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의 '고유 이름'을 찾아서] 2. 김녕곶<2> 역사문화유적

▲ 곰숯가마는 1차적으로 현무암을 이용해 완만한 아치형으로 축조한 후 중간부까지는 돌담을 3~4단 쌓고, 중간부에서 상부까지는 다시 고운 흙으로 마감했다. 특별취재팀
옛 주민들 생활사 단면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
여러 세대 걸쳐 사용된 160여개 유적 특정지구 밀집
숯 생산·경작·사냥 등 생활경제 유지 위한 '축' 담당
 
선흘 곶자왈에 분포하고 있는 다양한 역사문화유적들은 조선시대 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대 후반까지 주민들의 생활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가 단서가 되고 있다. 숯가마를 비롯해 숯막(움막), 노루텅, 경작지, 물통, 신당·포제단, 용암동굴 등 여러 세대에 걸쳐 사용 시기를 달리하는 160여개의 생활유적이 특정지구에 밀집돼 있다. 이들 역사문화유적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경제를 유지해 온 자원이라는 점에서 의미와 보존 가치가 크다.
 
△숯 생산 등 활발
 
선흘 곶자왈에서 행해졌던 마을주민들의 다양한 경제활동 가운데 대대적으로 이뤄졌던 숯 생산활동은 지역특성과 향토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선흘 곶자왈 내에는 두 가지 유형의 숯가마가 확인되고 있는데, 하나는 원형을 유지하며 자리 잡고 있는 돌숯가마(일명 곰숯가마)와 숯을 구웠던 터만 발견되는 1회용 숯가마(폐기형 숯가마)다.
 
아치형의 곰숯가마 2기는 조선시대 말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사용된 백탄용 숯가마로, 속칭 '먼물깍' 습지의 남서쪽 지구에 15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종가시나무가 울창한 지역의 곰숯가마는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입구부와 정면 상단부가 허물어진데다 상부에 10여 그루의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
 
1회용 숯가마 터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20여년간 사용해 온 것으로 추정되며 선흘 곶자왈 곳곳에서 확인된다. 숯을 생산하며 발생한 열기로 토양이 죽어 지금도 동그랗게 빈 터 흔적이 남아있다.
 
이들 숯가마 주변에는 숯을 굽는 주민들이 휴식이나 식사, 수면을 취하던 공간인 숯막도 자리하고 있다.
 
현재 선흘리에 거주하는 70대 이상 마을 고령자들도 1회용 숯가마에서 숯을 구워냈을 뿐 곰숯가마에서의 숯 생산과정은 선친으로부터 전해 듣기만 했다.
 
선흘리 주민 고병문씨(75)는 "먹고 살기 힘든 때라 숯을 구워 제주읍에서 팔곤 했다. 새벽 3시께 나서면 마차로 4시간 정도 걸렸다"며 "일제 강점기에는 땔감 안에 숨기기도 했는데 4통 가마니 하나 가득 담으면 좁쌀 2되는 샀다"고 말했다.
 
▲ 숯막에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체온 유지를 위한 화덕시설이 갖춰져 있다. 특별취재팀
△선조들의 지혜 엿보여
 
도내 곶자왈 중 선흘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는 유적이 바로 '노루텅'이다.
 
노루텅은 야생노루를 사냥하기 위한 '석축 함정'이자 동물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대부분은 타원형이며 깊이는 1.7~2m로 노루의 탈출을 막기 위해 상부는 좁고 하부는 넓은 '복주머니' 형태로 축조됐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노루텅 상부에 나뭇가지를 얹어 놓고 그 위에 노루들이 좋아하는 송악 줄기를 덮어 유인했다고 한다.
 
노루텅 주변 돌담 안으로는 '산전'이 확인됐다.
 
평지마다 소규모로 조성돼있는 산전은 보리, 조, 피, 산듸 등 밭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선흘 주민들의 경작지였다.
 
곶자왈에서 산전을 일구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돌들을 정리해야 했는데 이를 쌓아놓은 것이 바로 '머들'이다. 또 산전의 가장자리에는 '경계형 돌담'도 세워 놨다.
 
벼농사 재배지인 '강못'도 선흘 곶자왈에서만 확인 가능한 생활문화유적이다.
 
특히 강못 주변의 경계형 돌담은 산전에 비해 더 크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돌들로 쌓여 있다. 쌀이 귀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선흘 곶자왈에는 신석기시대 토기부터 조선시대 옹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사용된 유물들이 발견된 '목시물' 동굴과 마을 주민들이 제사를 지냈던 '포제단' 등도 확인된다.
 
<특별취재팀= 사회부 한 권·고경호 기자 / 자문=정광중 제주대학교 부총장, 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
▲ 정광중 부총장
정광중 제주대학교 부총장(교육대학장)
 
선흘 곶자왈 내에 분포하는 역사문화자원은 과거 제주인의 삶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생활유적이다.
 
지금까지는 곶자왈이라고 하면 주로 지질과 식생적 측면에서만 강조되며 인식돼 왔다.
 
그러나 선흘 곶자왈의 조사와 발굴을 통해서 확인된 생활유적은 앞으로 제대로 복원하고 보전해 나간다면, 제주 곶자왈이 지질과 식생을 중심으로 한 자연 자원적 가치뿐만 아니라 제주 도민들의 생활유산으로서 인문 자원적 가치도 함께 부각시켜 나갈 수 있다.
 
선흘 곶자왈에는 1회용 숯가마가 80여기가 빈 터(址)로만 남아 있으며, 시간적으로는 100년을 넘는 곰숯가마도 3기가 존재한다.
 
1회용 숯가마를 이용했던 주민들은 현재도 생존하고 있지만,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이기 때문에 자문을 통한 복원과 활용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곰숯가마는 1회용 숯가마보다 사용시기가 더 오래됐는데, 특히 곰숯가마 1기는 아직도 원형에 가깝게 잘 보전돼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숯가마 위로 식물들이 뿌리를 내림으로써 상당히 훼손돼 있어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따라서 원형에 가까운 곰숯가마는 조속한 시일 내에 지방 문화재로의 지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이와 더불어 야생노루를 포획하기 위한 노루텅(통)도 도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귀중한 자원으로서 앞으로의 보전과 활용방안이 요구된다.
 
선흘 곶자왈 내의 역사문화자원은 앞으로 도민은 물론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교육과 체험의 대상으로서 혹은 관광자원으로서의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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