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살아 숨쉬는 곶자왈 2. 화순곶자왈<2>농경·목축유적

화순곶자왈 지구 동쪽 생태탐방 숲길에서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궤'(바위그늘)가 발견됐다. 높이 110㎝, 폭 140㎝ 규모의 궤는 방목이나 숯 생산 등 곶자왈을 이용했던 주민들이 비를 피했던 임시 거처로 추정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병악에서 산방산 근처까지 약 9㎞에 걸쳐 분포
경작했던 텃밭 및 대규모 잣벽·궤·움막 등 발견
생계 위해 땔감 구해다 해안마을서 생필품 교환

화순곶자왈은 해발 492m인 병악(골른오름)에서 시작돼 화순리 방향으로 총 9㎞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평균 1.5㎞의 폭으로 산방산 근처 해안지역까지 이어진다. 화순곶자왈에는 일본군 진지터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이용사(史)를 증명하는 생활유적들도 확인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상흔과 어렵게 살아갔던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공존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40~50년전까지 주민 이용

화순곶자왈 지구 동쪽 생태탐방 숲길 내 순환로를 따라 들어가다보면 참호시설 인접지에 주민 혹은 일본군이 경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텃밭이 남아있다.

화순곶자왈을 동·서로 가르지르는 대규모 잣벽도 발견됐다.

텃밭에서부터 약 500m가량 이어진 잣벽은 지형의 높낮이를 따라 높이 100~110㎝, 폭 110㎝ 규모의 겹담 형태로 견고하게 쌓여졌다.

마을의 경계나 소와 말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 추측되고 있다.

잣벽을 따라 숲 속 깊숙히 들어가자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궤'(바위그늘)가 발견됐다.

높이 110㎝, 폭 140㎝ 규모의 궤는 방목이나 숯 생산 등 곶자왈을 이용했던 주민들이 비를 피했던 임시 거처로 추정된다.

생태숲길 내 순환로 끝자락에 다다르자 농경·목축 관련 유적을 대표하는 움막이 확인됐다. 폭 250㎝ 규모의 원형 움막은 비교적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답사과정에서 1960~1980년대까지 생산된 '한일소주'병이 발견됐다. 이는 불과 40~50년전까지 지속적으로 주민들이 화순곶자왈을 이용했음을 짐작케하고 있다.

화순곶자왈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약 500m 길이의 대규모 잣벽은 마을의 경계나 소와 말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 추측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소규모 단위 숯 생산 이뤄져

화순리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화순곶자왈을 빼곡히 채웠던 종가시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은 연탄보일러가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전까지 땔감으로 긴요하게 쓰였다.

또 베어낸 나무들을 햇볕에 말려뒀다 해안 마을을 찾아가거나 장이 열리는 날에 쌀과 고기 등 생필품으로 교환해 생계를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곶자왈에 방목한 소와 말의 배설물들도 땔감과 함께 방에 불을 때우기 위한 연료로 사용됐다. 선흘곶자왈 등 다른 곶자왈과 마찬가지로 화순곶자왈에서도 숯 생산활동이 행해졌다.

제주4·3 이전까지 마을 주민들은 2~3명씩 조를 이뤄 화순곶자왈에서 숯을 구웠다. 소규모로 이뤄졌던 만큼 돌로 쌓아 올린 일회용 숯가마로 숯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이외에도 화순곶자왈 내에 자생하던 꾸지뽕·삼동 등의 열매는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식량이었다.

고상호 화순경로당 노인회장(75·화순리)은 "어릴적에 마을 어른들과 함께 곶자왈에 들어가 꿩코를 놓고 꿩을 사냥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그 당시는 워낙 먹고 살기 힘든 때라 말라죽은 나무들까지 모두 주워다가 땔감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사회부 한 권·경제부 고경호  기자 / 자문=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

 

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

지난 2012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곶자왈 종합학술조사를 추진하면서 자연자원과 더불어 곶자왈 내 문화자원에 대한 연구를 추가했다.

예부터 제주의 선조들은 곶자왈을 숯 굽기 및 목축·산전경영·사냥·생활용구제작·신탄 및 땔감채취·야생열매 및 약용식물 채취·양봉 장소 등 생활경제 활동의 공간으로 이용해 왔다.

실제로 고고학적 학술조사를 통해 확인된 곶자왈 내 역사문화유적은 크게 숯 생산유적, 임시주거 유적, 농경생산 유적, 음용수 유적, 목축(목장) 유적, 사냥(함정) 유적, 신앙민속 유적 등이다.

또 여러 곶자왈에서 피난처 등 제주4·3 관련 유적이 일부 발견되고 있다.

최근에 이뤄진 화순곶자왈 학술조사에서는 일본군 주둔시설(군막사, 취사·참호시설, 탄약고, 창고 등) 유적이 추가로 확인됐다.

주민들의 곶자왈 이용사를 증명하는 다양한 생활유적들에 이어 군사유적까지 발견되는 등 타 곶자왈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

동·서쪽 생태숲길 탐방로 주변 이외에도 군사시설이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기존 생활문화유적 외 새로운 근대유적을 보전·관리하기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러한 고고학적 조사와 함께 곶자왈 내 역사문화유적의 분포실태와 특성, 숯 생산과 판로, 마을공동목장과 목축문화, 주민의 생애사와 스토리텔링 발굴, 숯 제조과정의 재현 등 인문학적 종합학술조사가 더욱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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