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기획 '제주잠녀'6부-제주해녀문화목록 29. 문화콘텐츠 사진1

뉴욕·파리서 '강인한 삶의 의지' 문화 상징 부각
"역사적 배경·지식 없어도 사진 앞에 서면 충격"
"The work may be some of the hardest there is, but the smile couldn't be wider or brighter.(삶에 지쳐서 때로는 고단한 몸이지만 거친 바다 앞에서는 아주 당당하다)"'제주 잠녀'에 대한 관심이 달라지고 있다. 처음 주변의 그저 익숙한 존재였던 것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상징'으로 되고 다시 여성성과 특유의 정체성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작업만을 놓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제주 생명력의 근원으로
올 들어 유난히 '제주 잠녀'의 행보가 바쁘다. 약속이나 한 듯이 섬 안팎에서 제주잠녀와 잠녀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4월만 '제주잠녀'를 관통한 세 개의 시선이 공개됐다.
그 중 하나가 세계적인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magunm)' 소속인 데이비드 알랜 하비의 '제주해녀다. 지난해 11월 한 달간 구좌 지역 해녀를 포착한 71장의 사진은 일련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익숙하다고 했지만 섬 밖, 그것도 '외국인'이란 프리즘을 통해 본 제주잠녀들의 삶은 진솔함으로 그 깊이를 더했다. 제주잠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가지고 그들의 생활에 뛰어든 작가는 시종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세계를 몇 바퀴나 돌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던 카메라지만 바다며 육지를 가릴 것 없이 생명력을 뿜어내는 존재에 대한 경외를 숨기기 어려웠다.
"제주 해녀는 억척스럽게 살아가지만, 동료와 가족을 보듬는 데는 누구보다 푸근하다. 맨몸으로 거친 풍랑과 맞서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바다의 변덕에는 지혜롭게 대처한다"는 메모만으로도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의 사진에서 길고 깊은 숨비 소리를 엿듣기는 힘들지만 제주에서 '잠녀'가 갖는 존재감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물질 직전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 듯 긴장되면서도 짧은 찰나에서부터 한시라도 손을 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근면함이 오롯하다.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편안한' 불턱의 의미를 공유하는가 하면 바다작업의 오랜 동반자인 테왁에서 그들의 얼굴을 봤다. 잔잔하다가도 거칠게 흔들리고 멀리 아득한 수평선은 벽안의 작가에게 '잠녀들의 인생길'을 풀어냈다.
# 문화적 입지 구축 의미

매그넘이 주목한 제주잠녀.잠녀문화는 지속가능성과 자유로움이었다. 불턱(탈의실)을 통해 민속지식이 계승되고 가족과 이웃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로 역사를 이뤄간다는 점에서 눈을 못 땠다. 보다 인간적인 매력은 그동안 여러 작가의 작업을 통해 세상 빛을 봤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흥구(39)는 대학생이던 지난 2003년 유럽에서 발간하는 다큐멘터리 잡지 'GEO' 사진 공모전에서 잠녀를 촬영한 흑백사진으로 피쳐스토리 대상을 수상했고 이어 꼬박 10년여의 작업을 총망라, 2011년 서울과 부산에서 '좀녜,사라져가는 해녀들, 10년의 기록'이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여러 겹 주름으로 섬 살이, 바다 살이, 제주 살이를 풀어냈던 어머니들의 평범한 모습은 이후 해녀박물관 전시 등을 통해 제주와 눈을 맞췄다.
# 제주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
잠녀의 걸음은 올해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서 이어졌다. 이달 초까지 한달여간 뉴욕 총영사관내 갤러리 코리아에서 진행된 사진작가 김형선의 '해녀'는 작품성을 넘어 제주 잠녀의 가치를 현지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뉴욕타임스는 뉴욕의 최대 아시아 미술 행사인 아시아위크를 소개하며 "사진전 중에서 '해녀'를 가장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환상적인 현대 사진전"이라고 극찬했다. 아트시(Artsy) 등 문화전문 매체들도 "산소 공급 장치도 없이 거의 맨손으로 물질을 하는 제주 해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지식이 없더라도 사진 앞에 서면 충격적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잠녀문화에 접근했다.
윌스트리트저널 등 일간지 외에 현지 대표 교양잡지인 뉴요커, 영국 유력 일간지인 가다ㅣ언도 실물 크기 잠녀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역량과 사회.문화적 가치에 관심을 쏟았다.바통을 넘겨받은 전시가 이달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진행됐다. 40년 경력의 사진작가 준초이가 지난 2005년부터 작업한 제주 잠녀들의 일상을 담은 '바다가 된 어멍, 해녀'전이다. '해녀를 통해 한국인의 강인한 삶의 의지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는 전시 설명만으로도 의미 전달은 충분했다.

'특별한 취급'도 덜해졌다. 2004년 영화 '인어공주'에서 여주인공이 전통방식의 물질을 하는 것이 화제가 됐었다면 '멘도롱또똣'이나 '계춘할망'처럼 제주사투리를 작품 제목으로 쓰는 경우는 이전에는 지역 작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제주잠녀.잠녀문화가 그만큼 대중에 많이 알려진 방증이기도 하지만 경계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까지 잠녀에 대한 문화적 기준이 미흡한 상태에서 전통과 현대의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고무옷을 넘어 오렌지색 슈트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이선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은 "잠녀는 이제 문화경쟁력의 상징이 됐다"며 "관련 업무가 해녀박물관에 집중됐다고 하더라도 문화콘텐츠 활용에 있어 행정도 상상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