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의 해양생태 보고서
17. 겨울에 보이는 생물

교미시기에 접어든 암수 넙치 한 쌍. 넙치는 수컷의 크기가 최고 1m까지 자란다.

계절에 따른 변화상 뚜렷해
제주바다 생물 움직임 관찰
철따라 이동하고 생명 움터
모자반 성장…홍삼 등 출현


우리나라 삼면의 바다와 제주바다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산야에 싹이 나고 낙엽이 지기까지, 철새들이 알맞은 기온을 찾아 국경을 넘나드는 것처럼, 바다 속 식물들도, 온갖 어패류들도, 계절마다 변하는 수온에 따라 그 자리에서 낙엽이 되는가 하면, 국가를 초월하여 또 다른 해양으로 이동하고 이동해 오기도 한다. 몇 일전 첫 눈을 맞으면서 우리는 겨울을 실감했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이 계절에 수중세계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남쪽나라로 가는 삼치 떼 배웅

11월 한 달간 서귀포시 범섬의 수중에서 삼치 떼를 세 차례나 조우했다. 수중탐사를 매번 범섬만 다니는 것이 아닌 만큼, 기상악화 등으로 바다에 못나가는 날도 빼고 나면 세 차례의 조우는 높은 확률이었다. 수중에서 만난 삼치는 700~1500마리 정도의 큰 무리를 짓고 빠르게 유영했는데, 그들을 볼 때마다 한결같이 남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몸길이 최대 1m까지 자라는 농어목, 고등어과의 삼치는 온대성, 아열대성으로 따듯한 바다를 찾아다니는 회유성어종이다. 삼치는 우리나라 바다의 수온이 높아지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큰 무리를 지어 남해연안에서 생활하며, 난류의 세력이 강해지면 일부는 동해북부까지 이동하기도 한다. 최고수온을 기록하는 9월, 10월이 지나고 수온이 조금씩 떨어지는 11월에는 삼치들이 따듯한 바다를 찾아 일본 남부해역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그 일부가 제주바다를 지나간다. 이 시기의 어선들은 삼치 트롤링낚시가 활발해지고, 동시에 새로운 수온을 찾아 몰려드는 부시리(히라스) 조업에 바빠진다. 

내년 봄 해중림 기대

미역, 다시마처럼 바다의 식물이라 일컫는 해조류는 제주연안에 410종의 서식이 보고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한해살이인 1년생. 제주연안에 해중림을 이루는 대표적인 해조류는 모자반과 감태로 이들은 다년생이다. 감태는 연중 해중림을 이루면서 겨울철 성체들 사이에서 어린개체의 새싹을 올린다. 이맘때의 모자반은 마치 쑥이 올라오는 것처럼 싹을 틔우고, 겨우내 최저수온에서 왕성한 성장력을 발휘한다. 10m 안팎까지 자라나는 모자반은 다른 해조류들과 마찬가지로 3~4월에 최대로 성장하고, 수온상승이 시작되는 5월 중순 쯤 녹아 풀어지기 시작하면서 뿌리부근의 중심 줄기가 끊어진다.

지난 봄철의 경우, 모자반이 한창 자라서 밀림과 같은 해중림을 이루고 있어야 할 자리에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그 수를 세어볼 만큼이나 빈약했던 사실을 수중탐사 후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 겨울에 새로 올라오는 어린모자반들을 보면 벌써부터 빽빽한 개체를 보여 돌아오는 봄철에는 예년과 같은 해중림이 형성될 것을 기대해 본다.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홍삼과 어른 팔뚝을 비교해보았다. 홍삼은 돌기해삼 중 유독 큰 편에 속한다.

산란을 위한 움직임

넙적한 체형 때문에 흔히 '광어'라 부르는 넙치. 넙치는 5월~10월까지 제주연안에서 발견되지 않다가 11월~4월까지 비교적 흔하게 관찰된다. 혹, 5월~10월에 스쿠버다이빙 도중 넙치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양식장에서 기르던 것이거나 방류한 치어가 성장하는 넙치이다. 순수 자연 상태의 넙치는 최저수온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11월부터 제주연안의 낮은 수심에 출현하는데, 그 이유는 따로 있다. 

수심 10~200m의 연안의 모래나 펄 지역에 서식하는 넙치는 봄부터 가을까지 깊은 수심에서 살다가 산란을 위해 연안의 낮은 수심대로 올라오는 경우와, 서해안에 서식하던 넙치가 겨울철에 남쪽으로, 즉 제주해역으로 무리지어 이동하여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여 산란하는 경우이다. 넙치의 산란기는 2월~6월이며, 이를 위해 차가운 수온을 피해 겨울철 제주연안으로 몰려든다. 서해연안의 최저수온은 3도이며, 제주연안의 최저수온은 12~15도이다. 그러고 보면 넙치의 서식에 알맞은 수온은 12~15도로 가늠해 볼 수 있다. 겨울철 제주연안에 몰려드는 넙치의 크기는 평균 60~80cm의 성어들이며, 최고 1m 안팎의 대형넙치들이 관찰되기도 한다.

수은 15도 이하 활동성 ↑

제주해녀들이 채취하는 흔히 홍삼이라고 하는 해삼은 1년 내내 제주바다에서 사는 것이 아닌, 출현시기가 넙치처럼 겨울철에만 나타난다. 홍삼의 본래명칭은 '돌기해삼'이며, 등판에 뾰족한 돌기가 발달하여 돌기해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퍼져 서식하는 돌기해삼은 회색, 갈색, 암갈색, 흑색, 홍색 등으로 채색이 매우 다양하다. 먹이는 잡식성으로 해조류, 펄, 암반의 유기물 등과 썩은 부패물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홍삼의 경우는 암반의 미세한 해조류를 주먹이로 하여 홍색을 띠는 원인이 된다. 이는 제주연안에 미세해조류가 풍부하다는 것이며, 홍색 이외 다른 채색의 돌기해삼이 서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제주바다의 돌기해삼은 오직 홍삼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먹이원이 그러하여 홍삼이 된 까닭에 다른 해역의 다른 색깔의 돌기해삼을 제주바다에 옮겨 놓으면 홍삼으로 변하게 된다. 제주바다의 홍삼은 수온 15도 이하에서 식욕이 왕성하고 운동성이 활발해진다. 17℃ 이상이 되면 먹이활동을 중단하고 암반 틈이나 바닥을 헤집고 파고 들어가 여름잠을 잔다. 동해나 서해는 여름철 수온이 낮아 한여름에도 돌기해삼이 관찰되지만, 제주바다의 홍삼은 12월~4월까지만 모습을 드러낸다. 김진수 제주해마스쿠버센터 대표강사

 

"수온·먹이 탐색, 종족번식 중요"
 

기온이 큰 폭으로 변하는 사계에 인간은 옷차림으로 대응한다. 한자리에서 일생을 살아야 하는 산호나 해조류 등의 고착생물들은 계절의 변화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생리적 태생으로 가능하다.

수영능력이 탁월할수록 매우 먼 거리를 회유하게 되는 본능을 가졌으며, 움직일 수 있으나 수영능력이 부족할수록 홍삼처럼 해저를 파고들어 여름잠을 잔다거나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또는 아주 깊은 수심과 낮은 수심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수중생물들의 이러한 행위는 적절한 수온과 풍부한 먹이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에 종족번식을 위한 조건은 필수이다.

현재 제주바다의 수온은 20도이다. 12~15도의 최저 수온에 도달하는 1월 하순부터는 해조류들이 콩나물 크듯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할 것이다.

겨울을 나기위해 제주바다를 찾아 들어오고, 겨울을 피하기 위해 떠난 모든 수중생물들은 인간의 간섭만 없다면, 그들의 본능대로 적절한 수온에 서식하며 배불리 먹고, 종족번식을 영위하며 수중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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