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의 '고유 이름'을 찾아서] 6. 서림곶 <2> 시험림 내외 유적

▲ 대정읍 영어교육도시와 인접해있는 서림곶 동쪽에는 돌숯가마와 숯제조장, 숯막이 모여 있는 하나의 '숯 세트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약 100년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돌숯가마로 현재 출입구 천장부 일부가 무너져 있지만 비교적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특별취재팀
주거·농경유적 및 마을터 등 주민들의 '삶의 흔적' 간직
굽기·숙성·보관 등 숯 제조과정 확인 가능한 '세트장'도
나무 공급 편한 곳 가마 조성…조·삼 등 재배 생계유지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에 위치한 서림곶은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만큼이나 생활문화유적도 다양하다. 주거 유적인 '오찬이궤'를 비롯해 곶자왈 내 마을터가 그대로 남아있는 '불칸터'와 숯을 제조하는 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숯 세트장'까지 옛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옛 선조들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이들 역사문화유적들에 대한 보존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편집자주>
 
△임시거처·피신처 동굴
 
산림청이 매입해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는 서림곶 내 시험림에는 주거 유적인 '오찬이궤'와 산전터, 머들 등 농경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구전설화로도 전해지고 있는 '오찬이궤'는 시험림 남쪽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용암동굴이다.

오찬이궤는 약 길이 12m, 높이 1.8m로 확인되지만 여러 방향으로 작은 굴들이 이어지고 있어 정확한 전체 규모는 파악하기 힘든 상태다.

오찬이궤안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평평한 지면이 터널식으로 이어져있다. 동굴 바닥에는 용암류에 형성된 곶자왈 숲답게 크고 작은 돌들이 불규칙하게 깔려 있다. 또 동굴 중반부로 들어서면 현재 서식하고 있는 박쥐의 배설물이 두껍게 퇴적돼 있다.

특히 오찬이궤에서는 토기류와 옹기류, 패각류 등의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보행이 자유로울 만큼 넓은 곳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는 유적들은 옛 선조들이 오찬이궤에서 생활했음을 짐작케해주는 증거로서 가치가 크다. 4·3당시 이 굴에 피신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바닥에 깔린 돌을 골라 개간한 산전터 3곳과 돌들을 쌓아놓은 머들 10기도 확인됐다.

'옛날에는 조, 보리, 삼을 심어서 재배했다'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처럼 시험림 내 곳곳에 분포된 농경유적을 통해 서림곶 역시 이전 답사했던 곶자왈들처럼 '삶의 터전'으로서 활용됐음을 방증해 보였다.

김정언 무릉2리장(62)은 "비료나 농약이 없었던 옛날에는 현재 마늘을 재배하고 있는 밭보다 곶자왈 안의 경작지가 더욱 비옥했다"며 "바닥에 깔린 돌들을 주워 잣벽을 만들어 그 안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 돌숯가마 인근에 위치한 숯막은 숯을 굽던 주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완성된 숯을 임시 보관하기 위한 곳이다. 특별취재팀
△경사면 이용 숯 운반

서림곶 내 시험림 주변에서는 '숯' 관련 유적과  '마을터'가 확인된다.

대정읍 영어교육도시와 인접해있는 서림곶 동쪽에는 돌숯가마와 숯제조장, 숯막이 모여 있는 하나의 '숯 세트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참가시나무가 밀집돼있는 곳으로 숯 제작에 필요한 나무를 공급하기 편한 곳에 가마를 조성했음을 짐작케했다.

세로 5.4m, 가로 4.3m 규모의 '돔'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돌숯가마는 약 100여년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출입구 천장부 일부가 무너져 있지만 비교적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특히 상부와 후면에 위치한 배연구 주위에는 구멍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이 발견되는 등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돌숯가마 바로 앞에는 아궁이에서 꺼낸 숯을 숙성하기 위한 숯제조장이 위치하고 있다.

넓은 타원형으로 땅을 판 구덩이 형태의 숯제조장은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어 뜨거운 숯을 빠르게 옮기기 위한 옛 주민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는 유적 중 하나다.

숯제조장 옆에는 주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한 '숯막'도 조성돼 있었으며, 주위를 둘러싼 석벽에는 소지품을 보관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도 발견됐다.

또 인근의 수혈식(지하식) 움집은 선사시대 움집과 동일한 형태를 보이며 다른 곶자왈과는 다른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서림곶 남쪽 끝자락에는 60여년 전까지 존재했던 마을터인 '불칸터'가 남아있다.

불칸터 내 경계용 담과 옹기가마, 창고터, 집터 모두 돌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척박한 땅을 일구고 살았던 옛 주민들의 생활사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위치한 '효자 문달민 정려' 역시 이곳이 마을터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1851년 11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위급한 아버지를 살린 문달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정려로 현재까지 안내문과 함께 서림곶안에 자리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경제부 한 권·사회부 고경호 기자 / 자문=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 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

 

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

곶자왈은 도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대상이자 보전해야하는 자연·인문자원이다.

제주 화산섬에서 살아갈 미래의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무궁무진한 자산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림곶인 지금의 무릉곶자왈과 신평·보성·구억리 일대 곶자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쓸모없이 버려진 땅'으로 간주되면서 무차별적인 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7년에 계획돼 현재까지 조성 공사가 한창인 대정읍 영어교육도시다.

특히 영어교육도시 주변을 연결하는 도로가 여러 갈래로 조성되면서 곶자왈 내부의 생태계 단절까지 가져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곶자왈을 파괴하는 이용실태가 지속된다면 영어교육도시 일대에 자리한 곶자왈은 마치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은 형태'로 모자이크화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제주도가 지난 2007년 대정읍 4개 마을(무릉·신평·보성·구억리)에 걸쳐 있는 약 154만6757㎡ 규모의 곶자왈을 '제주 곶자왈 도립 공원'으로 지정했다.

앞으로 '곶자왈 도립공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은 물론 범위를 확대 지정하는 노력도 절실히 필요하다.

또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곶자왈내 지질·생태·역사문화자원의 이해, 보존과 활용에 대한 기본교육, 곶자왈 생태해설사 양성교육 등도 뒤따라야 한다.

곶자왈을 국가적으로 보전하는 방안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순천만 국가정원(926,992㎡)'처럼 무릉·신평·보성·구억곶자왈을 '곶자왈 국가정원'으로 지정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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