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신화·전설 모은 '보물창고'…신·인간 다양한 동식물로 변신
세상만물에 동등권 부여…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 애정 눈길
다양한 변신
서구문학의 자양분은 단연 그리스·로마 신화일 것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로마 신화의 영향은 상당하다. 그에 버금가는 서양문학의 고전이 있다면 오비디우스의 장편 서사시, '변신 이야기'다. 1만2000행에 이르는 '변신 이야기'는 제프리 초서를 비롯해 윌리엄 셰익스피어, 19세기의 홉킨스, 카프카 같은 작가에게도 예술적 자양분이 되었다고 한다.
신화의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신과 인간이 다양한 동식물로 변신하는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변신의 유형도 다양한데, 한 예로 유피테르(제우스)의 변신이다. 유피테르(제우스)는 수많은 신과 아름다운 인간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변신에 달통한 모습을 보여준다.
스파르타 왕비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백조로, 에우로페를 납치하기 위해 황소로, 다나에를 유혹하기 위해 황금비로 변신해 스며드는 등 그의 변신은 온통 사랑에의 구애와 유혹을 위한 행위다. 이처럼 '변신 이야기'는 신을 모독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제우스와 아폴론을 비롯한 신들이 인간에게 모범적인 행동을 보이기는커녕 비행을 일삼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또 징벌로서의 변신이 있다. 그것은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징벌적 변신이다. 그녀는 제우스의 바람기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에 질투심으로 인한 보복이 이뤄지는데, 칼리스토르를 곰으로 변하게 한다.
또 아르테미스는 자신이 목욕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변신에도 애정을 구하기 위한 변신 뿐만 아니라 징벌로서의 변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민담 등 신화·전설 한 데 모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사실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을 비롯해 그리스 신화와 라틴 민담과 전설, 심지어는 바벨론과 동양의 이야기까지 빌려왔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온갖 신화와 전설을 한 데 모아놓은 보물창고인 셈이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이야기의 출처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한 형체에서 다른 형태로 탈바꿈하는 변신의 모티브를 다룬다는 점이다.
무질서 상태에 있던 우주가 조화로운 질서로 변하는 천지창조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은 뒤에 별이 돼 하늘에 오르기까지의 온갖 변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폭넓게 다룬다는 점이다. 요정이나 짐승이 돌덩이로 변하는가 하면, 남자와 여자가 나무 돌로 변한다.
오비디우스의 상상력 밑바탕에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란 하나 같이 '변신'을 겪지 않을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점에서 그는 피타고라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일찍이 "모든 것은 변할 뿐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변화는 신이 결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또한 오비디우스의 세계관은 "인간은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질서와 조화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긴 고전주의와 비교하면 변화와 생성에 무게를 싣는 오비디우스 작품은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경계를 허문 인간과 자연
오비디우스 작품이 놀라운 점은 자연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 깊다는 사실이다. 오비디우스에게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은 적어도 영혼이 있다는 점에서 서로 형제다.
어느 때보다 자연이 파괴되고 환경이 오염되면서 삶 자체를 위협하는 지금, 이 작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천지창조 이후 시작된 네 시대를 언급하면서 오비디우스는 쇠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배반, 사기, 기만, 폭력 등 온갖 비행과 범죄를 저지르고 자연파괴를 일삼았다고 한다.
산에 무성하게 자란 소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햇빛이나 공기처럼 모든 사람이 함께 쓰던 땅을 측량해 소유권을 다투었으며, 땅속을 샅샅이 뒤져 깊이 숨어 있는 광물을 캐내기도 했다. 이 무렵 광물을 찾으려고 땅속을 깊이 파헤치는 것은 어머니의 몸속을 뒤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듯 로마 사람에게 땅은 만물을 기르고 키우는 어머니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변신 이야기'는 신들의 모습이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면서, 인간을 비롯한 세상 만물에게 동등한 우주 시민권을 주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신들의 경쟁, 암투, 배반과 질투는 고스란히 인간에게로 내려와서 인간들도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 이에 작품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라고, 좀 더 솔직해지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고전은 인간 존재와 내면, 세계의 심연으로 내려가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게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 오비디우스(BC 43~AD 17)
로마의 시인으로, 중세 유럽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그리스-로마 시대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아우구스투스 치세 말기, 팍스 로마나 시대의 평화와 번영에 찬 로마 귀족 문화 및 풍습을 우아하고 간결하게, 음악적 시구와 기지 넘치는 문장으로 표현한 로마 시대 대표적 시인 오비디우스는 당시 향락적인 귀족 사회에서 유행하던 연애시에 특히 재능이 뛰어났다.
그리스 시대의 신화와 고전에서 차용한 소재와 절묘하게 버무리고, 여기에 세련된 감각과 풍부한 수사(修辭)를 사용한 그의 시는 로마 젊은 귀족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도덕주의자들은 그가 로마의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여기고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