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힘'이다-프롤로그

제주 1차산업 비중 전체의 18%
소비자 중심 시장환경 변화 뚜렷
타지역 과일·수입산과 경쟁 치열

농지 이용률 하락 등 농업 위기
단순 생산만으로는 생존 불가능
제주 '땅심' 본연 가치 되살려야
 
제주 '1차 산업'은 말 그대로 전쟁 중이다. 기후 변화 등의 영향으로 수급조절이 어려워진 것도 모자라 소비 시장의 '입'은 갈수록 냉정해지고 있다. 또 세계 주요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또는 협상 타결로 국경이 허물어지면서 규모와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수입 농산물의 파상 공세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6차 산업'이라는 카드가 제시됐지만 가치의 원천인 '땅'이 흔들리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 소비자를 잡아라
 
제주특별자치도는 '1차 산업'회생을 위한 긴급 처방으로 '감귤구조혁신'과 '월동채소 작부체계 개선'이란 카드를 내놨다. 적극적 수급조절을 통해 시장 교섭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은 뒤집어 말하면 소비자 맞춤형 개편으로 정리된다.
 
연초 제주도는 노지감귤 생산량을 소비량에 맞춰 2020년까지45만t까지 줄인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45만t은 현재 제주도가 정한 노지감귤 적정 생산량 55만t에 비해 22% 줄어든 규모다. 
 
이유는 분명했다. 감귤은 이미 하우스 딸기에 겨울 과일 시장 왕좌를 내줬다. 서민과일 리스트에서도 수박 등 경쟁 과일들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여기에 시장 개방으로 오렌지와 체리, 포도 수입이 계속해 늘어나면서 '제철'특수를 강조하기도 힘들어졌다.
 
감귤만이 아니라 당근과 양배추, 월동무 등 대표 월동작물들도 수차례 수급 조절 실패로 인한 가격 하락과 산지폐기라는 악순환을 경험했지만 '학습 효과'는 미미했다. 고품질.적정 생산을 통한 제값 받기를 외치면서도 현실은 손실 보전에 급급하다. 중요한 것은 1차 산업 역시 시장 경쟁 논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선택은 전적으로 소비자들의 몫이다. '국산 소비'를 앞세운 애국심 마케팅은 뒷전에 밀린지 오래고 주산지 개념도 흔들렸다. 결국 남은 것은 '품질'과 '안전성'밖에 없다. '제주산'을 앞세운 화장품과 식료품이 '프리미엄' 라인으로 호평 받는 것을 대기업 자본력의 마케팅 효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의 구매 판단 기준을 읽는 것이 먼저다.
 
△ 잠식되는 '땅'
 
농업이 흔들리면서 기반인 '땅'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제주 경지면적은 2012년 이후 늘어나는 추세다. 농지는 늘어났지만 이용률은 떨어졌다. 지난 1975년 4만8867㏊던 제주지역 농지는 40년만인 2014년 6만2856㏊로 2만 ㏊이상 늘었다. 2005년(5만8951㏊)까지 증가세를 이어가던 농지는 이후 계속해 줄어들기 시작해 2009년(5만6693㏊)에는 1995년(5만6803㏊)수준으로 감소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농지 잠식 보다는 폐원 등 농업 구조조정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1975년 161.0%던 농지이용률은 농지가 늘어나는데 반비례하며 2004년 106.3%까지 떨어졌다 2005년 114.1%로 반등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하락세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3년과 2014년 잇따라 농지 면적이 늘어났지만 2013년 105.6%던 농지이용률은 지난해99.2%로 관련 조사 이후 처음으로 100% 이하로 떨어졌다. 1차 산업 비중이 18%로 전국 평균(3%)의 6배나 되는 지역 사정에 땅을 놀린 상황은 순유입인구 증가와 대규모 국책사업 등 개발 흐름 등과 공교롭게도 맞물린다.
 
농산물 가격이 불안정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상당 부분 외부 자본에 의해 잠식당한 영향이 컸다는 얘기다
 
△ 1차산업 '대응력'모색 절실
 
'농사 짓기 힘들어졌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지 오래됐다. 단순 생산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 저렴한 수입 농산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비 절감이나 유통 차별화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은 거의 매년 나오고 있다. 시장 개방 압력 속 제주 1차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품 전략'외에 대외 환경 변수에 대한 대응력까지 필요해졌다.
 
땀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물류비용 부담을 이유로 도매시장에 의존하다보니 홍수출하로 인한 농가 수취가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감내했다. 그래서 이제는 가공용 확대나 산지 도매시장, 직거래, 로컬푸드직매장으로 판로를 분산하고 등급·표장 차별화로 수취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관행 품목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경쟁력 높은 신품종의 적극적인 도입을 통해 틈새시장을 겨냥하거나, 농가 스스로 마케팅 능력 개발에 나서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창조농업'의 모델로 꼽히는 6차 산업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농가 소득을 늘리고 이를 통해 농업을 살리자는 취지다. 실제로 농업현장에서는 '구호'가 아니라 이미 복합·틈새·계획 영농 등을 통해 기반을 잡은 모델이 있고, '부가가치'도 창출하고 있다. 그들의 어제·오늘을 통해 제주 1차 산업의 미래를 모색하는 과정은 제주 본연의 '땅'심(心)을 확인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고 미 기자

 

인터뷰 /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이사장

'땅의 가치' 지켜야 농업 경쟁력 사수 가능
'농가.마을단위 1차 산업 중심' 균형 강조

"1차 산업 본연의 '힘'을 잃는다면 '6차산업'은 단순한 계열화에 불과하게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한 대안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죠"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이사장은 '농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은 UR(우르과이라운드)협상이 시작될 무렵 서울대학교 농과대 농업정책연구회로 시작됐다. 당시 동아리 회원으로 농민단체를 지원하던 회원 6명이 1998년 모인 뒤 지금까지 현장 전문 농업 컨설턴트로 농업·농촌의 장기적인 변화와 혁신을 유도하고 있다. 그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는 박 대표는 '땅의 가치'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땅에서 가치를 제대로 얻어야 부가가치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6차 산업 자체를 농촌을 살릴 대안산업처럼 여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농업 자체를 '지식 산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성과를 위해 2.3차 산업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농가 단위, 또는 마을 단위의 1차 산업을 기준으로 해야만 균형성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업 역시 '전략'이 필요하다"며 "안정적인 생산이 바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은 사기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6차'라는 숫자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지역 농업'을 지킬 수 있는 최적안을 찾는 것이 과제"라며 "중개가공과 지역순환 성격의 로컬푸드 사업을 연계시키는 것이 가장 안정적 모델"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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