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전설] <41> 눌우시동산

아득 엿날 일이우다. 당나라는 8년이나 거듭뒈는 내란광 외환으로 닐 일이 어떵 뒐지 몰라부난, 훗날을 위영 태자만이라도 산둥성을 피영 어디 먼 딜로 피난시키젠, 베 띠울 궁리를 고 잇어서마씀.
“마마, 큰일이우다. 펀찍단 하늘에 갑제기 먹구름이 몰려왐수다.”
신하덜은 걱정이 태산이라십주. 태자만이라도 무사히 피난을 가사 건디, 그거장 물게꿈이 뒈여불문, 아무 희망이 엇인 겁주.
“ 수 엇다. 케지 말앙 그냥 베를 띠우라. 시가 급다.” 경연 당태자를 태운 베는 보름동안 흘러뎅기단 제우 곽지 ‘진모살’ 동쪽지 흘러완 난파뒈여서마씀. 경주마는 그 동안 당태자는 허기를 이기지 못연 죽어부러십주. 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심을 건진 사름이 셔서마씀. 다름 아닌 당태자 부인이라십주. 제우 목심을 건전 진모살에 기어 올라온 걸 보난, 그 비참은 이루 말 수 엇어서마씀. 을 사름덜은 부인을 간호멍 슬픔을 이여십주.
곽지 사름덜은 당나라 베가 파선당 딜 ‘당파선코지’옝 불러서마씀. 그게 이제지끔 곽지리 해수욕장 동쪽질 일름으로 남은 겁주. 또 당태자옝 는 직위는 그 당시 우리나라로서는 감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높은 지위라, 베는 부서지고 태자는 죽엇주마는 그 묘소만큼은 소홀히 수 엇언, 앞개[前浦]에 묻언 ‘당능’이옝 멍 관리를 여십주.
그로 후제 당태자 부인은 선 곳 곽지에 살안 서방을 묻은 묘소를 매날 드나들멍 슬피 울어십주. 그 광경이 너미 가련고 애통 그차전 마 눈 떵은 볼 수 엇일 정도라마씀. 눈물이 질을 메왓고,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은 자갈을 모살로 멘들아십주. 그 부인이 남편 묻은 딜 가멍, 동산을 넘을 때마다 ‘늘 울멍 닌 뎅’ 는 뜻에서 ‘늘우시동산’이옝 불르단 ‘눌우시동산’으로 벤엿젠마씀.
그치록 슬픔에 싸영 지내단 당태자 부인도 더 이상의 아픔을 지 못여신디사, 얼메 엇언 죽고 말아십주. 경난 사름덜은 그 부인의 질을 꼼이라도 펜게 가렝는 뜻에서 대비인동산(大妃人東山) 즉 그 ‘부인의 일편단심 높은 절개를 기리는 동산’이엥 불럿고, 지끔도 곽지해수욕장 동쪽질 동산을 ‘눌우시동산’이엥 불러마씀.(곽지리 홈페이지)
일설에는 이 일이 춘추전국시대옝 는 말도 싯주마는, 당나라 말기광은 천년지차라 실을 중시는 전설로는 맞지 아니여마씀. 이디 나오는 ‘당태자’ 고 ‘산둥성’을 연관지와 볼 때, 당나라가 10년 동안 계속뒌 ‘황소의 난’으로 희종 황제가 낙양(洛陽)에서 산둥성 칭다오(靑島)로 피난을 온 기록이 나옵주. 그 때 태자를 안 왓단 훗날을 위영 피신시킨 걸로 봐져마씀. 김창집 소설가·제주작가회의 자문위원
펀찍다 : 멀쩡하다
물게꿈 : 물거품
케다 : 뭉그적뭉그적 더디게 대응하거나 움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