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광복 70주년이라고는 하나 세대간 체감의 정도는 다를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고통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아는 조부와 부모 세대와 그 자녀 세대간의 정서적 교감의 차이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더욱 그 격차를 드러낼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가운데는 '6?25'가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들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역사 교육을 잘 해야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시대적·역사적 환경의 차이는 경험의 차이를 낳고, 그만큰 정서적 거리감도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역사적 경험은 특정 세대에게는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봉 혹은 적대감을 갖게 만든다. 특히 6?25를 겪은 세대들이 반응하는 반공이데올로기는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야말로 하나의 관념이며, 올바른 시야를 가로막는 흐린 창과 같을 텐데 말이다.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작품이 바로 최인훈의 『광장』이 아닐까.
최인훈의 『광장』은 1961년 11월에 발표된 작품이다. 1961년은 역사적으로 4?19혁명이 일어난 해이다. 평자들은 최인훈의 소설『광장』의 출현은 마치 4월 혁명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 당시 까지만 해도 한국 소설이 다루기 힘들어했던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줄거리 속으로
주인공 철학도인 명준은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하게 된다. 서울에서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도 월북해버리자 이명준은 자기만의 밀실에 들어앉아 현실을 편협하게 인식하고 있는 인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다 북한에 살고 있는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등장했다는 빌미로 경찰서에 불려가서 구타를 당하면서 이른바 빨갱이 취급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명준은 남한의 실정에 환멸을 느끼게 되고, 결국 월북하게 된다.
하지만 북한도 마찬가지로 완벽한 사회는 아니었다. 명령과 복종이 지배할 뿐, 자유와 정의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북한 사회였다. 명준은 아버지가 주선해준 노동신문의 기자생활을 하지만, 그가 작성한 기사는 당 간부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했고, 이는 기자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원인이 되었다. 할 수 없이 노동판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노동 현장에서 다리를 다치게 되고, 여자무용수인 은혜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하는 광장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그는 전쟁에 뛰어들게 되었고, 포로로 잡히고 만다. 포로송환 과정에서 남이나 북이나 선택의 갈림길을 맞게 된 그는 남이나 북이 그에게는 결코 광장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중립국을 택한다. 그러나 포로들을 싣고 가는 상선 타고르 호가 남지나해를 지나 항해하는 어느날 밤 그는 바다에 투신자살하고 만다.
좀 더 깊이 있게 읽기
타고르 호 선상에서 명준이 맨처음 갈매기를 보는 순간, 그 새는 그에게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새는 그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동시에 아픈 사랑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야말로 자유의 상징이며 푸른 바다와 함께 끊임없이 호흡하고 있는 생명인 것이다. 죽은 은혜와 그의 딸을 상징하는 바다는 생명의 본향이며, 새로운 탄생의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바다만이 명준에게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밀실이요 광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명준에게 '밀실'과 '광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밀실이란 말 그대로 밀폐된, 내밀한 공간을 의미한다. 자신만의 삶의 내밀한 공간이 누구에게 필요하다면, 광장 또한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광장이란 어찌보면, 사회적 삶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밀실'과 '광장'이 필요하다. 마치 이성과 감성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주인공 이명준이 최후에 선택한 바다는 이념이 배제된 밀실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참다운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광장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명준에게는 '밀실'도 '광장'도 허락지 않는 삶이었다. 그래서 포로가 되었을 때 중립국을 선택한 것이다.
바다…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 1960년 민주화 투쟁 속 자유를 외친 작품
작품 속 책갈피
"돌아서서 마스트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본다. 큰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 친 그는 지금 핑그르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자기가 무엇에 홀려 있음을 깨닫는다. 그 넉넉한 뱃길에 여태껏 알아보지 못하고 숨박꼭질을 하고 피하려 하고 총으로 쏘려고 한 일을 생각하면 무엇에 씌웠던 게 틀림없다. 큰일 날 뻔 했다. 큰새는 작은 새를 좋아서 미칠 듯이, 물속에 가라앉듯이 스치고 지나가는가 하면 되돌아오면서 그렇다고 한다. 무덤을 이기고 온 못 잊을 고운 각시들이 손짓해 부른다. 내 딸아,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언젠가 이렇게 배를 타고 가다가 ... 딸을 부르던 일이, 이렇게 마음 놓이던 일이 떠올랐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활짝 웃고 있다."
1960년은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광장'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대학생들의 주축이 되어 자유와 민주의 기치를 내걸며 거리로 나가 민주화를 외쳤던 것이 4?19 혁명이었던 것이다. 해방 후 자유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던 전후 세대들의 꿈은 지속되는 불안과 외세개입으로 인해 실현되지 않았다. 외세는 원조라는 떡고물을 던져주며 내정을 간섭했고, 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정치권력은 교묘하게 반공 이데올로기 정책을 펴면서 민주세력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에서 용감하게 자유를 외치면서 바다에 뛰어든 문학작품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최인훈의 『광장』이다.
작가소개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재상인 아버지의 4남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방 이후 아버지가 부르주아로 분류되면서 가족과 함께 원산으로 이주, 이곳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원산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6.25가 발발해서 가족과 함께 월남하게 된다. 1개월간 부산 피난민 수용소 생활을 거쳐 목포에 정착해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 마지막 등록을 포기하고 중퇴하고 만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고향 회령을 바탕으로 한 작품 『두만강』의 초고를 쓴 후 1959년에 <자유문학>지에 단편 『그레이 구락부전말기』와 『라울전』을 투고해 안수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한국현대 문학사에 큰 획으로 평가되고 있는 『광장』은 작가가 25세 되던 해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자 전후문학 시대를 마감하고 1960년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첫 번째 작품으로 평가되며 문학적 성취 면에서도 뛰어난 소설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