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살아 숨쉬는 곶자왈] 7. 저지곶자왈 <1> 역사문화유적

저지곶자왈은 옛 주민들에게 숯 생산과 방목 등 먹고 살기 위한 경제활동의 무대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사진은 소·마를 먹이기 위한 '촐왓'을 구분하기 위해 쌓은 경계 돌담으로 저지곶자왈을 남·북으로 가르며 길게 조성돼있다. 특별취재팀

일회용숯가마 2기 발견…곰·작대기·말숯 등 제작
소·마 먹일 '촐' 재배 위해 척박한 땅 일궈 밭 조성
벳바른궤 등 동굴서 철기-근·현대 이용 유물 발견

제주시 한경면에 위치한 저지곶자왈은 숯 생산유적인 숯가마와 주거유적인 '벳바른궤' 등 다수의 동굴, 농경유적인 산전터와 돌담, 머들(돌무더기의 제주어) 등 옛 주민들의 생활사를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유적들을 품고 있다. 특히 근·현대에 들어서며 숯 생산과 방목 등 먹고 살기 위한 경제활동의 무대로도 이용되는 등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 그 자체였다.

1950년대 가장 절정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는 저지곶자왈 내 시험림에는 일회용 숯가마 1기가 자리하고 있다.

주변보다 약 3m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외부 51㎡·내부 7㎡·직경 2m 내외의 소형 숯가마터다.

또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북고남저' 형태의 타원형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시험림 남동쪽에서도 일회용 숯가마 1기가 확인됐다.

외부 규모는 28㎡로 시험림 내 일회용 숯가마보다 작지만 내부 규모와 직경은 각각 10㎡와 2.3m로 더 크다.

주변보다 약 2m 낮은 평평한 지형에 조성됐으며, 주위에 숯가마 벽체로 추정되는 돌들이 널브러져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일회용 숯가마는 '흙숯가마'로 불렸으며, 사용 시기는 1940년대 말에서 1960대 초반으로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50년대로 전해지고 있다.

흙숯가마에서 생산된 숯들은 굽는 방식에 따라 곰숯과 작대기숯, 말숯으로 구분되며, 말숯은 고도의 기술력과 함께 오랜 시간과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특히 저지리 마을 주민들은 청수리와 산양리 등 주변 마을 주민들로부터 '숯장사'라고 불릴 만큼 숯 생산 활동이 활발했다.

촐 키워 마·소 먹여

저지곶자왈 내 대표적인 농경유적은 산전터와 경계 돌담, 머들 등으로 소·마 방목 등 목축활동과 연관된다.

예부터 저지곶자왈에서 방목을 해왔던 마을 주민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돌들을 쌓아 올려 소·마를 먹이기 위한 '촐왓'(꼴밭)을 조성했다.

저지곶자왈에서 확인된 산전터는 모두 2기로 촐을 재배했던 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촐왓을 일구기 위해 불필요한 돌들을 한 곳에 모아둔 머들도 다수 발견됐다.

각자의 촐왓을 구분하기 위해 쌓아 놓은 경계 돌담은 저지곶자왈을 남·북으로 가르며 길게 조성돼 있다. 특히 총 길이가 확인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커 저지곶자왈에서 목축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유적으로 보존 가치가 크다.

높이는 성인 남성의 가슴까지로 비교적 높은 편이며, 겹담 형태의 타 곶자왈 내 돌담과 달리 홑담으로 쌓여 있다.

동굴유적인 벳바른궤에서 발견된 옹기 파편들. 특별취재팀

생업 공간이자 주거장소

저지곶자왈에서 확인된 동굴유적은 모두 10기다.

저지곶자왈을 지나는 올레14-1코스 인근에서 발견된 '벳바른궤'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터널형 용암동굴이다.

입구는 폭 2.3m·높이 1.7m이며, 동굴의 북쪽과 동쪽에 협소한 출구가 나있다. 

벳바른궤의 높이는 1.6~1.7m로 일어서서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으며, 채광 범위 역시 12.4m로 넓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탐라시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경질토기와 고내리식토기가 확인됐으며, 옹기조각과 백자 등 그릇류에서부터 제주4·3 당시의 탄피 등 다양하게 발견됐다.

벳바른궤의 북동쪽에 위치한 무명1굴과 무명2굴에서도 고내리식토기의 일부 조각이 확인됐으며, '오설록' 북쪽의 무명3굴에서는 철기시대에서 탐라시대 사이에 제주지역에서 주로 사용됐던 항아리형 외반구연토기 조각도 발견됐다.

동굴에서 발견된 유적들을 토대로 저지곶자왈 내 동굴유적에서 실제 주민들이 거주했거나 이용한 시기를 유추해보면 기원전 200년인 탐라형성기에서부터 근·현대까지로 약 2000년에 걸쳐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은 "동굴은 외부의 적과 자연 재해로부터 방어에 유리한 천혜의 공간으로 사람은 물론 동물들의 은신처로도 널리 이용돼 왔다"며 "곶자왈 내 동굴들은 해발고도와 지진환경에 따라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하고 있어 옛 선조들의 생업의 공간이자 주거장소로써 손색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한 권 정치부·고경호 경제부 기자 / 자문=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