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청소년 인문학 콘서트(44) 파스칼 키냐르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현대사회에서 말을 잘한다는 건 개인의 능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경제적 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말 잘하는 토론 교육이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말을 잘 한다는 건, 공감능력과 소통 능력, 윤리의 문제를 함의한다. 말이라고 다 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상황, 맥락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이로운 결과를 낳게 됐을 때 말은 효력을 발생하게 되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문학 작품 가운데 말에 대해 언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있다. 파스칼 키냐르의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 그것이다.
파스칼 키냐르의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비연대기적으로 구성된 격자소설의 한 형태이다. 언뜻 보기에는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헛갈린다. 파스칼 키냐르 특유의 이야기 구성과 철학적 문제의식을 작품 안에 깔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로 읽는다면 여간 곤혹스러운 작품이 아니다. 한 마디로, 무엇을 말하는 작품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앞뒤 작품 사이에는 '언어'라는 일정한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작품은 「아이슬란드의 혹한」,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메두사에 관한 소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표제명이 붙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난해한 작품 관통하는 맥락은 '언어'
'디브'라는 마을에 죈느라는 재간이 뛰어난 재봉사가 있었다. 그는 가난하지만 멋진 풍태에 옷을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맞은 편 집에 사는 바느질 하는 여자 콜브륀은 죈느를 사랑했다. 어느 날 사랑을 고백을 했고, 아내가 될 수 있다면 행복하겠노라고 말했다. 죈느는 생각 끝에 자신도 그녀의 남편이 되고자 하는데, 벨트 하나를 건네면서 그것에 수놓인 것과 똑같은 것을 수를 놓아준다는 조건을 달았다. 콜브륀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벨트의 무늬에 수를 놓는 일에 착수했으나 너무나 복잡한 무늬라서 절망하여 울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길 잃은 영주를 하룻밤 재워주게 된다. 영주는 콜브륀에게 우는 이유를 물었고, 콜브륀은 사정을 얘기한다. 마침 영주에게는 똑같은 벨트가 있었다. 그래서 "내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약조"를 지킨다면 벨트를 거저 주겠다고 한다. 콜브륀은 약속을 했고, 1년 후 같은 날, 같은 시각, 한밤중에 만나기로 한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자신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말까지 잊지 않는다.
콜브륀은 영주의 도움으로 죈느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콜브륀은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데, 영주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갈수록 창백해지는 안색에 놀란 죈느는 사정을 묻는다. 콜브륀은 그 이유를 고백했고, 죈느는 자신이 해결해주마 라고 한다.
죈느는 영주가 사는 곳을 알아내 이름을 알아내기로 한 것이다. 강, 바다, 산의 모험을 마친 후 끝내 영주의 이름을 알아낸다. 영주의 이름은 '아이드비크 드 엘'이었다. 죈느는 영주으이 이름을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면서 집까지 와 콜브륀에게 알려주면서 쓰러진다. 콜브륀은 영주의 이름을 알아냈고, 영주가 도착하자 "아이드비크 드 엘이 당신의 이름이지요."라고 말한다. 영주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천지는 캄캄해진다.
작가의 문제의식 - 언어 너머에는?
이 작품을 쓴 파스칼 키냐르는 어린 시절 자폐증을 앓았다. 그래서 입 속에서 맴도는 언어를 발화한다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언어학자인 어머니를 통해 언어의 문제에 어렸을 때부터 천착하게 된다. 그의 첫작품이 『말 더듬는 존재』는 개인의 경험과 문제의식이 녹아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발화된 언어가 갖는 한계와 그 너머이다. 언어 속에는 기억과 망각, 환상, 그 너머의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기억과 망각과 그 너머의 지금 이순간을 붙잡는 행위이다. "글쓰기는 말을 찾아내기, 잃어버린 목소리를 듣기,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준비하기, 혹은 사정(射精)하기와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글 가운데 "시는 오르가슴이며, 찾아낸 이름이자,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의 반대편에 있는 엑스터시"라고 말하면서 시야말로 가장 실재에 가까운 언어라는 것이다. 현실과 죽음이 현존하는 언어 그게 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파스칼 키냐르의 놀라운 언어관은 잘 짜여진 이야기의 구성에 알 듯 모를 듯 스며들어 모호한 미학적 감동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잘 말할 수 없으면 침묵이 오히려 윤리적으로 올바르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침묵을 지키며 말하는 유일한 방식은 "말을 거부하며 말하기, 말 없이 말하기, 길목에서 비켜서서 결여된 단어를 기다리기, 독서하기, 글쓰기"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말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때로는 침묵이 제대로 말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하는 언어마저 오염돼버린 세상에서 침묵과 독서, 글쓰기를 통해 가장 진실된 언어의 입술에 닿아 보는 것은 어떨까? 겨울이 한복판에 들어서고 있다. 읽고 쓰기에 좋은 계절이다.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베레뇌유쉬르아브르(외르)에서 태어나, 1969년에 첫 작품 『말 더듬는 존재』를 출간하였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았던 두 차례의 자폐증과 68혁명의 열기, 실존주의, 구조주의의 물결 속에서 에마뉘엘 레비나스, 폴 리쾨르와 함께한 철학 공부, 뱅센 대학과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에서의 강의 활동, 그리고 20여 년 가까이 계속된 갈리마르 출판사와의 인연 등이 그의 작품 곳곳 독특하고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18개월 동안 죽음에 가까운 병마와 싸우면서 저술한 『떠도는 그림자들』로 2002년 콩쿠르 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의 저서로는 『세상의 모든 아침』등이 있다.
작품 속 책갈피 |
| 알고 있는 단어를 빼앗김으로써 겪게 되는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내재된 망각이 기세를 떨치게 될 때의 경험이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사고의 우발적 특성, 정체성의 취약한 본성, 기억의 무의지적 소재(素材), 그리고 오직 언어로만 짜여진 그 직물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한계와 죽음이 처음으로 뒤섞일 때의 경험이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 특유의 궁핍함이다. 후천적으로 획득된 어떤 것 갚에서 느껴지는 궁핍함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언어가 우리 내면의 반사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눈으로 보듯이 입으로 말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