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희망'을 쓰다 11. 주노클리너스 이준호 대표

▲ 주노클리너스 이준호 대표가 세탁작업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의미있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일본 성공한 강소(强小)상인 30명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결론은 'S.T.R.O.N.G'. '절실함·성실성(Spirit)', '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객관계(Relation)', '고유 아이템(Only one)', '네트워크(Network)', '기본에의 충실(Ground)'의 앞 글자를 모았더니 말 그대로 '힘'이 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목상권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통상진흥원(원장 김진석)을 통해 골목상권에 위치한 165㎡ 이하의 소규모 슈퍼마켓, 제과점, 세탁소 및 100㎡ 이하의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시설개선사업(30개소)와 경영컨설팅(100개소)이 이뤄졌다. 올해의 경우 사업제한면적을 100㎡ 이하에서 165㎡ 이하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대상도 일반음식점까지 확대해 점포당 600만원 이내의 시설개선사업과 고객서비스 향상, 경영마인드 혁신을 위한 경영 컨설팅을 했다. '힘'을 얻은 골목상권들의 오늘을 통해 그 비결을 엿본다.
 
가게 인수 후 3일 만에 IMF 터져…'품질 승부'
새벽까지 인터넷 강의 등 끊임없이 연구·투자
스포츠웨어 전문 취급점 전환 등 변화 앞장서
'기본'지키는 데 충실, 기억해주는 '단골' 꿈꿔  
 
한 때 손에 기름때를 묻힐수록 돈을 벌었던 설비 기술자가 깨끗함에 도전할 때 주변 사람들은 설레설레 고개부터 흔들었다. 쉽지 않은 도전에 사정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주저앉기 보다는 새로 일어서는 방법을 찾았다. 40대 사장의 '3전 4기' 오뚝이 도전사다.
 
△ '전문성' 무기로 승부

"그 때는 '세탁소하면 돈 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갓 서른을 넘길 때였을 거예요. 어차피 고생할 거면 돈이라도 벌어보자 싶었죠. 그래서 '덜컥' 시작했어요" 
 
지금이야 제 때 취직하고 매달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가 낫다지만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기였다. 이준호 대표(47)는 도내 대형호텔 설비 담당 자리를 버리고 그동안 모았던 돈과 퇴직금을 탈탈 털어 세탁소를 인수했다. 주변에 '개업 떡'을 돌리며 얼굴을 비춘 것도 잠시 불과 3일 만에 외환위기 상황이 벌어졌다. 잘 나가던 가게들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판이었다. '초짜' 사장에 가뜩이나 손에 익지 않은 일이 오죽했을까. 다행이었던 것은 그 전에 어땠는지 비교할 것이 없어 '제로(0) 베이스'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 주노클리너스 외관과 이준호 대표.
이 대표는 "'전에 얼마를 벌었는데'하고 무너졌다면 그 때 일을 접었을 것"이라며 "한창 신제주 상권이 커지던 때라 고정 수입이 있었던 것으로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7년을 버텼지만 무릎에 탈이 났다. 세탁 특성상 무릎이 버텨주지 않으면 아무리 공을 들여도 만족스런 품질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 끝에 자진 폐업을 했다.

꼬박 1년여를 쉬고 난 이 대표가 다시 선택한 것도 '세탁소'였다. '잘 나가던' 신제주 대신 지금의 자리를 선택한 데는 '한계'가 기준이 됐다. "세탁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돈이 되죠. 그렇다고 뾰족한 재봉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번 몸이 망가지고 나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버는 것이란 걸 알게 됐죠"(기본에의 충실.Ground)
 
△'제대로'에 대한 고민

마음을 비운 대신 '제대로'에 대한 고민은 커졌다.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이 대표는 '한국세탁기술연구회'에 가입했다. 꼬박 1년간 새벽 3~4시까지 인터넷 강의를 통해 세탁 기술을 터득했다.

이론 교육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한 달에 최소 1번 이상 비행기를 타고 실습 등 전문 교육을 받으러 갔다. 일본에서 2000만원 넘게 전문 세제를 사들인 일은 주변에서도 공공연히 회자되는 일이다.

이 대표는 "세탁소에서 하는 일중 가장 까다로운 것이 '얼룩제거'"라며 "갈수록 옷감이 다양해지는 만큼 오염원인도 다양해져서 현상 유지로는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수차례 강의를 들으며 귀동냥한 일본 전문약품을 직구매 형식으로 사들였다. 지금과 달리 당시 환율을 생각하면 혀를 내두를 일이었다. 

이 대표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며 "세탁은 화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물론 지식·전기 등 설비까지 공부해야 하는 복잡한 분야"라고 정의했다.
 
한국세탁기술연구회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었던 이 대표는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계발 끝에 현재는 후배 세탁인을 위한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 대표는 "무슨 일을 하던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덕을 봤다"며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하다보니 지금은 전문 약품을 직접 제조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갖추게 됐다"고 어깨를 으쓱했다.(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기본에의 충실.Ground)
 
△ '알아야 조언' 마케팅

'클리너스'란 이름 역시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한국세탁기술연구회 내 '클리너스'클럽만 쓸 수 있는 상호다. 그만큼 자부심이 생기는데다 '세탁 전문 네트워크'를 통한 시너지 효과도 크다.

이 대표는 꾸준히 클리너스클럽에 속한 전국 각지 세탁업 종사자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다양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해외의 최신 세탁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블로그와 카페를 개설해 단골은 물론 세탁법이나 관리법이 궁금한 일반인들에게 '고급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에피소드는 유용한 팁으로 활용되고 있다.

"단골손님 중 은행원이 있는데 불쑥 '옷을 사면 엉덩이 쪽만 헐어서 걱정'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찰에 잘 견디는 옷감이 뭐가 있느냐고 묻길래 모와 폴리가 섞인 '혼방의류'를 추천했죠. 한 몇 개월 지났나 '고맙다'며 퇴근길에 과일 한 봉지를 건네고 가더라고요"

이 대표 특유의 꼼꼼함은 고객 만족으로 이어진다.

세탁 의뢰를 받을 때 고객 앞에서 옷에 묻은 오염 물질을 꼼꼼히 살피는 통에 '시간 없다'는 핀잔을 자주 듣기도 하지만 대신 각 단골의 특성과 의류의 종류에 맞는 옷 관리법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 덕에 세탁방법을 묻기 위해 일부러 찾는 고객도 생겼다. 전문성을 갖춰야만 할 수 있는 이 대표만의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이 대표는 "최근에는 폴리와 레이온 소재의 옷들이 많이 나오는 데 이러한 옷감은 1년만 입으면 쉽게 탈색이 된다. 또 순모 100% 옷은 세제를 잘 못 사용할 경우 훼손되기 쉽다"며 "고급 의류가 늘어난 만큼 관리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네트워크.Network) (고객관계.Relation)
 
▲ 주노클리너스 이준호 대표.
△시대 변화·고객 니즈 발맞추기

전문 스포츠웨어 등 기능성 의류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세탁소마다 매출 부진의 늪에 빠졌다. 다시 이 대표의 오뚝이 기질이 발휘됐다. 이 대표는 낙담하는 대신 기능성 의류별 세탁법을 연구, 세탁소 카운터에 '전문 스포츠웨어 기능성의류 전문취급점' 명패를 달았다.

바로 물빨래가 되는 기능성 의류가 나왔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일부 스포츠웨어 브랜드에서 손님들에게 여기를 전문 세탁소로 추천해주는 일도 있다"며 "노력하면 통한다는 말이 이런 것 아니겠냐"고 호탕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 자신감은 '투자'로 이어졌다. '품질 향상'을 위해 제주도 경제통상진흥원의 '골목상권 시설 개선 및 경영컨설팅' 선뜻 지원했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카운터를 새로 정비하고, 벽면 세탁소 이미지를 담은 판넬을 제작했다.  그동안 잘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손봐야 할 부분이 많았다. "세탁소 공간을 품질관리에만 쓸 것이 아니라 고객 관리를 위해 활용하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며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카운터라는 공간으로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신선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목표도 일부 수정됐다. 제1과제는 고사양의 세탁 기계를 갖춘 세탁소의 '대형화'다. 공장형 세탁소와는 분명히 금을 그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세탁된 '깨끗한 옷'을 입게 하는 게 세탁소의 '기본'을 지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음은 '단골'이다. 자주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주는 것을 원한다. 이 대표는 "귀하고 비싼 옷일수록 얼룩이 생기거나 해지거나 하면 그 상실감이 크다. 그 마음을 지켜주는 일을 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을 때 '어디가면 해결된다'는 말처럼 기분 좋은 말은 없다"고 말했다.

골목상권에서의 위치 역시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 대표는 "품질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찾아와준 손님들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는 세탁소의 존재 가치"라고 강조했다.(명확한 목표 설정.Target)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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