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부부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머리카락·귀중한 시계 판매로 선물
연말·새해길목 아름다운 본성 눈길

점심을 먹고 나오던 길에 예쁜 선물 가게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봤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해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무엇을 사겠다고 들어간 건 아닌데, 견물생심이라고 보이는 것에 눈이 멀어 몇 가지 소품들을 사고 나왔다. 소년 산타 인형과 썰매 보석함이 그것이다. 오랜만에 나에게 주는 선물을 사고 나온 셈이다.
크리스마스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작품이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인 것 같은데, 그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여주인공 델라의 머리가 싹뚝 잘리듯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때의 그 감동과 아픔은 내 마음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서로의 배우자에게 선물 마련 고민
짐과 델라라는 가난한 한 부부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이 부부는 서로의 배우자에게 어떤 선물을 사줄까 고민이 됐다. 가난했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을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부인 델라에게는 1달러 87센트가 있었다. 이 돈을 가지고 멋진 선물을 사기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머리카락을 팔기로 했다. 머리카락을 잘라 판 돈으로 남편에게 시계줄을 사주기로 한 것이다. 평소에 시계줄이 없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보였던 차였다.
남편 짐에게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시계가 있었다. 그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짐도 아내에게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기에 할 수 없이 아버지가 물려준 금시계를 팔기로 했다. 짐은 금시계를 판 돈으로 아내에게 줄 머리핀을 샀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되자, 서로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마주하게 된다.
사랑이 주는 놀라운 힘
작품의 결말은 어쩐지 허망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주인공 두 사람의 진실되고 순수한 사랑에 감동하게 된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어쩌면 사랑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시대가 달라졌으니 사랑에 대한 생각도, 주인공이 보여준 행동에 대한 찬반 논란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면 뭐든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 이것이 인간 본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가 이어지는 길목에서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비싼 선물이 아니라 연필 한 자루, 노트 한 권이라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래도 자신의 마음밭은 아직 생명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는 마음보다 받는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의 선물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선물마저도 값으로 가치를 매겨버리는 천박함을 버리고, 감사의 마음을 오롯이 받아안는 수용자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의 주인공 델라와 짐처럼 나와 타인의 기쁨을 위해서 아끼는 것마저 기꺼이 주고 받으며 감동할 줄 아는 사랑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제1조건이다.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기꺼이 행복하기로 하자.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 작품 속 책갈피
희고 재빠른 손가락이 끈과 포장지를 풀었다. 그러자 기뻐 어쩔 줄 모르는 환성이 터져 나왔다. 뒤미처, 가엾게도 갑자기 여성의 발작적인 울음이 터져 방안은 눈물 바다로 변했다. 그래서 이 방의 주인은 있는 힘을 다해서 아내를 위로하여야 했다.
눈 앞에는 머리빗이 놓여 있었다. 델라가 오래 전부터 브로드웨이의 진열장에 놓여 있는 걸 갖고 싶어하던, 좌우에 이가 달린 비녀 한 틀이었다. 예쁜 진짜 대모갑으로 되어 있고 가장자리에 보석이 박힌,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 아름다운 머리채에 꽂으면 꼭 어울릴 빛깔이었다. 비싼 머리빗인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가져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자기의 소유가 되자, 이번에는 그 기다리던 장식품에 빛을 주어야 할 머리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빗을 가슴에 품었다. 마침내 그녀는 고개를 들고 꿈에 잠긴 듯한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짐, 제 머리칼은 무척 빨리 자라요" 그리고 나서 델라는 털을 태운 조그만 고양이처럼 벌떡 일어나, "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 작가 소개 - 오 헨리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다. 그는 여러 필명으로 단편 소설을 출간했다. 오 헨리(O. Henry)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휘파람 부는 딕의 크리스마스 스타킹」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그의 이름은 오 헨리로 불리게 됐다. 오 헨리는 반전이 있는 짧은 소설을 주로 썼다. 또한 모파상의 영향을 받아 풍자적이면서 애수에 찬 화술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 헨리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마음 따듯해지는 감동을 선사한다. 무려 300여편에 달하는 단편들을 썼고, 그의 작품에는 인간 삶의 단면들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그것은 아마도 오피스 제도사, 은행원, 신문기자, 야간약국 담당, 감옥살이의 경험 등 파란만장 했던 삶의 편린들이 그의 소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현자(賢者)의 선물」 , 「붉은 추장의 몸값」, 「도시의 패배」, 「마지막 잎새」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