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아담 야로미르·가브리엘라 치호프스카 「바르샤바 게토의 마지막 공연」

'평화를 품은 책'이 발간한 「바르샤바 게토의 마지막 공연」의 '코르착 아이들'

1942년 전쟁속 유대인 고아들 다뤄
절망에서 연극활동으로 희망 발견
희생자로부터 평화의 소중함 교훈

예술…역사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 추모

일본의 위안부 문제 사과 및 협상에 대해 반대성명이 잇따르는 등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과 분개에 찬 국민의 목소리가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에 집착하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일본의 사과는 형식일 뿐 내용은 없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인 듯 하다. 이번 협상을 지켜보며,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격이다"라던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가슴 아프게 들린다. 역사와 국가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가슴이 오죽하랴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목숨을 잃거나 가족을 잃고, 평생 가슴에 한이 맺힌 사연은 수없이 많다. 이에 후대가 할 수 있는 건 정신적·육체적·물질적 고통을 받은 이들의 사연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두고두고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은 역사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을 추모하고 그 영혼이나마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바르샤바 게토의 마지막 공연」은 1942년 5~ 8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거주지역의 고아원인 '돔 시에로토'에서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돔 시에로토'를 운영하던 의사 야누시 고르착(1878~1942)과 고아원 원생인 열두 살 소녀 게니아의 육성 일기라 할 수 있다. 1942년  바르샤바의 유대인 거주지역에는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나앉게 된 고아들을 수용하고 있는 고아원이 30여개나 됐다. 그 중에 하나가 '돔 시에로토'였다.

의사 코르착은 12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돔 시에로토'에 수용된 아이들은 가족을 잃거나 헤어져 살 수밖에 없는 처지의 아이들이었다. 코르착은 매일매일 게토 밖을 나가 고아원 아이들을 위한 빵과 찬거리, 후원금을 구해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그는 의사였기에 아이들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 또한 그의 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먹을 것이 변변치 못하던 때라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도, 아픈 아이들의 병을 호전시키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이라'라는 소녀는 자신을 '약간 잠꾸러기'라고 소개하면서, 같은 고아원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과 그 일상을 꼼꼼히 기록한다. 예를 들어, 야쿠브는 "탈무드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아이"라고 소개하고, 헬치아는 "염소처럼 호기심 많고 날랜 아이"라고 말한다. 이들 고아들은 각기 개성 있고, 다른 성격, 다른 취향을 가진 아이들이지만 빵 하나로 싸우기도 하고, 누군가의 물건을 훔쳐 서로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게 하는 건, 모두가 오갈 데 없는 신세라는 것과 건물 밖에 경비병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절망에서 찾은 희망과 안타까운 결말

그러던 어느 날, 에스테르 선생이 코르착에게 제안을 한다. 타고르의 작품 「우체국」을 아이들과 함께 연극으로 꾸며 공연해보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우체국」의 내용은 타고르의 희곡으로 인도의 병든 소년 아말이 왕의 전령을 받고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편지를 기다리는 또 기다리는 이야기다. 코르착은 기꺼이 허락했고, 에스테르 선생은 아이들을 데리고 곧바로 연극 준비에 돌입한다. 

주인공 아말 역은 아브라샤가 맡았고, 게니아는 꽃 파는 소녀 수다 역을 맡았다. 아이들은 대사를 연습하고, 종이꽃을 접고, 그림을 그리고, 바이올린을 켜고, 춤을 연습한다. 마침내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고, 아이들은 저마다 맡은 역을 훌륭히 해낸다. 춤추고, 연주하고, 말하고, 노래하면서 아이들은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고 살아 있음을 느낀다.

1942년 8월6일, 공연이 끝나고 3주째가 되던 날, '돔 시에로토' 고아원은 폐쇄되고, 코르착 원장과 교사·직원 10명, 아이들 192명은 나치 친위대에 의해 철도역 화물 집하장으로 보내진다. 그 열차가 닿은 곳은 트레블린카 수용소였다. 그에 앞서 에스테르 선생은 독일군의 '이주 계획' 집행과 함께 체포된 상태였다. 코르착은 에스테르를 구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작품의 마지막 장에는 텅 빈 침대들만이 흑백으로 그려져 있다. 연극 공연을 준비하며 저 마다의 꿈을 다시 찾았던 아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하늘의 연기로 흩어지고 말았다. 어른들의 탐욕이 그들을 죽음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것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납득이 되지 않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이러한 불행과 고통의 역사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바르샤바 게토의 마지막 공연」은 인간에게 이성은 있는 것인지를 묻는다. 어쩌면 꺼져가는 가슴에 한 줌 희망을 주는 건 연극·음악·시와 같은 예술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 신이시여! 이 땅에 자유와 평화를 주시옵소서.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 작가 소개

글쓴이 : 아담 야로미르
폴란드에서 태어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독일 문학과 이탈리아 문학을 공부했다. 김펠출판사를 설립해 폴란드 작품들을 주로 소개하고, 직접 번역을 하거나 작품을 쓰기도 한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사과 두 개로 사과 세 개를 만드는 법」, 「자라파」, 「판테」, 「밤의 여왕 탈룰라」가 있다. 이들 작품으로 독일 국내와 외국에서 여러 번 상을 받았고, 2014년에는 「 바르샤바 게토의 마지막 공연」으로 독일청소년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린이 : 가브리엘라 치호프스카 
1984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미술을 공부했다. 2010년 그림책 「판테」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이후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신진 일러스트레이터로 떠오르고 있고, 국내외에서 그림 전시회도 여러 번 열었다.

■ 작품 속 책갈피

담장 너머.
백 미터가 채 안 되는 곳에 하얀 집이 서 있다.
우리가 28년 동안 살았던 집이다.
수많은 고아들의 집, 아이들은 그곳에서 죽은 수학 공식이나 외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함께 생각하고 함께 배워 나갔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는가?
왜 그렇게 사는가?
어떻게 남들과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자기만의 정신을 자유롭게 펼쳐 나가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길어 올리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바르샤바 게토의 마지막 공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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