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희망'을 쓰다 1. 중흥S크리닝 고기호 대표

▲ 고기호 중흥S크리닝 대표(58).
지난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의미있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일본 성공한 강소(强小)상인 30명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결론은 'S.T.R.O.N.G'. '절실함·성실성(Spirit)', '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객관계(Relation)', '고유 아이템(Only one)', '네트워크(Network)', '기본에의 충실(Ground)'의 앞 글자를 모았더니 말 그대로 '힘'이 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목상권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통상진흥원(원장 김진석)을 통해 골목상권에 위치한 165㎡ 이하의 소규모 슈퍼마켓, 제과점, 세탁소 및 100㎡ 이하의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시설개선사업(30개소)와 경영컨설팅(100개소)이 이뤄졌다. 올해의 경우 사업제한면적을 100㎡ 이하에서 165㎡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대상도 일반음식점까지 확대해 점포당 600만원 이내의 시설개선사업과 고객서비스 향상, 경영마인드 혁신을 위한 경영 컨설팅을 했다. '힘'을 얻은 골목상권들의 오늘을 통해 그 비결을 엿본다.
 
호텔 경력 등 바탕…끊임없는 자기 개발
전국단위 '기능인' 노력한 만큼 인정받아
 
36년 한길 기본 지켜
 
"이제 세 보니 한 36년 쯤 되는 것 같네요. 그보다는 '공부'를 많이 했죠"
 
'낼 모레 환갑'이라는 고기호 중흥S크리닝 대표(58)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대표'라는 호칭에 멋쩍은 웃음을 웃는다. 별 것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10년차 세탁소 사장님'이란 명함 뒤에 정리된 경력은 일단 짱짱하다.

처음 공장형 세탁업에 뛰어들었던 고 대표는 이후 도내 특급호텔 하우스키핑 책임자로 일하기까지 세탁관련업종에서만 26년 뼈가 굵었다. 그런 그가 세탁소 간판을 단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고 대표는 "명예퇴직 신청을 하고 바로 여기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노형동 일원에 한창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던 때였다. 주변에 세탁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상가건물에 자리를 잡으려니 공간도 여의치 않았다. 고 대표에게 주어진 면적은 33㎡(10평)남짓. 일생의 반을 '세탁'으로 채웠던 고 대표의 강점이 빛을 발했다. 세탁세제는 물론이고 옷걸이 하나, 재봉용 가위 하나 허투루 놓인 것 없이 각을 맞춰 정해진 위치에 정렬했다. 주변 지인들의 말을 빌려 '먼지 하나도 앉을 자리를 정했을'정도다.

관련 업계에서는 '중흥 S크리닝에 가면 서랍부터 열어보라'는 불문율이 있을 만큼 유명하다. 남들에게는 대단해 보이는 일을 고 대표는 '당연한 일'로 치부했다. "세탁소가 뭐하는 곳인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죠. 더러운 얼룩이나 오래된 더께를 깨끗하게 만드는 곳인데 정작 사업장이 더러우면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2차, 3차 오염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을 고객이 좋아할 리 없겠다 생각하니 매일 정리를 하게 됩니다" (기본에의 충실.Ground). 
 
▲ 중흥S크리닝.
정보 공유 시너지 확인
 
'골목'에 있는 작은 가게지만 자존감만큼은 대기업 이상이다. 고 대표는 제주에서 처음 세탁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룹에 포함돼 있다. 40대 후반의 일이다. 호텔에서 근무하며 계속해 보수 교육을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는데 주력했다. 그렇게 벌써 6년째 매달 둘째 일요일은 가게 문을 닫는다. 서울 강남에 있는 세탁 관련 모임에 참석해 집합교육을 받고 있다. 어느 순간 고 대표가 강사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도 늘었다. 미국와 일본, 독일 등과 교류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일도 일상이 됐다. 의류소비자피해심의조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차례가 돼서 받은 일은 절대 아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고 대표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게시판과 휴대전화가 분주하다. 얼룩 제거를 위한 조언을 듣겠다는 게시글에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처리 방법이 달린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알게 됐다며 못쓰게 된 모피를 복원할 수 있냐는 SOS가 날라 오기도 한다. 100%는 아니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전국으로 입소문이 난 때문이다. 고 대표는 "배운 것을 혼자만 알고 쓰면 독이 된다. 이렇게 정보를 공유하다보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고 귀띔했다. 한 번 인연이 '득'으로 돌아오는 일도 허다하다. 멀리 여수에서 배를 타고 사업장 견학을 하고 갔던 부부가 그 이듬해인가 주변 지인 서너명과 다시 찾아와 이런저런 경영 노하우를 배우고 갔다. 다시 시간이 흘러 9~10명으로 찾아오는 그룹이 커졌다.(네트워크.Network)

▲ 중흥S크리닝 외관.
예전에는 '10년을 입던'옷이 지금은 유행에 따라 1년에 10번도 바뀐다. 그만큼 알아야할 것도 늘었다. "디자인이나 기능성을 강조하다보니 옷 한 벌에 대여섯가지 세탁공정이 들어가는 일도 다반사다. 재질이나 섬유특성을 모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하나라도 더 알고 조금이라도 정보를 공유하면 도움이 된다"는 고 대표의 지론 때문일까.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은 이미 200명을 넘은 상태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고 대표가 고집스럽게 지키는 부분이 있다. '건조'와 '당일 작업'이다. 건조기능을 갖춘 대형 장비까지 나왔지만 고 대표는 최소 하루 이상 자연 건조를 고집한다. 고 대표는 "사람이 하는 일인데다 어떻게 보면 사람과 가장 밀접한 작업"이라며 "하루 이상 자연건조를 하면 보송보송한 느낌도 좋고, 궂은 냄새도 잡을 수 있다"고 예찬론을 폈다. 일감을 쌓아놓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염 우려도 있지만 신뢰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꼭 그 옷을 입어야할 사연이나 이유가 있을 텐데 나 편하자고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며 "조금 수고가 들어도 고객들이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잘했다 싶다"고 말을 아꼈다(고유 아이템.Only one)

고 대표는 "세탁이라는 게 조금만 부지런하면 '영원한 고객'을 만들 수 있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만큼 교육이나 컨설팅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오전 6시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저녁 8시면 가게를 정리하는 약속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배달은 하지 않지만 알고 찾아오는 손님이 계속해서 늘어나 먹고 사는데 어렵다 느껴본 적도 없다. 혼자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한 번도 고객과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다는 그다. 고 대표는 "세탁은 절대 밀려서 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염 사고도 없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데에 비해 적고 또 처리가 빠르니 '단골'이 늘게 되고 그러니 더 조심하게 되죠. 단골이 더 까다로워요.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알죠" (성실성.Spirit,고객관계.Relation)
 
▲ 중흥S크리닝의 서랍장을 빼곡하게 채운 단추와 각종 수선소품들.
투자 없이는 발전이 없다 

직장 경험은 힘들었던 만큼 약이 됐다. 고 대표는 3년에 한번 꼴로 외벽 광고물 선팅을 교체한다. 일종의 투자다. "투자를 한다는 것이 대기업만 하는 일은 아니예요. 나야 안에 있지만 소비자는 밖에서 이 곳이 믿을 만 한지를 결정하죠"
 
이번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통상진흥원으로부터 골목상권 시설 개선과 컨설팅 지원사업을 받는 과정에서도 타 업체에 비해 조금 적은 520만원을 지원받았다. "특별히 손 댈 곳이 없어 보인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 대표는 "이번 기회에 간판을 고치고 진열장이며 수납공간을 정리했다"며 "할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손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고르고 고른 결과"라고 말했다. 고 대표의 말은 사실 엄살이다. 청결.정리가 몸에 밴 고 대표는 33㎡ 남짓한 공간을 살뜰히 활용해왔다. 이번 지원을 통해 정리정돈 효과가 배가 되면서 활용도도 2배가 됐다.

지원 때문만은 아니지만 사업 참여 이후 매출이 20% 이상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고 대표는 "어떻게 알았는지 제주에 진출한 면세점 유니폼 작업을 맡게 됐다"며 "마침 시설 정비까지 마친 참이라 계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귀띔했다. 고급 유니폼이라 공정 하나하나 신경 쓸 것이 많지만 '믿고 맡겨준'데 대한 책임을 다하는 고 대표에 대한 신뢰는 입소문을 타고 관련 업계에 퍼졌다.

그렇다고 청기와 장수 마냥 자신만 챙기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고 대표는 "혼자 하다 보니 일이 밀리면 원하는 만큼 서비스를 할 수가 없다"며 기꺼이 주변 세탁소를 안내해 준다. 골목상권이니 만큼 골고루 잘 돼야 균형이 생긴다는 지론 때문이다. "동네 장사라는 것이 빤하지 않냐.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면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고객도 공유하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강조했다.

그를 스승으로 창업한 '후배'역시 자랑거리다. 불쑥 "일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제자는 6개월을 정말 열심히 배웠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창업을 한 뒤에도 스승을 귀찮게 구는 일은 여전하다. 고 대표는 '자극'이라고 정리했다.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 얼룩은 어떻게 빼야 하는지 시시콜콜 묻는 전화도 자주 온다"고 말하는 고대표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실린다. "이웃사촌이란게 그런 게 있다. 옆집에 뭐가 좋은지 보고 더 좋은 것을 찾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먹기도 하고. 골목상권이라고 다른 건 없다. 가끔 장사가 잘 되나 살피러 가서 고객응대나 여러 가지를 배우고 온다. 제자가 잘하는 것을 보면 저절로 기분도 좋아진다. 골목상권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냐"'(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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