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청소년 인문학 콘서트(50) 칼릴 지브란 「예언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는 '영혼과 영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는 현인의 말처럼 일상의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잠시 기도와 같은 짧은 여유를 갖게 해주는 힘이 있다. 애니메이션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의 한 장면.

철학적 산문·잠언시 형식 독특
현인에게 물어본 26가지 질문
기도처럼 잠깐의 여유 갖게 해

지칠 때, 어지러운 생각 가다듬는 시
목련나무의 가지 사이로 보송보송 솜털들이 벙글어지면서 하얀 꽃송이가 활짝 피어나고 있다. 한차례 비바람이 쓸고 가버리면 어쩌나 사뭇 걱정스런 마음이 들면서도 봄꽃은 언제보아도 예쁘다. 방금 입학한 새내기 여학생들의 뽀얀 얼굴을 보는 듯하다. 더 이상 시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새학기 들면서 가방이 더 무거워졌다는 얘길 많이 듣게 된다. 가방이 무거워질수록 어깨에 부담이 드는 것은 학부모나 학생들이나 매한가지이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거리를 두고 가만 바라봐주는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칼릴 지브란의 시처럼 말이다.

칼릴 지브란의 시처럼 잠언적 구절로 이루어진 시가 주는 효용은 일상의 어지러운 마음과 생각을 가다듬게 해준다는 것이다. 다의적 언어가 시인 것은 분명하지만 위와 같은 시는 마치 기도 같기도 하고, 자기 암시적 예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시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지치고 힘든 시간들 속에서 잠시 기도와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래도 삶은 가볼만한 길이 될 것이다.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가방 속에 이런 시집 한 권 가지고 다니면서 짬짬이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보라면 너무 속모르는 소리일까. 사치라 할지라도 이런 사치는 부릴만하지 않을까.

내전과 종교갈등, 근원에 대한 탐구로
시집 「예언자」의 저자로 알려진 칼릴 지브란은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예술가이며, 시인이다. 그는 1883년 시리아의 영토였던 레바논의 브샤리 마을에서 태어났고, 가정이 가난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어떠한 정규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성직자들로부터 배운 아랍어와 시리아 언어로 기록된 성서를 읽은 것이 그의 유일한 문학수업이었다.

칼릴 지브란의 예술적 기질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신부의 딸로 예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그런 기질이 칼릴 지브란으로 하여금 음악과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미국에서 예술 공부를 하는데 바탕이 됐다. 하지만 칼릴 지브란의 시는 철학적 산문 또는 잠언시라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경험한 역사적 사건과 종교적 영향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레바논은 지금도 여전히 내전에 시달리고 있듯이 역사적으로 수많은 갈등과 대립,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나라이다. 14세기께부터 350년 동안 레바논은 터키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기독교와 모슬렘의 두 파로 나뉘어져 종교 갈등을 일으키는 등 외세와 내전이라는 끊임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역사적 환경 속에서 칼릴 지브란은 자유에 대한 열망과 저항, 근원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 것이다.

칼릴 지브란의 철학적 물음을 담은 「예언자」

「예언자」는 일종의 철학에세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시집의 서두는 '알무스타파'라는 현인이 어느날 저 멀리 안개 속에서 자신을 데리고 갈 배가 들어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올리필리스' 성에 들어와 12년을 살았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와 마지막으로 그에게 지혜를 구하는 질문을 하는데, 이에 대한 답을 하고 있는 것이 시집 전문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알무스타파에게 질문한 내용들은 노동, 옷, 법, 자유, 이성, 자기인식, 결혼, 우정, 시간, 선과 악, 기도, 쾌락, 종교, 죽음 등 스물여섯 가지의 질문들이다. 그의 대답을 듣고 있노라면 새벽에 받아든 맑은 정수처럼 속세에 물들었던 몸과 마음이 씻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영혼과 영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 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 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칼릴 지브란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중)

"영혼에 바람과 음악의 거리를 두라"
「예언자」에서 흘러나오는 고독한 현인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영혼과 영혼 사이에 바람과 음악이 넘나들 수 있는 거리를 두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고 서로 사랑하되 구속하지는 말라는 말은 안그래도 불안증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정말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말처럼 '죽음을 앞서가는 존재'인 인간이 오늘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삶에 속박되지 말며 그렇다고 아주 놓아버리지 않는 거리두기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그게 말처럼 쉬울까마는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면 현재를 응시하되 함몰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삶이란 오래 걸어야 하는 여정이기에 미리 지치지는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뭇가지 사이를 쉬어가는 바람처럼, 동굴 속에 숨어든 새처럼 칼릴 지브란의 싯귀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쉼표 하나, 낯선 물음에 가만히 귀기울일 것을 권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Kahlil Gibran, 1883~1931)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예술가이며, 시인, 작가.

근대 레바논의 브샤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1923년작 「예언자」는 영어 산문체로 쓴 철학적 에세이 연작 중 하나이다.

그의 철학적 산문 혹은 시라고 알려진 「예언자」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면서도 삶에 대한 통찰력과 깊이 있는 삶의 화두를 심오하게 풀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출판된 이래 전세계 독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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