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토벤 교향곡 제 4번 ‘운명’을 관악기로 연주해보자”
고교 1∼3년 학생들로 구성된 60명 부원들은 아기 손이라도 닦듯 조심스럽게 손을 씻고 색소폰, 클라리넷 등을 손에 집어들었다. ‘운명’을 관악기로 연주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놀라운 일이었거니와 악성(樂聖)과 그의 작품 앞에 경건한 예식까지 치렀던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 또한 시간과 추억 속에서도 항상 살아서 꿈틀거렸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 그들 중에는 남들이‘딴따라’라 부르는 밤무대를 떠돌면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던 한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음악 하나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바람 많은 이 섬에서 그들은 뭔가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1시, 신사수동 H카페
바람이 스쳐 지나는 포구. 바다로 곤두박질 치는 갈매기.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신사수동 라이브재즈 H카페에서 한창 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베이스 기타와 트럼펫, 테너·엘토 색소폰, 드럼, 봉가 등이 무대 위에서 열띤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여자 싱어의 칸소네 ‘Adoro’가 전율하듯 울려 퍼졌다.
‘한라에코재즈밴드(단장 현충헌·48)’의 15명 부원들은 악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풍선처럼 입이 부푼 루이 암스트롱처럼 색소폰을, 트럼펫을 내지르고 있었다.
‘감수광’ ‘느영나영’과 가요·팝송들이 연주되면서 50평 남짓한 카페 안은 열기로 가득 찼다. 1시부터 시작된 것이 벌써 4시가 훨씬 지났다.
지휘와 작사와 편곡을 담당한 백태기씨(56·작곡가)는 “음악 경력이 30년 이상 된 사람들이 풍문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해 지난 9월부터 이곳에서 연습하고 있다”며 “대중에게 제주민요·가요·팝송 등을 편곡해 연주하고 음악을 생활화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뭉쳤다”고 했다.
#밤무대 밴드로 철새처럼 살아
배 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부르던 코흘리개 소년 현충헌씨는 중학교 시절 아버지로부터 “네 동생 데려왔다”면서 선물로 건네주시는 색소폰을 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음악을 하되 예술적·철학적 사고를 담고!’. 이는 현씨를 비롯한 당시 오현밴드부원들의 가슴 한 켠에 자리잡았던 모토였다.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려던 현씨의 꿈은 기울어진 가세(家勢)때문에 더 이상 키울 수 없었다. 서울로 직행한 현씨는 클래식 연주 대신 가요·팝송 등으로 무장한 밤무대 가수로 전전했다. 밤무대 밴드들이 밟은 땅은 어느 곳이든지 그의 생계 터전이었다. 현씨뿐 아니라 한라에코재즈밴드 부원들 대부분이 속칭 ‘물 좋은’ 야간 업소를 찾아 철새처럼 살았다.
배곯고 어려운 시절, 인적이 드문 곳에서 연습하다 과로로 흘린 피와 눈물을 보면서 “내 삶은 왜 이렇게 꼬였어?”하며 자학도 했지만 사이키 조명 현란한 무대 위에서 반짝이 의상을 걸치고 연주하는 순간은 바로 희망이었고 ‘영혼을 건드는 자’들의 행복이었다.
#메마른 땅에서 꽃이 필 때까지
그렇게 전전했던 음악인들이 왜 이곳에서 뭉쳤을까.
부원 지기택씨(50·소프라노 색소폰), 이기석씨(50·피아노)는 노래방이 생겼던 지난 10년 간은 “밤무대 가수들의 암흑기”라고 말했다. 생음악을 고집하는 이들을 받아주는 업소가 점점 줄어들고 기껏 해 봐야 결혼식, 환갑잔치에나 불려나가 분위기 맞추는 몇 곡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연명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 벌어도 조금은 내 좋아하는 고장에 가서 하자”. 그래서 이곳을 흘러 들어왔다.
도내 곳곳에서 각자 업소의 음악을 하던 그들은 “제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일까”에 대한 갈증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그들의 바람이었던가.
한라에코재즈밴드는 지난 해 결성된 자생 연주단체. 현씨가 제 고향에 내려와 만든 것이다. 처음 5명으로 시작한 한라에코재즈밴드는 1년 동안 15명으로 불어났다. 10명이 귀동냥으로 듣고 합류한 셈이다. 그동안 국제관악축제 찬조출연부터 시작해서 경찰위문공연, 어멍무용단 정기공연시 우정출연 등을 계기로 이름이 서서히 알려졌다. 최근엔 말(馬)많은 경마장에서 기획공연도 가졌다.
그들은 제주에서 뿌리내리고 실용화된 음악을 연주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실용음악은 민요나 가요, 팝송 등을 편곡을 하거나 재즈형식으로 고쳐서 보다 세련되고 자유롭고 풍부한 음색을 갖고 연주하는 것이다. 제주민요가 좀더 세상에 알려지려면 시대에 맞게 옷을 갖춰 입혀야 한다는 것이다. 관악제의 고장, 기후나 산·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 음악의 생명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들이 던진 싹이 거친 이곳 토양에서 꽃을 피울는지 두고봐야 할 일이다.<글=김미형·사진=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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