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힘 문화경쟁력 11.중국 항저우 '인상서호'

▲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유산이 도처에 즐비한 항저우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코스가 둘 있다. 하나는 송성가무쇼 (宋城歌舞表演)고, 다른 하나는 인상서호 (印象西湖)다. 사진은 인상서호 의 한장면.
'지역에서 지역 이야기를 지역주민들이 만드는'모델
세계유산 '서호'와 전설 활용한 '자연 친화' 공연
'제주다움' 다시 설정…고부가가 문화기술 고민 해야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중국 '인상서호'를 언급했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등 국정 기조인 '문화융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지역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가지고, 지역사람들이 준비하는' 문화콘텐츠 스타트업의 예로 꼽은 것이다. 삶의 질 향상과 신성장동력인 문화산업 활성화, 고부가가치 문화기술(CT.Culture Technology) 접목에 대한 관심을 주문한 것이기도 하다.
 
 스토리노믹스 상징 부각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다는 말은 중국 7대 고도(古都) 중 하나인 항저우에 대해 중국인들이 가지는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유산이 도처에 즐비한 항저우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코스가 둘 있다. 하나는 '송성가무쇼'(宋城歌舞表演)고, 다른 하나는 '인상서호'(印象西湖)다. 공연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중 인상서호는 오직 항저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문화상품이다.
 
송성가무쇼는 제작비 3000만 위엔, 200여명의 우수 배우들이 매일 열연하는 항저우 최고의 문화예술 공연이다. 항저우의 역사와 전설 외에도 소수민족 문화를 적절히 섞은 내용은 물론 살아있는 말이 무대에 등장할 만큼 광대한 스케일로 보는 이들의 혼을 빼놓는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이난 등에서 유사한 공연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만큼 대중적이다.
 
'인상서호'는 중국 보다는 중국 밖에서 더 주목받는 공연이자 스토리노믹스의 모델로 관심을 끈다.
 
2007년 6월 초연된 이 작품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서호(西湖)를 지역 전설과 지역주민이 어우러진 대형 야외무대로 바꾸는 시도로 단숨에 '문화 경쟁력'의 상징이 됐다.
 
"1박 필요한 야간 공연"
 
고요한 밤 호수에 거대한 달이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된 공연은 물 위란 것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유연하고 정연한 배우들의 몸짓으로 채워진다. 어둠을 헤집고 날아드는 다양한 색과 현란한 빛은 시.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극과 호흡을 맞춘 음악까지 곁들여지며 완성도 높은 예술 영화를 보는 듯 한 몽환적 분위기가 감동을 끌어낸다. 약속한 듯 탄성을 터트리고,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바빠진다.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남녀의 아련한 뒷모습까지 숨길 수 없는 깊은 여운이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든다.
 
직접 만난 '인상서호'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연출한 '인상(印象)' 시리즈 중 하나로, 전체 호수의 10% 정도를 무대로 쓰는 대형 공연은 그 규모만으로도 객석을 압도한다.
 
'인상서호'는 중국 4대 민간설화에 포함되는 '백사전'과 '양산백과 축영대'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 줄거리지만 사실 그 내용 보다는 공연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인상적이다. 무대는 물론 음향과 조명시설도 평상시에 눈에 띄지 않게 설계됐고, 승강식으로 작동되는 1300여 객석 역시 공연 때만 서호 주변에 설치된다.
 
줄잡아 400여명에 이르는 출연진 대부분은 지역 주민이다. 일부 전문 배우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다 밤에는 공연에 참가한다. 우리 돈으로 한 회 5만원 정도하는 입장료에도 매 공연 평균 1000석이 채워진다. 1회당 평균 입장 수입만 1억 여원, 연간 공연수익금은 120억원이 넘는다.
 
공연 제작사인 항저우인상서호문화발전유한공사 관계자는 "야간에 공연이 진행되다 보니 적어도 항저우에 1박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게 된다"며 "공연 수익을 포함해 지역경제에 미친 경제적 파급효과가 연간 5억 위안(87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역성의 상품화
 
'지역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가지고, 지역사람들이 준비하는'. 익숙하면서도 쉽지 않은 과정에 대한 평가는 사실 갈린다.
 
'세계적 문화관광콘텐츠'라는 평가는 중국 내부 보다는 외부에서 인정하는 부분이다. 항저우 시민들조차 자신들의 알고 있는 전설을 각색한데 대한 불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실제 객석의 절반 이상이 벽안의 외국인이다. 대만 단체 관광객을 제외한 현지 관객은 채 10%도 되지 않았다. 야외 공연이다 보니 일부 성숙하지 못한 공연 관람 문화가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부분도 적잖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단체나 가족단위 관광객들은 '송성가무쇼'를, 교수.언론인 등은 '인상서호'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스토리노믹스 측면에서 '인상서호'가 시사하는 부분은 크다. 스토리텔링에서 '텔링'은 소재에 불과한 이야기를 완성된 콘텐츠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제주는 물론이고 많은 지자체들이 지역성을 담은 이야기를 발굴하는데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이를 표현하고 상품화하는 데는 힘을 싣지 못한다.
 
'인상서호'도 결국  풀어가는 방식에서 성공했다. 스토리는 약하지만 시종일관 어둠과 빛의 대비를 활용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물그림자까지 적절히 활용하는 등 자연 친화적 연출로 '문화브랜드'가 됐다. 제주가 고민해야 할 부분도 여기에 있다.
국내 지자체 도전장 불구 상설화 공연 전무

'인상서호'를 포함한 '인상(印象.impression) 시리즈'는 지역 특화 콘텐츠 개발을 통한 글로벌 관광상품화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기획됐다. 중국 정부가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예모와 손을 잡고 소수민족들이 사는 오지 지역의 민화와 전설을 엮어 인근의 명산과 호수 같은 실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버무렸다. 중국에서는 이를 '산수실경(山水實景)' 공연이라 부른다.

실제 지역 주민들이 출연한다는 이 공연은 2003년 10월 중국 계림 양수오에서 막을 연 '인상유삼저'(印象劉三姐)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5개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국내에도 인상 시리즈를 벤치마킹한 사례는 많다. 2009년 대전광역시의 '갑천'을 시작으로 부여의 '사비미르'와 공주의 '사마이야기'가 물을 무대로 제작됐다. 아쉽게도 인상 시리즈처럼 상설화된 공연은 없다. 안동의 '왕의 나라'처럼 고택을 무대로 한 공연이 지역을 넘어 중앙 무대로 진출했지만 상당수 기획들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를 창출하는 단계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채 1회성 행사 보조 수준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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