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김선현씨 『그림의 힘』

▲ 「그림의 힘」은 저자가 임상현장에서 효과가 좋았던 명화들을 엄선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의 힘에 대해 설명해준다. 사진은 장 조프루아의 '더 칠드런스 클래스'

마음에 평온주는 그림해설서
유머·재치 가득한 명화 소개
동화 한 편 다양한 감상 가능


마음의 피로 호소하는 독자들 많아

예술의 힘은 독자나 관람자, 청자로 하여금 감정의 정화와 사유의 깊은 숲으로 안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울적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음악을 듣거나 시 한 편 읽는 것, 그림 한 장 보는 게  위로가 될 수 있다. 복잡다단한 사회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더더욱 예술친화적인 삶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요즘 서점가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가운데는 부쩍 예술에 관한 책이 많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충전하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지만 그보다도 마음의 피로를 호소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그림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주제별로 보면 그림으로 읽는 역사, 그림으로 읽는 철학, 그림으로 읽는 세계... 등이다. 그 가운데 「그림의 힘」이라는 책이 주는 마음의 평온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그림 한 장 감상만으로도 휴식과 평온이 생길 수 있음을 확인한다.

「그림의 힘」은 미술치료사 김선현씨의 그림 해설서다. 그림에 대해 문외환인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쉬운 그림 해설서라고 보는 게 낫겠다. 책의 서문에서 '오랜 기간 미술치료를 해온 저자가 임상현장에서 효과가 좋았던 명화들을 엄선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의 힘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준다'고 밝혔듯이 한 장 한 장 그림이 주는 느낌이 색다르고 편안하다. 그림 관련한 책들이 갖는 공통점은 배경지식을 상당히 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배경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다.

오히려 배경지식이 끼어들지 않는 독자들이라면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과 조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의 표지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비롯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앙리 마티스의 '붉은 조화', 에드가 드가의 '스타', 빈센트 반 고흐의 '수확하는 농부' 등 수십종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림들의 주제는 '일, 사람 관계, 돈, 시간 그리고 나'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계, 정신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 인문학이라면 이 책은 인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을 편안하게 익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놓게 하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다.

소개되는 그림 가운데는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그림들도 꽤 있다. 또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펼치게 하기도 하고, 시대의 변화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림들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그림은 절로 미소를 짓게한다.

▲ 장 조프루아 작 '딱 한 입만'


작품이 주는 다양한 느낌

프랑스 화가 장 조프루아(1853~1924)의 그림이다. 장 조프루아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화가 중 한사람이다. 그가 그린 그림 중에는 '꿈을 쫓는 아이들' '선생님, 고맙습니다' '수학문제', '혁명일의 아이들' '금붕어를 든 어린이들' '싫어도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아이들' '벌 받는 중' '개에게 밥 주는 아이' 등 주로 아이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가 그린 그림들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미소와 솔직한 마음들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 '더 칠드런스 클래스'는 1889년 프랑스의 한 교실 풍경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지난 프랑스의 교실인데도 그리 오래지 않은 시대의 풍경같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은 시대나 지역을 불문하고 비슷한 분위기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 친구와 수다떠는 아이, 연필 장난하는 아이, 이마를 짚고 골머리를 앓는 아이, 수업에 상관없이 딴전피는 아이 등 모두가 다른 표정의 다른 행동, 다른 생김새, 다른 옷차림의 아이들이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림을 보면서 이러한 다름이 너나할 것 없이 존중되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등급이 매겨지고, 당락에 따라 삶에도 우열이 갈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장 조프루아의 작품 '딱 한 입만'을 더 보자.

그림 속의 아이의 표정을 보면 한 입만 먹고 싶어하는 아이와 '절대로 안줄거야'라며 마음을 다잡는 아이의 표정이 아주 솔직히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서서 "조금 주지 그러니?"라고 조용히 묻는 친구의 겸연쩍은 모습도 선명이 읽힌다. 마치 현덕 동화의 '포도와 구슬'에 나오는 기동이와 노마가 포도와 구슬을 가지고 서로 자신이 가진 게 더 우월하다고 뽐내는 것처럼 익살스럽다.

그림 속에서 연상되는 이야기를 꺼내 읽으니 그림과 글은 다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이야기를 색과 형태로 캔버스에 옮긴 것이라면 글은 그림을 문자로 옮겨놓은 것이다. 한 편의 그림과 한 편의 동화, 이렇게 짝을 지어 감상하니 마음이 더욱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마음이 무거운 날은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장 감상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거뜬한 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현덕 동화 '포도와 구슬'
꼬마들의 귀여운 신경전

기동이는 포도 한 송이를 가졌습니다. 노마는 유리 구슬을 여러 개 가졌습니다. 기동이는 얼마나 맛있는 포도인가를 보이기 위하여 노마 앞에서 한 알씩 따서 한참씩 눈 위에 쳐들어 보다가는 먹습니다. 노마는 얼마나 가지고 놀기 좋은 구슬인가를 보이기 위하여 기동이 앞에서 한 알씩 구슬을 땅바닥에 굴립니다.

그러다가 노마는 구슬 하나를 내밀고 입을 열었습니다.

"너, 이것하구 바꿀까?" "뭣하구 말야." "포도하구 말야." "이런 먹콩 같으니." "그럼, 구슬 두 개허구." "난 일없어." "그럼, 세 개허구." "그래두 일없어." "그까짓 먹는 게 존가. 가지고 노는 구슬이 좋지." "그래두 난 일없어."

노마는 구슬 네 개를 내밀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이것하구 바꿀까?" "몇 개 하구 말야." "구슬 네 개허구." "난 일없어." "그럼, 구슬 다섯 개 허구." "그래두 일없어." "그럼, 구슬 다허구." "그래두 일없어." "그까짓 먹는 게 존가. 가지고 노는 구슬이 좋지." "그래두 난 일없어."

그리고 기동이는 가지고 노는 구슬보다 먹을 수 있는 포도가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보이기 위하여 노마 앞에서 아주 맛있게 포도를 먹어 보입니다.

마침내 기동이는 포도 한 알이 남았습니다. 기동이는 한 알을 내밀고 입을 열었습니다.

"너, 이것하구 바꿀까?" "무엇하구 말야." "구슬 다허구 말야." "이런 먹콩 같으니." "그럼, 구슬 다섯 개허구." "그래두 일없어." "그럼, 구슬 세 개허구." "그래두 일없어." "그럼, 구슬 한 개허구." "그래두 난 일없어." "그까짓 가지고 노는 게 존가. 먹는 포도가 좋지." "그래두 난 일없어."

그리고 노마는 먹는 포도보다 가지고 놀 수 있는 구슬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보이기 위하여 기동이 앞에서 아주 재미있게 구슬을 굴려 보입니다. '소년조선일보'(1938년 9월25일)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