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의 '고유 이름'을 찾아서] 7. 우진곶

▲ 두 손바닥을 모아 오므린 것처럼 움푹 파여 있는 함몰지에 형성된 우진곶은 현재 경작지와 택지 등으로 개발되면서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고지대인 '상장머체'에서 바라본 우진곶의 모습. 특별취재팀
경작지, 택지 개발, 도로 조성으로 일부 흔적만 존재
'골개비통' '식산' '도르못' 등 여러 지구로 나눠 불려
육지 보낼 말 임시 가둬…가시덤불은 봉수대 횃나무 
 
고지도와 고문헌에는 존재하지만 현재는 개발돼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곶자왈들이 있다. 선조들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며 생명력을 뿜어왔을 곶자왈이 인간의 편리와 이익 추구, 무관심으로 지도 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진곶' 역시 일부 고령의 주민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옛 곶자왈의 단서가 남아있는 지금이라도 '기억 작업'을 서둘러야 할 때다.
 
△지대가 얕은 함몰지
 
시기를 달리하며 여러 고지도에 나타나는 우진곶은 오늘날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남쪽으로 선흘리, 와산리로 이어지는 곶자왈로 알려지고 있다.

우진곶은 5개의 고지도에 등장하는데, 「탐라순력도 한라장촉」(1702)과 「해동지도 중 제주삼현도(1)」(1750), 「제주삼읍도총지도」(1770년대)에는 '우수'로, 「탐라지도병서」(1709)와 「제주지도」(1872)에는 '우장수'로 표기돼 있다.
 
현재 우진곶 대부분은 경작되거나 택지와 도로가 들어서는 등 개발되면서 숲의 형태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때문에 곶자왈의 지명과 지경, 식생, 이용실태 등과 관련해서는 증언으로만 일부 전해지고 있다.
 
함덕리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우진곶은 지대가 아주 얕은 함몰지를 일컫는다. 정확한 숲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함덕중학교 서쪽에 건립된 김기량 순교 현양비 인근에서부터 알바매기 오름 부근까지 약 992만~1323만㎡로 추정된다.
 
우진곶은 여러 지구로 나뉜 지명을 갖고 있다. 주민들의 기억을 토대로 확인된 지명은 거뭇질, 가시남모루, 골개비통, 식산, 독머흘, 도르못, 흘물, 상장머체, 도릉굿, 여우내 등이다.
 
이 가운데 일주동로와 맞닿은 '골개비통'이라 불리는 숲만이 극히 일부 남아 이곳이 곶자왈이었음을 짐작케 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우진곶은 일부 고령자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 '골개비통'은 장마 때마다 물이 많이 고여 개구리들이 쉴 새 없이 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 왼쪽 2층 집은 본래 물이 빠지는 큰 구멍인 '숨골'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
 
우진곶은 두 손바닥을 모아 오무린 것처럼 움푹 파이면서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으로 인식돼왔다.
 
지대가 얕아 생긴 고지대와의 경계는 자연스레 '거뭇질'이라고 불리는 길로 이용됐다.
 
'골개비통' 역시 이러한 우진곶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곳으로 물이 많이 고이는 장마 때마다 개구리들이 쉴 새 없이 울어 붙여진 이름이다.
 
골개비통을 포함해 참가시나무 숲을 이뤘던 '가시남모루'는 화재로 소실된 채 일부는 개간돼 밭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가시남모루 안에는 흘러 내린 물이 스며드는 큰 구멍을 일컫는 '숨골'이 있었지만 현재는 2층 건물이 들어서있다.
 
'상장머체'는 육지로 보낼 말들을 임시 모아놨던 고지대다. 삼별초 당시 우진곶 인근에서 키운 말을 상장머체에 올려 뒀다가 가늘고 길다란 지대인 '장통밭'으로 몰아 놓은 후 화물선에 실었다고 전해진다.
 
또 우진곶의 가시덤불은 봉수대의 횃나무로 쓰였는데 상장머체 인근의 '회남동산'에서 베어놓은 가시덤불을 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큰 연못이었던 '도르못'은 조천우회도로가 조성되면서 매립됐으며, 우진곶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여우내'는 마을 사람들이 땔감을 구하기 위해 드나들었던 숲이자 이곳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골개비통까지 흘렀다고 한다.
 
이외에도 1960년대 조림사업으로 소나무를 식재하기 전까지 우진곶에서 참가시나무을 베어다 집을 짓거나 땔감으로도 활용했다고 한다.
 
김병석 전 함덕리노인회장(86)은 "우진곶은 경사가 험하고 자갈이 많아 거의 이용되지 않으면서 보존돼 오다 어느 순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며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우거진 숲을 후손에게 보여줄 수 없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경제부 한 권·사회부 고경호 기자 / 자문=정광중 제주대학교 부총장, 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

전문가 기고/ 정광중 제주대학교 부총장

함덕리의 남쪽방향으로 전개되는 우진곶은 오늘날의 곶자왈 구분에 따르면 넓게는 조천-함덕곶자왈이고, 좁게는 함덕-와산곶자왈이다.

우진곶의 '우진' 뜻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지역 주민의 안내를 통해 확인된 과거의 곶자왈 지구는 상당한 면적이 움푹 팬 곳이었다.

고지도 상에 등장하는 우진곶의 명칭은 현재 함덕리 주민들에게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곶자왈 지명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함덕리 주민들은 우진곶을 여러 지구로 나누어 부르고 있는데, 이를테면 가시낭(남)모루, 식산, 독머흘, 흘물, 상장머체, 여우내 지경 등이다.

하지만 우진곶의 일부 지구를 가리키는 이들 지명조차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지명으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우진곶의 넓은 지구가 경지로 개간되거나 택지 및 공장용지 등으로 전환돼 전체적인 범위를 연상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함덕중학교가 위치하는 지구부터 남쪽 방향의 지방도(1132)를 지나 대흘2리로 이어지는 넓은 지역이 아주 심하게 바뀌었다.

중간 중간에 경지나 택지로 이용하지 못하는 암반지구나 자왈(덤불)지대가 과거에 우진곶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도상(島狀)처럼 남아 있는 곶자왈의 흔적은 마치 현세대들에게 곶자왈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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