이라는 아픈 역사를 오늘에 어떻게 되새겨야 할까 마음 한구석 답답함도 없지 않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은 아닌지, 어제의 문제가 오늘에도 여전히 있는 것 같아서 더욱 그럴 것이다.

카탈로니아 찬가 는 1984년 과 동물 농장 의 조지 오웰의 작품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에 영감을 줬던 스페인 내전과 아나키즘의 실험 무대이면서 이념의 격전
장이었던 1936년의 바르셀로나에 대해 생생히 기록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내전은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등 전 세계 지식인들을 자발적으로 불러 모았으며, 2차 세계대전의 발판을 마련한 세기의 사건이다. 그런 만큼 수많은 소설과 그림, 영화의 모티브가 되고 영감을준 세기의 전란이었다 할 수 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샤르트르의 벽 , 엔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 ,영화 토지와 자유 등이 그 대표작이다.

조지 오웰은 1936년 스페인 내전에 통일노동자당(POUM)의 민병대로 참전한 경험이 있다. 그 당시 스페인은 보수 우익인알레한드로 래룩스 정권에 맞서 카탈로니아 무장봉기가 일어났고, 유혈 진압된 후 1936년 1월 선거를 통해 공화파 사회당 공산당 등으로 이뤄진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됐다. 그러나 우익 군부가 이에 대항함으로써 내전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카탈로니아 찬가 는 이의 기록이다. 특정한 이념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의 정의와 평등을 위해 투쟁하는 양심의 기록이며, 또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 혁명의 약속과 권력의 배반으로 인한 좌절과 환멸을 그린 작품이라 하겠다.

작품 속 화자인 나 는 1936년 12월 말 영국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가게 되면서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노동자 정부가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고, 파시스트를 물리치고 어렵게 일궈낸 노동자 정부를 수호해야 한다는 일념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별다른 이념의 색깔도 없이 의용군에 입대하게 된다.

전투를 위한 훈련은 거의 받지 않았고, 전투는 자주 일어나지도 않았다. 총격보다 추위가 더 무서운 전쟁이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땔감과 감자 등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가 하면, 선전전으로 상대편에게 동요를 일으키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전선의 기류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군과 적군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잠시 휴가를 얻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데, 주도세력인 공산주의자들이 통일노동자당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숙청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주의자 들은 프랑코에 대항해 싸우기보다는 무정부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를 무장 해제시키고 숙청하는데 열을 올렸다.

친구들이 투옥되고 해외 신문들은 진실과 다른 기사들을 써댈 뿐이다. 세계 언론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기사를 보도했고, 마치 그것이 진실인양 알려지고 말았다. 결국 전쟁에서 이기지도 않았는데 전쟁 이후의 권력을 위한 숙청이 거듭됐다. 혁명적 분위기는 사그러들었으며, 프랑코와 파시스트에게 패배하고 만다. 또한 화자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누명, 트로츠키파로 몰려 곤욕을 치르다가 어렵게 탈출에 성공한다.

카탈로니아 찬가 는 분명 정치성을 띤 소설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조지 오웰 스스로 카탈로니아 찬가 를 두고 공공연히 정치적인 책 이라고 말하며 11장을 프랑코와 공모했다는 비난을 받은 트로츠키파를 변호하기 위해 쓴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나는 왜 쓰는가 에서 스페인전쟁과 1936~1937년 사이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고 그 이후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됐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그 한 줄 한 줄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 로나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씌어졌다 고 고백하고 있다. 이때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 라는 말의 의미는 특정한 정치 조직의 정강 정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 화자가 보여주는 것처럼, 주인공은 우연한 이유로 POUM 부대에 소속된 것뿐이고 트로츠키주의적 경향보다는스탈린주의적 경향을 가진 곳에 관계가 깊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을 직접 경험하면서 점차 POUM을 지지하게 된다. 볼셰비키(소수파라는 의미)가 혁명 이전까지 대중의 영향력을 거의 획득하지 못하다가 혁명이 전개됨에 따라 인민들이 볼셰비키에동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카탈로니아 찬가 가 지나치게 정치적 이라는 비난에 대해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 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적 목적- 정치적 이라는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넓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다.

오랜만에 정치성 짙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물론 내전이라든가 그로 인한 극렬한 이념의 대립이 대치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 유사한 특성은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여전히 보이고 있다. 정치와는 무관한 한 사람으로서자꾸만 색깔론으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정국이 뭔가 꺼림칙하고 비이성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생각한다. 안개가 짙을수록 저 너머에 어떤 진실이 있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살펴보아야 한다고. 좌충우돌 헤매다가 영영 길을 잃기 전에 말이다. 지는 꽃잎을 보면서, 다시 움트는 새잎을 보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내일을 꿈꿀만한 자유가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1903~1950년.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영어권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 비평가, 정치평론가 중 한 명이며 영미권에서 널리 존경받고 있다. 그는 만년의 두 소설 「동물 농장」 과「 1984년」 으로 특히 유명해졌다.

■작품 속 책갈피

어쨌든 이것이 그들이 우리에 대해 하는 말이었다. 트로츠키주의자, 파시스트, 반역자, 살인자, 겁쟁이, 간첩 등등 이었다. 솔직히 기분 나쁜 말이다. 특히 그런 일을 자행하는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들것에 실려 전선을 내려오며 모토 사이로 눈부신 듯 바깥을 내다보는 하얀 얼굴의 열 다섯 살짜리 스페인 소년을 보면서, 이 소년이 위장한 파시스트임을 증명하는 팸플릿을 쓰고 있는 런던이나 파리의 말쑥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전선에서 알게 된 통일사회당의용군 병사들이나, 이따금씩 만나는 국제 여단의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결코 트로츠키주의자나 배반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런 일은 후방의 기자들이 담당했다. 우리가 반대하는 팸플릿을 쓰고 신문에서 우리를 헐뜯는 사람들은 안전한집에, 혹은 기껏해야 발렌시아의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다.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었다.
(중략)
이어 다시 영국으로 왔다. 영국 남부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산뜻한 풍경을 지닌 고장일 것이다. 그쪽을 지날 때, 특히 임항 열차의 편안한 쿠션 위에 앉아 평화롭게 뱃멀미로부터 회복되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일본의 지진·중국의 기근· 멕 시코의 혁명· 걱정 말라. 내일 아침에는 현관에 우유가 놓여 있을 것이며 금요일에는 뉴 스테이츠먼 이 나올 것이다. 산업도시는 멀었다.

 연기와 궁핍의 얼룩은 지구 표면의 완만한 곡선에 감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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