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루쉰 「아Q정전」

루쉰, '풍자적 필치'로 사회 표현
당시 민중의 우매함 직격탄 날려
문학 작품 사회개조 도구로 평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너무 엄청나거나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다'는 뜻이다. 주로 황당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살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기도 한다. 작은 실수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어찌어찌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으나 이보다 더한 문제 앞에서는 망연자실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곤 한다. 어쩌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바로 우리 눈 앞에 지금 이 순간도 발생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걸어야 한다.
문학작품 중에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인물을 통해 인간상의 부조리를 고발한 작품들이 많다. 근·현대에 이르러 인간의 윤리와 도덕성의 상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간의 허위의식, 인간관계의 물질화, 무지와 무감각에 의한 현실지각 상실 등은 인간사회의 대표적인 부조리 현상들이다.
이런 부조리의 단면을 풍자적 필치로 고발하면서 "민중이여, 제발 깨어나라"고 외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루쉰의 「아Q정전」이다.

아큐(阿Q)는 청나라 말기에 중국 남부의 가난한 농촌에 사는 날품팔이꾼이었다. 그는 부잣집 허드렛일을 하며 웨이장에 있는 사당에서 기거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간다. 문맹에다 외모도 볼품없고, 자신의 이름도 생일도 모른다. 하지만 자존심 하나만은 누구보다 세서 마을사람들이 대머리라고 놀리거나 때려도 다 자신을 시기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이 일로 자신이 더 유명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일종의 '정신승리법'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인물이다. 우스꽝스러운 면모에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몰매를 맞기도 하는데, 비구니의 볼을 꼬집어 놀리거나 자오씨 집 하녀 우마에게 수작을 걸다가 금 2000문과 이불을 그 대가로 지불하기도 했다.
그런 사건 이후로 그는 마을에서 완전히 '왕따'가 되었으며 더 이상 밥벌이를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마을을 떠났다 어느 날 다시 돌아왔는데, 번듯한 옷차림의 장물장수로 변모해 있었다. 수중엔 돈이 있었으며,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와서 마을사람들에게 한동안 환심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도둑의 앞잡이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에 대한 흥미는 다시 사그라지고 만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던 해였다. 혁명당이 마을에 들어온다. 아큐는 혁명당을 알고 있었고, 혁명당에 가입하고자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자오 씨의 집이 습격을 당한다. 아큐는 자오 영감의 집이 습격당한 것을 은근히 기뻐했다. 자신을 마을에서 내쫓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누가 누명을 씌웠는지 아큐가 자오 영감의 집을 습격한 장본인이라며 체포당하고 만다. 아큐는 생전 처음 붓을 들어 서명 대신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아큐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군중 속에 서 있는 우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보지 않고 있었고, 군인들이 메고 있는 총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큐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형을 받는다. 그럼에도 군중들의 여론은 총살형은 목을 자르는 것보다 볼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 루쉰(1881~1936)
중국의 문학가.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이다. 도중에 잠시 중단되기는 했어도 1902년부터 1909년까지 일본으로 건너가 고분학원(弘文學院)과 센다이의학전문학교(仙台醫學專門學校)에서 공부했다.
혁명당 회원이었고, 귀국한 뒤 교원과 중화민국 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거쳐, 1918년에 잡지 「신청년」에 처녀작인 「광인일기」를 발표했다. 1921년에 루쉰의 작가적 존재를 확고하게 해 준 대표작 「아Q정전」을 잡지에 연재했다.
그는 많은 소설과 산문시, 평론 등을 남겼는데 민족의 역사와 정치 문제에 초점을 둔 '잡감문(雜感文)'이라고 불리는 평론적 수필이 가장 많다.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校) 강사와 샤먼대학교(廈門大學校) 교수, 중산대학교(中山大學校) 문학계 주임 등을 역임했으며, 1936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 작품 속 책갈피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두세 차례 힘껏 후려쳤다. 화끈거리고 아팠다. 실컷 때리고 나자 그때서야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때린 것은 자기고 맞은 사람은 남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자기가 남을 때린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아직 화끈거리고 아팠지만 그는 승리감에 도취해 자리에 누웠다.(중략) 일반 여론으로 보면 웨이장에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당연히 모두들 아큐가 나쁘다, 총살을 당한 것은 그가 나쁜 증거이다, 나쁘지도 않은데 총살까지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성안의 여론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총살이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루쉰은 일본 유학 시절, 자신의 진로를 바꾸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일명 '환등기 사건'인데,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스파이 혐의를 받은 중국인을 처형하는 장면이었다. 동족의 처형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는 중국인들을 보며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제 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구경꾼밖에는 될 수가 없었다"고 개탄한 바 있다.
루쉰은 「아Q정전」을 통해 민중의 우매함에 직격탄을 날리고 싶었던 것이다. 죄 없는 사람이 죽어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 와서 마을을 약탈해가도 함께 묻어가자는 식으로 동조하고, 돈이라면 나라도 팔아먹을 태세이니 이 어찌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보아야 할 것을 볼 줄 아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아는 것을 기꺼이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루쉰은 그런 자를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