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 명품도시를 만들자] 2부. 원도심 활성화 2. 역사문화 도시자원

   
 
     
 
탐라~현대시대 제주 중심지 역활
관덕정·목관아 등 문화유산 다양
제주성 일제강점기부터 훼손 심화

도, 역사문화 자원 연계 사업 진행
산지천 일대에 탐라문화광장 조성
주민 소득 창출 보완 계획 등 필요
 
제주의 원도심은 관덕정을 비롯해 복원된 제주목관아가 있고, 제주성과 옛터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건축양식과 공간을 유지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원도심을 회생시키기 위해 수백년간 이어온 전통문화재를 비롯해 근·현대적인 가치를 지닌 건축물을 활용해 도시재생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라지는 도시자원 제주성
 
제주시 원도심은 탐라시대부터 현대까지 제주의 중심이며, 이곳을 지켜온 대표적인 도시문화재는 제주성이다. 
 
제주성은 왜구로부터의 침략을 막아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물론 국가방어의 최전방 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제주성은 조선 태종실록에서 태종11년(1411년)에 큰 비가 내리면 제주성이 자주 잠김에 따라 보수하도록 명하는 내용이 나오고, 중종7년(1512년) 제주목사 김석철이 제주성 부속시설을 축조하는 등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서 언급된다.
 
제주성은 조선시대 이래 500년을 넘게 원도심을 지키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와 근·현대화 시대를 지나면서 심하게 훼손돼 현재는 원형이 거의 사라졌다.
 
현재 제주성의 성곽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1971년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된 오현단 일대와 제주지방기상청 후문 등 8곳에 불과하며, 흔적이 남아있는 구간을 모두 합쳐도 320여m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주성과 관련된 원도심의 지명은 현재도 남아있으며, 동문·남문·서문로타리와 묵은성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제주시 원도심을 둘러쌓던 제주성은 일제강점기에 들어 파손되기 시작했다. 제주항 방파제 축조를 위해 제주성을 허문 후 그 돌을 건축자재로 이용됐다. 1913년부터 연상루와 중인문, 소민문, 정원루 등 각종 성터가 허물어졌고, 철거된 성터에 자동차나 우마차가 다니는 길들이 개설되면서 제주성의 모습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나마 원형이 보존된 조선시대 건축물은 세종 30년인 1448년에 제주목사인 신숙청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지은 관덕정에 불과했다. 인근에 있던 제주목관아는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후 옛터만 남아있다 2002년에 복원됐다.
 
△역사문화자원 활용 전략 필요 
 
제주시 원도심이 갖는 가장 큰 매력적 요인은 역사문화 유적 및 근현대사의 주요시설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관덕정과 복원된 제주목관아를 비롯해 제주문화재인 향사당과 동자복, 오현단, 중인문터, 북수구터, 공신정터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도시공간이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제시됐던 원도심 활성화 계획은 고층아파트 중심의 재개발 방식으로 도시 곳곳에 분포한 역사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건축물과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은 제시되지 못했다.
 
그나마 제주도는 올해 국토교통부가 진행중인 '도시재생 우선지역 공모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과 도심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관덕정 광장 조성 및 목관아 활성화, 역사문화 재생을 위한 '탐라는 칠성대길' 조성, 제주성 보존·복원 등이다. 
 
제주시 원도심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과 연계한 원도심 활성화 사업으로 산지천 일대에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917억원이 투입됐다.
 
또한 근대건축양식이 남아있는 고씨 주택과 주변에 있는 옛 목욕탕 굴뚝 등 산지천 일대에 있는 5곳의 옛 건축물을 보존해 관리시설 또는 문화·교양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또한 조선시대 대표 거상인 김만덕(1739~1812)을 기리기 위해 옛 객주터인 2146㎡ 부지에 초가 390㎡ 규모로 전시동과 객주시설 등 7동을 재현, 최근 개관했다.
 
이처럼 원도심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지만 제주성 등 옛모습을 확인시켜줄 사진이나 사료 등이 부족해 정확한 고증에 의해 진행될지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옛 건축물 복원·보존계획은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해 지역주민 소득을 창출시키거나 원도심 활성화를 이끌어낼 세부전략은 미흡, 보완된 도시재생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용현 기자

 

서울시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1990년대 침체기 철거위기 등 맞아
도시재생사업 효과...명소로 탈바꿈

서울시 종로 경복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한 북촌한옥마을은 과거 재개발까지 논의됐던 노후주택 밀집지역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이 꼭 한번 들러보는 한옥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북촌한옥마을이 가진 매력중 하나는 전통한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감사원, 헌법재판소를 비롯해 현대그룹 사옥 등 근현대식 건물이 있고, 윤보선 자택과 한성은행터, 광혜원터 등 복원됐고, 현대식 주택의 기능을 살린 개량형 한옥도 들어서면서 전통과 현대가 혼재된 도시역사박물관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촌한옥마을도 도시개발시대에 들어서면서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1990년대 침체기를 겪으며 주민들은 건축기준 완화를 요구했고, 결국 난개발로 이어졌다.

서울시는 1991년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1층으로 규제하던 건물 높이를 10m 이하(3층 이하)로, 1994년에는 경복궁 주변의 고도제한이 16m(최대 5층)까지 완화되면서 많은 한옥이 멸실됐다.

심지어 1200여 가구의 한옥밀집촌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뉴타운식의 재개발까지 논의됐다. 다행히 경복궁과 창경궁 등의 문화재를 보호하면서 주거환경도 개선하는 대책으로 '한옥 보존'을 기본으로 한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이후 서울시는 한옥등록제 등을 실시하면서 리모델링 비용이나 세금혜택 등을 지역주민에게 제공했다.

또한 재산권 제약이라는 불편함과 손실에도 불구 지역주민들이 적극 동참하면서 북촌한옥마을은 외국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도시관광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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