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바바라 파크 「할아버지, 이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노인문제 직면 사회 조명 작품
치매 앓는 할아버지·손자 다뤄
온갖 우여곡절 사랑으로 회복
추운 연말 가족의 소중함 부각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와 가족 이야기
2015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울려퍼지는 즐겁고 흥겨운 캐롤송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그 가운데 가장 우울한 소식은 노인자살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는 뉴스다. 청년실업문제와 더불어 노인의 자살문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노인이 되면서 소득이 불안정해지고 경제적, 육체적 능력의 상실이 심각한 우울증을 낳고 있고,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실태인 것이다. 이에 삶의 기반이 무너져버린 노인들을 보호하고, 남은 생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도록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바라 파크의 소설 「할아버지, 이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는 알츠하이머 질환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노인문제는 한국사회만의 문제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이크는 엄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재주가 많다. 고장난 물건도 잘 고치고 페인트칠, 손자인 제이크와 놀아주는 일도 잘한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할아버지는 제이크를 알아보지 못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인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것이다. 가족들은 당황스러웠지만 서로 힘을 모아 할아버지를 돌보기로 한다.
제이크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를 하루에 한 시간씩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시간씩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잠옷바지를 냉장고 속에 넣기도 하고, 동네 쓰레기장을 뒤져서 상한 음식을 먹기도 한다. 제이크는 서서히 할아버지 돌보는 일이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친구들도 마음대로 집으로 데려올 수 없다는 것이 불만이다.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변덕은 심해지고, 급기야 친구들이 놀러온 날, 발가벗은 몸으로 나타나 망신을 주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망신당한 것이 속상하고 더 이상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힘들어질 즈음, 간병인 할머니 엘머가 온다. 엘머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사이라면서 놀라워한다. 이제 간병의 임무는 엘머 할머니에게로 넘어갔다. 그런데 어느날, 할아버지는 집을 나가고만다.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사방팔방으로 할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 결국 택시기사가 할아버지를 찾아주었다. 가족들은 어린아이가 돼버린 할아버지를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면서 사랑을 회복한다.

병을 이기는 사랑의 위대함
작품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가족들이 겪을만한 고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앓았던 병으로 노인성치매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뇌의 전반적인 위축으로 인해 기억·판단·언어 능력의 급격한 감퇴가 일어나는 병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 63%가량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작품에서 제이크의 가족처럼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일이 많아지면서 가족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방치되기도 하고, 집을 나가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객사하는 일도 더러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이크가 감내해야했을 심리적 고통이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가족들이 겪는 고통 가운데 하나는 알츠하이머병의 정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억이 그렇게 급작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가족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창피하다는 이유로 비밀리에 방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병을 더욱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에 알츠하이머병은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병의 하나임을 정확히 인지하는 일은 가족의 심적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영화 '어웨이 프롬 허'도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노인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44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한 노부부 그랜트와 피오나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아내 피오나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것이다. 영화는 기억을 잃은 피오나의 이상 증세를 지켜보는 남편 그랜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끝까지 이를 지켜보고 다시 기억을 회복할 수 있게 한 것도 남편 그랜트의 사랑이었다.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제이크의 가족도 할아버지를 잃고 나서 할아버지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사랑이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더러 고통이 완화되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연말연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 작품 속 책갈피
나는 할아버지께 저녁 식사를 하시라고 깨우러 갔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러려니 하고 다시 흔들어 깨우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넌 누구니?"라고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재미있어요? 할아버지! 진짜 재미있어요? 엄마가 고기 찜이 다 되었대요. 맛있는 냄새나죠?" 할아버지는 눈을 껌벅이며 내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그때 내 기분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나를 다시 알아보는 날들이 있은 뒤로도 몇 번은 여전히 나를 몰라봤다.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황당무계한 일들도 점차 일상적인 일이 되어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할아버지는 나를 클로드 하퍼로 기억했다. 그 분은 할아버지의 죽마고우였다. '알츠하이머'라는 마법 속에…… 옛날 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본문 중에)
■ 작가 소개 - 바바라 파크
1947년 미국 뉴저지 주의 마운트 홀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앨러배머 주립대를 졸업한 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썼다.
어린 소녀의 생활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간 시리즈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며 「미크 하트는 여기 있지요」로 15개 주 어린이들이 선정한 상(15 state kid-selected awards)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빨간 자켓을 입은 꼬마」 「말라깽이들」 「로지 스완슨」 등의 여러 작품과 그림책들을 썼고 'Young Hooser Award' 'Milner Award' 'Tennessee Children's Choice Book Award' 등의 상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