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청소년 인문학 콘서트(48) 미셸 깽 「처절한 정원」

의로운 희생에 목숨빚진 아버지
평생 '피에로' 자원봉사로 갚아
열정만으론 버틸 수 없는 '인간'
따뜻한 인간애와 반성에 희망
나치 만행 고발하는 홀로코스트 문학
지난 22일에는 ㈔대한민국독도사랑세계연대 등 30여개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일본 시마네현이 정한 '독도의 날(다케시마의 날)'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시민단체회원들이 입을 모아 외치고 있는 것은 "일본의 통렬한 참회와 사죄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한일 공동번영도 없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일본 국회의원들의 'A급 전범 합사'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다케시마의 날' 기념 행사를 하는 등 일본의 낯 두꺼운 행태는 국제 여론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독일의 전범 행위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1999년 프랑스에서 실제 있었던 나치 전범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어릿광대 피에로의 입을 빌어 독일의 만행을 고발함과 동시에 개인적 도덕과 양심에 상관없이 범죄 행위에 동조해야하는 인간의 비애를 유머러스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기존의 홀로코스트 문학이 갖는 진중한 무게감을 덜어내면서 유머와 슬픔을 절묘하게 잘 빚어내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읽혀도 좋을 홀로코스트 문학의 한 예이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괴뢰정부 전범 모리스 파퐁.
'어릿광대'는 누구를 위해 살았나
1999년 프랑스에서 열린 전범에 관한 재판으로 유명한 실제 사례가 있는데,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프랑스 괴뢰정부였던 비시 정권의 보르도경찰 치안부국장이었던 모리스 파퐁 재판이다. 그는 1600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몰아넣은 파렴치한(破廉恥漢)이었으나 자신의 전적을 숨기고 살다가 50년만에 재판에 회부된 것이다. 모리스 파퐁은 전후에 알제리 총독 역임 후 드골 정권(1958~1970년) 하에서 파리경찰국장, 지스카르데스탱 정권(1974~1980년)때 예산장관까지 지냈다. 또한 프랑스의 훈장 중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어릿광대 피에로는 모리스 파퐁 재판이 열리고 있는 보르도 법정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어릴 적 이 세상 누구보다 어릿광대 피에로를 증오하고 싫어했다"는 화자의 목소리는 어릿광대의 정체가 누구인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화자의 아버지이다. 소설의 화자는 삼촌으로부터 우연히 알게 된 '처절한 정원' 이야기를 통해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와 삼촌이 겪었던 사연은 이러하다.
1942년 말, 아버지와 삼촌은 레지스탕스 세포조직에 가입했다. 조직의 상부로부터 이들에게 떨어진 명령은 기차역에 있는 변압기를 폭파시키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삼촌은 불꽃놀이 하듯 기꺼운 마음으로 명령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네 명이 독일 헌병대에 체포되고 만다. 그리고 정원에 파놓은 구덩이에 갇힘으로써 죽음에 임박하게 된다. 이때 구덩이 밖에서 그들을 지키던 한 독일 병사는 능청맞은 익살과 묘기로 이들에게 웃음을 준다. 그는 전직 광대였다. 그는 장교의 눈을 피해 인질들에게 음식을 주기도 하는 등 인간애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중 진짜 폭파범이 자수하지 않으면 한 명씩 차례로 처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시 독일 점령하 비시 정부는 테러가 발생할 경우 주민을 인질로 잡고 사흘 안에 범인이 안 잡히면 범인 대신 인질을 처형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자신이 진짜 폭파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 사람은 병으로 죽음을 맞아하게 된 사람인데, 그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의로운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물을 주고 싶어 그렇게 거짓 신고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대신 총살됨으로써 아버지와 삼촌은 풀려나게 된다. 어찌보면 황당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이 사건으로 아버지는 평생 어릿광대 피에로로 분장해 자원봉사를 다니면서 살았던 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 그 아들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피에로 복장으로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 나타난 것이다.
인간의 반성, 이기심 이길 수 있을까
작품의 제목, '처절한 정원'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에서 따왔다. 우리의 처절한 정원에서 석류는 얼마나 애처로운가! 알알이 붉게 익은 석류는 금방 터지기 쉽다. 석류 알알들은 서로의 잇몸을 맞대고 버티고 있으나 톡 하면 금방 으스러지고 말듯 위태롭다. 그처럼 인간 존재도 붉은 열정 하나만으로 버틸 수 없는 가엾은 실존 그 자체이다. 더군다나 역사의 톱니바퀴 안에서 개인은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처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실존 앞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게하는 것은 석류알처럼 붉은 마음, 즉 따뜻한 인간애가 아닐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차별화되는 특성이 있다면 반성하는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 줄 알고, 역사의 뒤안길에서 오류와 과오를 반성할 줄 아는 인간, 그러한 국가만이 진정한 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신문지상에서 오르내리는 슬픈 역사의 파편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더 큰 생채기로 덧나게 하는 처사들을 보면서 과연 인간의 반성 능력은 절대적 이기심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일까 자꾸 반문하게 한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1949년 프랑스 파드칼레에서 태어났다.
릴르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20여 권의 책을 출판했다.
2000년 출간된 '처절한 정원'은 프랑스에서 1년 이상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일본 등 세계 각국에 번역 출간됐다.
또한 2001년 파리 페스티벌에서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좋은 소설로 선정되어 프랑스에서 영화화되었다.

나는 자네들이 진짜 범인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중요한 건 독일군의 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자네들 스스로 희생양을 뽑아 준다면 반인륜적 선택을 하도록 한 그들의 논리에 덩달아 춤추는 꼴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도리어 그들의 논리가 정당하고 그들은 자네들에게 동정을 베푼 셈이 되는 거란 말일세.
(…)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미셸 깽 「처절한 정원」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