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기획 제주 잠녀]6부 제주해녀 문화목록 30.문화콘텐츠 영상

단순한 사진 관찰 보다 함께 생활하며 '호흡'
'기억'의 기록에서 '지속가능성'등 의미 부여
'제주 잠녀'하면 깊은 주름과 고단한 작업 환경, '숨비 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단지 그것뿐일까. 그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자 예술이란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인돼 왔다. 지난 4월 뉴욕.샌트란시스코영화제와 더불어 북미 3대 영화제로 꼽히는 휴스턴국제영화제 여성이슈 부문 금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 그리는 해녀'(Colors of the Ocean-The Last Generation.연출 함주현)도 그 중 하나다.
스스로 드러내기 등 다양한 시선
친구들과 물에서 노는 것이 마냥 좋았던 13살 소녀는 그대로 '바다'와 나이를 먹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돌아본 지난 세월은 굴곡지고 여러 가지 색들로 채워진 것이 글로는 다 풀어내기 어려웠다. 한 번 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된 작업에 노잠녀의 손 끝은 깊은 바다 속을 헤집던 그 때보다 더 영민해졌다. 감각만 살아난 것이 아니라 '지난 일'이란 이름으로 접어 뒀던 기억의 편린들도 하나 둘 고개를 들었다. 바깥물질을 나설 때의 긴장과 두려움, 순간 허공을 절단 낼 듯 한 날카로운 호흡 끝 바람처럼 스쳐지나간 '사랑한다'는 어머니의 수줍은 고백은 팔순의 잠녀를 10대 소녀로 되돌린다.
'그림'이라는 매개는 기억만 헤집은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드러내기'라는 과정은 오랜 시간 목숨을 내놓는 절대 절명의 순간을 거치며 자존감을 잃어버린 잠녀들에게 그동안의 시간이 저절로 흘러가 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있어 소중해 졌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처음 문화공동체 '서귀포사람들'(대표 안광희)의 찾아가는 문화 복지 지원 사업은 개발 바람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잠녀들의 힘들었던 삶을 위무하는 차원이었지만 어느 순간 '잠녀'라는 이름의 문화 응축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은 세상과 통했다.
그들의 보는 바다는 일반이 아는 바다와 분명 다르다. 낭만이나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다. 그들이 풀어낸 것들에는 유명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완성도는 없다하더라도 그들은 다 담아내지 못하는 '연륜' 따위가 칭칭 감겨 있다. '문화'라는 것이 어떤 공식이나 특별한 공정과정을 거쳐야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쓸모를 만들어내는 데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확인한 작업이기도 했다.
그 특별함은 이번 수상에 앞서 인디다큐페스티벌, 광주여성영화제 초청, 서울환경영화제 본선 진출 등으로도 확인됐다.
'오늘'을 넘기 위한 성장통으로

지난 2008년 제10회 서울영화제에서 세계 첫 상영된 바바라 해머 감독의 '제주도 해녀'는 잠녀 특유의 끈끈한 연대가 바닥에 깔렸다. 2011년 재미교포 3세 포토저널리스트인 브랜다 백 선우가 꺼낸 '물 때(Moon Tides)'는 생존과 고통, 나이 듦, 연민 등 7개 키워드로 잠녀 특유의 삶을 정리했다.
2012년 제2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류상수 감독의 '숨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의 숨소리'(이하 숨비)는 가파도 잠녀를 소재로 섬에서 나고 자라 잠녀가 된 3대의 삶을 그려 주목받았다.
이런 흐름 속에 '물숨'은 절박함에 가까운 느낌이다. 잠녀들에게 '물숨을 들이켰다'는 말은 죽음을 의미한다.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우도를 오가며 더듬어낸 그들의 삶은 생과 사의 팽팽한 경계를 오간다. 꽃 같은 열 여덞 딸을 앞세운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와 어느 순간 바다에서 불귀의 객이 된 노잠녀, 잠녀에 대한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공평하지 못한 평가들까지 어찌 보면 '오늘'이라는 관문을 넘기 위한 성장통의 느낌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잠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는 그대로, 남아있는 그대로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이 있으며, 이미 사라지고 있으나 '기억'을 '기록'하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잠녀문화는 답이 아니다. 이런 과정들이 켜켜이 쌓이며 지속가능한 '잠녀문화'가 완성된다.

바바라 해머 "정부가 지켜야"
'제주 잠녀'는 현재 살아있고, 지속가능한 여성 중심의 해양문화공동체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여기까지는 책대로다. 관련 연구를 한 사람들 중에는 물질 기술이나 민속지식 등을 문화 범주에 넣는 것을 주문한다. '제주잠녀문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바깥의 시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 다큐멘터리 감독인 바바라 해머는 제주잠녀에 대해 "그들의 연대감은 분명 여성학적인 연구대상이며 한국 정부가 세계적으로 귀한 잠녀 문화를 지켜야 한다"고 평가했다.
포토저널리스트 브랜다 백 선우의 잠녀는 '목적의식을 갖고 사는 품위있는 여성'이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억척스럽게 삶을 일군 여전사'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하나의 문화 공동체로 대를 이어가는 모습에 대한 관심은 바다와 어우러져 삶을 유지하는 '치유' 코드로 옮겨졌다.
브랜다 백선우는 '물 때(Moon Tides)'작업을 통해 1994년 당시 열 여섯이던 아들과 갑작스럽게 사별한 후 품고 있던 상처를 치유했다고 털어놨다. "상처는 완전히 극복되는 게 아니라 상처를 안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아들을 매일 생각하지만 예전처럼 아프지는 않습니다. 잠녀들이 살려고 물질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 땅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것 같습니다"
'그림그리는 해녀'역시 그 바탕에 '치유'라는 감정선을 깔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히 '물질체험'이나 '노젓는 소리 공연'을 답이라고 내놓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를 기준으로 제주잠녀문화를 테마로 한 '치유' 상품 쪽이 보다 경쟁력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