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청소년 인문학 콘서트(47) 성 어거스틴, 『참회록』

성 어거스틴의 방탕했던 젊은 시절,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회개를 위해 세례를 주선했던 암브로시우스성당.

 종교인으로서 하기 어려운 젊은 시절의 죄와 고뇌 고백
"누구나 죄 안고 살아간다" 위로…서양정신사에 큰 반향

누구에게나 방황은 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년 일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온다."(윤동주 '참회록')

영화 '동주'가 개봉됐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애송하는 시, '서시'를 쓴 시인의 이야기이다. 개봉을 앞두고 그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가 쓴 「참회록」을 마음으로 다시 읽어본다. 
위 시는 윤동주가 1942년 1월24일에 쓴 시라고 알려졌다. 1942년 일본 유학을 앞두고 미루고 미루었던 창씨개명을 하기 일주일 앞에 쓴 시이다. 그의 일본인 이름은 '平沼東柱'이다. 그러한 행위는 그에게 나랏말의 중요성과 민족의식을 가르쳐주었던 최현배 선생에 대한 배신이며 모독이었으며, 자기자신에 대한 기만이었기에 이러한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시'가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행운이었다. 그에게 시는 생활이었으며 생명이었으며 치유였다. 

수많은 고전 가운데는 이처럼 자신의 내면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고백적이며 참회하는 작품들이 꽤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톨스토이의 「참회록」, 그리고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이 그것이다.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은 방탕아에서 신앙심 깊은 주교가 되기까지 겪은 한 인간의 내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참회록이라는 말은 '큰 뉘우침'이라는 뜻인데, 어거스틴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처럼 큰 뉘우침의 기록이 수천년을 거쳐 내려오면서 고전으로 읽히고 있는 것일까. 

방탕아에서 신앙회복 '참회의 힘'

어거스틴은 354년 로마의 속주였던 북아프리카, 즉 오늘날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가까운 누미디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교도였지만 어머니는 열성적이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가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호흡했다"고 말한 것을 보아 어머니의 영향이 무척 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어려서부터 방황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순결하게 하소서, 절제하게 하소서, 그러나 지금은 마소서"라는 젊은날 어거스틴의 고백이 말해주듯 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순결과 절제를 미덕으로 지키며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포기할 수 없음에 대한 갈등과 번민이 늘 자리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어렸지만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학교에서 매를 맞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의 부모님들은 물론 내가 잘 되기를 원하는 분들이지만, 나의 고통스러운 상처인 매의 자국을 보시며 더욱 나를 질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나를 매질하는 그 사람 역시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공놀이를 하다가 친구와 다투어 매를 맞는 나보다도 오히려 동료교사와의 사소한 언쟁에도 앙심을 품고 질투하는 그가 더욱 나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또한 탐심의 노예가 되어 부모님의 장롱이나 책상에서 물건을 훔치고 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훔친 것들을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즐겁게 어울려 놀았지만 결국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훔친 돈과 물건 때문이었습니다.
독실한 신앙인인 어머니는 내가 죄악의 길에서 방황할 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행여 내가 음행을 범할까, 누구의 아내와 간음할까 가슴을 태우며 염려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어거스틴에게도 청소년기 정체성의 혼란과 방황이 있었나보다. 그가 17·18살이 됐을 때 집안 형편상 일 년 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어거스틴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불장난같은 쾌락을 즐기며 도둑질을 한다든가, 신분이 낮은 여자와 동거를 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에 대해 어거스틴은 "해서는 안 될 일을, 다른 무엇 때문에 아닌, 다만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 그토록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방탕에 젖은 생활을 하는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활의 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은 키케로(Cicero)의 「호르텐시우스」란 철학입문서를 접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지혜에 대한 사랑과 정열, 야심을 불태우게 된 것이다. 철학책을 읽게 됐다고 해서 그에게 명쾌한 삶의 해답을 찾게해준 것은 아니다. 늘 그에게 따라다니는 과제는 그에게 쾌락에의 욕망과 예지에의 욕망 가운데 어느 편에 설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그때마다 늘 그는 쾌락에의 욕망에 손을 들어주기 일쑤였다. 그런 자신에게 혐오감마저 느끼면서도 쉽게 방황을 접지는 못했다. 어느 날 밀라노 거리에서 만난 불쌍한 거지를 보면서 더욱 그 생각이 절실해졌다. 몇 푼 안되는 돈이나 양식을 구걸하려 애쓰는 거지보다 알량한 지혜를 구했다고 하면서도 헛된 욕심과 쾌락에 젖어드는 자신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의 힘은 셌다. 아들의 방탕한 생활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기를 밤낮으로 기도하던 어머니는 밀란의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40-397)에게 세례를 받도록 주선했다. 암브로시우스는 당시의 황제인 데오도시우스가 7000명의 주민을 죽인 것에 진노하여 황제를 부활주일부터 성탄절에 이르기까지 성찬을 금하고 교회 출입을 불허한 정의로운 주교였다. 그런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가던 길에 어머니는 말라리아로 죽게 되는 불행을 겪는다. 

어머니 장례식을 마친 후 어거스틴은 고향 튀니지로 돌아가 수사학자로서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주일마다 분석하기에 이르고, 당시의 세계철학의 주류인 신플라톤주의를 연구할 계기를 갖게 된다. 참회록에서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과 세상 앞에 선언할 정도로 신앙심을 회복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암브로시우스와의 만남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성 어거스틴 「참회록」이 갖는 의미

어거스틴의 「참회록」은 종교인으로서는 고백하기 어려운 자신의 전 과거와 죄목, 현재의 고뇌를 허심탄회하게 고백한 글이다. 
"제가 진실로 고백하려는 것은 육체의 언어나 음성이 아니고 영혼의 언어와 사유의 외침이므로 당신께서는 잘 알아들으실 줄 믿습니다"라고 밝히는 그의 글에는 자신의 삶을 미화하거나 과시하려는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참회를 통해 과거를 치유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호소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기도는 누구보다 솔직했고,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제 영혼의 집은 당신이 들어 오시기에는 비좁으니 이 집을 넓혀주시지 않겠습니까. 제 영혼의 집은 낡았사오니 이를 고쳐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집에는 당신의 눈에 거슬리는 것도 있지만 저는 이것을 숨기려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참회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집을 깨끗이 해주겠습니까. 당신 말고 누구에게 말해야 합니까"

어거스틴의 「참회록」은 서양정신사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인문적 고백서일 뿐만 아니라 가톨릭·개신교도에게는 영혼의 언어요 사유의 외침이었다. 그가 주장한 원죄설과 예정설, 은총설은 훗날 마르틴 루터나 존 칼뱅의 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을 두고 "바로 나 자신의 방황을 적은 책을 읽는 듯하다"고 말했다. 교부철학을 완성한 신학자로서가 아닌, 한 나약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겪은 삶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함으로써 누구나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위로가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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