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희망'을 쓰다 2. 진영세탁 송창학·고문주대표

▲ 진영세탁 송창학·고문주 대표.

지난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의미있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일본 성공한 강소(强小)상인 30명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결론은 'S.T.R.O.N.G'. '절실함·성실성(Spirit)', '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객관계(Relation)', '고유 아이템(Only one)', '네트워크(Network)', '기본에의 충실(Ground)'의 앞 글자를 모았더니 말 그대로 '힘'이 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목상권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통상진흥원(원장 김진석)을 통해 골목상권에 위치한 165㎡ 이하의 소규모 슈퍼마켓, 제과점, 세탁소 및 100㎡ 이하의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시설개선사업(30개소)와 경영컨설팅(100개소)이 이뤄졌다. 올해의 경우 사업제한면적을 100㎡ 이하에서 165㎡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대상도 일반음식점까지 확대해 점포당 600만원 이내의 시설개선사업과 고객서비스 향상, 경영마인드 혁신을 위한 경영 컨설팅을 했다. '힘'을 얻은 골목상권들의 오늘을 통해 그 비결을 엿본다.
 
"수익, 몸 움직이는 만큼 만들어지는 것"
컨설팅.시설 개선 등 '재투자' 효과 실감
 
△성실함이 '진리'

"처음에는 동네 여기 저기에 스티커를 붙이는 게 일이었죠. 지금은 알고 찾아와요"

'진영세탁'은 17년 동네 터주대감이다. 동네가 생길 무렵 간판을 달았고, 같이 늙어갔다. 연삼로에 접해 있기는 하지만 작은 골목을 두 개나 돌아 들어가야 하는 위치라 특별히 '목'이 좋다는 말을 하기는 힘들다.

말이 좋아 '세탁소'지 처음은 허드레 심부름으로 시작했다. 동업 형태로 전기사업을 하던 *송창학 대표(48)는 1998년 외환위기(IMF) 광풍에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든 식구들을 굶기지 않을 생각에 세탁 일을 배웠다. 어깨 너머 하나 둘 요령을 익힌 뒤 가게를 열었지만 이내 집세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다. 어렵게 대출을 얻어 2001년 현 위치에 가게를 냈다.

밖에서는 '사장'이라고 불렀지만 온종일 몸으로 하는 일이 쉬울 리 만무했다. 회계 처리며 고객 관리 같은 말이 외국어처럼 들렸다. 송 대표는 "하루 매상을 정리해서 얼마나 남았나, 이 정도면 임대료며 생활비가 될까 하고 맞추는 것이 전부였다"며 "누가 동네 사람인지, 누가 처음 오는 손님인지 보다는 하루 몇 명이나 옷을 맡겼나를 봤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가족 경영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카펫 등 다른 세탁소에서는 쉽게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있어서였다.

2007년 고비도 있었다. 태풍 나리 때 세탁공장이 피해를 봤다. 당시 40~50장이나 되는 카펫이 못 쓰게 되면서 손실이 컸다.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나 싶었지만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었어요. 몸을 움직이는 만큼 돌아온다는 진리죠. 이를 악물고 버텼더니 볕이 들더라고요"(절실함·성실성.Spirit)
 
▲ 진영세탁 내부.
△ 친절함과 자기개발 '승부'

5년 전부터 송 대표는 '외유'를 시작했다. 골목상권이 힘들어지던 무렵이다. 그림자처럼 옆을 지켜줬던 아내(고문주 대표.47)가 있어서 가능했다. 송 대표는 "그동안이야 동네 손님들로 어찌 어찌 버텼는데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여기 저기 수소문 했더니 세탁 기술 교육을 하는 곳이 있어서 이 거다 싶었죠"

처음 비행기 표를 끊을 때만 해도 '헛돈을 쓰는 것 아닌가'했던 노파심은 이내 '잘했다'로 바뀌었다. 서울 강남 지역에 개설된 전문 교육에서 영업 노하우와 새로운 기술을 전수받으며 자신감도 붙었다. 하나 씩 배우기 시작하면서 표정이며 고객 응대도 달라졌다. 그 중 하나가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꼼꼼하게 고객을 살피는 것은 절반 이상 고 대표의 몫이다.

고 대표는 "늘 잘 해줘야겠다고 생각할 때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작은 얼룩 하나를 손보다 옷이 망가지는 일도 있고 잘 보관하던 옷이 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옷의 역할이 기능성과 디자인으로 바뀌면서 사고도 늘었다. 그 만큼 피해를 산정하는 일도 힘들어졌다. 고 대표는 "티셔츠 하나에 10만원 돈이 넘기도 하고 옷은 한 벌인데 세탁은 3~4번에 나눠해야 할 만큼 여러 소재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며 "어디에 어떻게 얼룩이 생겼고 하는 간단한 정보라도 주면 좋은데 말없이 맡기고 가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작업을 했지만 모두가 만족하지는 것은 아니다. 고 대표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 만족스럽게 정리가 된다"며 "가게 문을 닫고 나가면 이웃인데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지 않냐"고 말했다.

몇 해 전인가 한 벌 양복 바지를 잃어버렸던 일은 두고두고 교훈이 됐다. "분명 윗도리 하나와 바지 2개를 맡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중 바지 하나를 못 찾겠는 거예요. 가게를 다 뒤집다 시피해도 없어서 사정을 얘기하고 변상을 하겠다고 했죠. 고가 양복이라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 고객 분이 '반 값'만 받겠다며 사정을 봐주셨죠. 묘한 게 한두달 지났을까.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바지가 다른 옷들 틈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잘 손질하고 다시 가져다 드렸죠. 그분요? 지금은 단골 중 단골이죠"(고객관계.Relation)
 
▲ 진영세탁 외관.
△투자한 만큼 돌아와

송 대표가 배운 것은 '세탁 기술'만이 아니다. 서울 등을 몇 차례 오가며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정보를 채우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시설개선.컨설팅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낼 때도 주변의 귀띔이 영향을 미쳤다.

분명 시장 환경이 달라졌다. 한동안 비디오대여점 숍인숍 형태의 세탁소가 등장해 가격경쟁을 하느라 곤욕을 치렀고 코인빨래방에 공장형세탁소까지 시장에 진입하며 혼을 뺐다. 운동화빨래방처럼 틈새를 노린 업종도 생겼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분명 달라져야 했다.

이번 시설 개선.컨설팅 지원 사업으로 송 대표가 지원받은 금액은 600만원이다. 

이를 통해 무려 14년 만에 '간판'을 바꿨다. 그동안 그날 벌이에 급급하며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다. 동네 입구에 입간판도 세워졌다. 122㎡ 공간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동선에 따른 작업장 재배치가 이뤄졌고 고객응대를 위한 카운터가 만들어졌다. 카운터 앞에 작은 의자 하나도 놨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변화가 만든 성과는 컸다. 시설 개선 전과 비교해 매출이 30~40% 정도 늘었다.

▲ 진영세탁 내부.
송 대표는 "의자 하나가 정말 대단한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세탁소에 들어서며 여유 있어진 분위기에 놀라고 하얀색으로 통일된 공간에 놀라워한다. 의자는 '소통'수단이 됐다.

옆에 있던 고 대표도 "세탁소라는 곳이 생각보다 정이 없는 공간이었다"고 거들었다. 허겁지겁 옷을 맡기고 가고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가격을 지불하고 세탁물을 찾아간다. 대화의 90%는 '흥정'이다. 좋은 소리만 오고 갈 리 만무하다. 의자가 생기고는 대화가 늘었다. 고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요즘 세탁소에 나와 있는 것이 즐거워졌다". "손님들이 먼저 '커피숍'같다고 자리를 잡는다. 혹시 기다리는 상황이 되도 불평 대신 자리를 잡고 다과를 즐긴다. 예전에는 꿈도 못 꿨을 일"이 현실이 됐다. 입간판을 보고 골목 안까지 찾아온 손님들이 '고객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하얀 실내 공간'은 순전히 송 대표의 아이디어다. 자비 400만원을 더 들여 공을 들였다. "이왕 투자를 하는 것 다른 곳보다 하나라도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시설 개선을 한 업소를 다 둘러봤다"는 송 대표다. 세탁소 곳곳에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장비가 눈에 들어오는 것 역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인터넷 카페에서도 이런 도전이 빛을 발한다. 처음에는 세탁 정보를 얻는 역할에서 모자 다림기계 같은 아이디어 상품을 공동구매하며 덕을 톡톡히 봤다. 최근에는 아예 송 대표가 고안한 운동화 건조용 아이디어 상품이 카페를 통해 전파되는 상황이 됐다.(네트워크.Network)

송 대표는 "기본에 충실(Ground)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명 고비가 있었고,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환경도 달라졌지만 '기본'만은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다. 

송 대표는 "건조기는 가급적 쓰지 않아요. 소재에 따라 변형이 생길 수 있거든요. 이불이던 카펫이던 최소 하루는 자연 건조를 합니다. 17년 동안 그 것 만큼은 지켜왔어요. 그것을 믿고 찾는 고객들이 있으니까요"
점점 골목이 재미있어지고 있다. 송 대표는 골목상권을 '사람 아는 재미'라고 정의했다. "우연히 동네 마트에 갔는데 누가 아는 체를 해요. '우리 어디서 봤을까요' 묻는데 '아 세탁소'하며 웃게 되요. 모르는 얼굴을 보면 먼저 묻게 되죠. 이사를 왔는지 지나다 들렸는지. 새로 왔다면 동네 정보도 주고 다시 보면 잘 지내냐고 살피게도 되고. 이런 게 사람 아는 재미죠".(고객관계.Relation)'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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