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서 주인공 장승업을 화가의 길로 이끄는 선비 ‘김병문’역을 맡아 지난 7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영화배우 안성기씨(49)를 28일 서귀포 리조트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탐라대 정책개발대학원 최고정책과정 강연차 제주를 방문했다.

▲제주 촬영 감회 새로워.

 -86년 공포의 외인구단 중 가장 인상적인 지옥훈련 장면을 바로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성산 일출봉에서 치고 달리면서 야구 연습하는 장면을, 차귀도에서는 발목에 족쇄를 하고 개펄에서 뒹굴고 절벽을 오르내리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감회가 새롭다.

 제주도에서도 작은 영화제가 열렸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기존 영화제를 제주에 유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제주인들이 직접 제작·참여하고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영화제가 마련됐으면 한다. 

▲‘무사’ 그리고 에피소드

 -김성수 감독의 ‘무사’에서 활쏘기의 명수 ‘진립’으로 출연했다. 지난해 촬영을 위해 5개월을 넘게 중국 서부 사막지역에서 보냈다. 보통사람이면 견디기 힘든 조건인데도 어려움을 별로 못 느꼈다. 조연출을 맡은 한 중국 스태프가 “체력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더라.

 촬영장에서도 비슷했다. 스태프, 연기자 통틀어 내가 가장 연장자다. 아무리 어려운 장면을 찍을 때에도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임권택 감독과 ‘취화선’

 -‘취화선’ 촬영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임권택 감독 작품은 ‘축제’ 이후 5년만이다. 내가 맡은 ‘김병문’은 주인공 장승업(최민식)을 거지패에서 꺼내 화가의 길로 이끄는 선도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무사에서 맡았던 ‘진립’과 비슷하다.

 영화를 계속하면서 더욱 힘이 솟는 기분이다. 촬영을 거듭할수록 대사처리가 나아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핸드폰이 매니저

 -매니저 없이 혼자 일을 한다. 스케줄 일정을 스스로 맞추고 출연교섭을 위해 직접 감독이나 제작자를 만난다. 너무 힘들 때는 매니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하지만 지금이 더 편하다. 후배 배우들에게 돈을 쫓아가거나 시간 날 때 빈둥거리는 것은 스스로를 소모하는 일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평소에는 술을 안 마신다.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동석해도 다른 사람들이 ‘술 맛 안 난다’고 그냥 집에 가라 할 정도다. 대신 잡기에 능하다. 배우라면 스스로 체력관리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골프를 치거나 축구, 낚시를 즐겨 하는 편이다. 

▲조연 그리고 영원한 영화배우

 -최근 조연을 많이 맡고 있다. 전에 주연을 많이 했으니까 조연을 맡는 것도 괜찮다(웃음). 상영중인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에서 살인사건의 비밀을 손에 쥔 ‘황석’을 맡았고, ‘취화선’‘무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영화기획이 젊은 배우를 주연으로 하다보니까 그런 것 같다. 내가 참여하는 영화는 배역의 크기보다 시나리오를 본 후 매력을 느끼고 내가 꼭 필요한 인물인가가 더 중요하다. 

 또 배우 안성기하면 영원한 영화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할리우드의 숀 코너리를 보면 나이를 먹어도 연기력이나 매력을 전혀 잃지 않는 것 같다. 배우들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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