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누구한테 맡겨야 하지?” 매일 출근전쟁을 치러야하는 맞벌이 부부들은 또 한번 국지전에 몸살을 앓는다. 다름 아닌 탁아문제 때문이다.

 젖먹이가 있는 가정은 눈 딱 감고 탁아시설에 맡기면 되겠지 하지만 어째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친정·시댁 어른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를 남의 손에 키우면 아이가 정을 모르고 산다며 탁아시설에 대한 인식이 곱지 않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아이를 직장에 데려다 키울 수는 없는 노릇.

 직장과 탁아사이에서 시소를 타야하는 요즘 엄마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칫 정에 굶주릴까 불안한 눈초리다.

 오랫동안 손주들을 돌봐온 아기업개 할머니들을 통해 요즘 젊은 엄마들의 정을 가늠질 해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손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를 돈을 주고 시설에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두 살 박이 손녀를 보살피고 있는 강춘심씨(52·이도동)는 한창 재롱을 떠는 손녀가 귀엽기만 하다.

 손녀의 부모는 둘 다 직장을 다니는 전형적인 맞벌이 부부. 하지만 아이의 탁아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처음에는 탁아시설에 맡겨 볼까 생각하던 차에 ‘할머니 품이 그래도 안전하다’는 강씨의 권유로 선뜻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부탁하게 됐다.

 “직장 일로 바쁜 자식들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는가. 그래도 저녁이면 꼭 부모들 곁으로 보낸다. 애들은 부모의 정을 알아야한다. 할머니가 아무리 잘 돌본다고 해도 어디 부모만 한가”

 24시간 부모와 떨어져 있는 것은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강씨의 생각이다.

 “기저귀 한 번 갈아줄 때 제아무리 더러워도 손주 엉덩이 보면 그냥 빨아주고플 정도로 귀여운 것이 조부모의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강씨는 아기업개를 해서 사례비는 받느냐고 묻자 “개미의 골을 빼먹지 어떻게 자식들이 피같이 번 돈을 받는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바쁜 몸이지만 봐달라는데 어찌 거절하나
 김갑생씨(79·표선면 신흥2리)는 노인대학, 교회봉사활동 등 자신만의 생활로 바빴다.

 그러나 자식들이 ‘탁아소’운운하자 “그러다 애들 탈나면 어쩌냐”면서 아기업개를 선뜻 응했다.

 며느리가 하루 종일 밭일을 했기에 두 살 터울인 두 손녀는 고스란히 김씨의 몫이었다.

 1살 박이 아이가 우유가 그리우면 그 아일 업고 3살 손녀의 손을 잡고 밭으로 갔다.

 “땡볕 때문에 혹시 젖먹이에 해가 될까봐 윗 손녀는 내내 양산을 들고 있게 하면서 며느리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김씨는 아이가 엄마의 체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내내 강조했다.

 “요즘 일부 엄마들은 젖을 물리면 제 몸이 망가진다면서 일찌감치 우유를 먹이는데 아이가 고무 젖꼭지를 물면서 무슨 정이 깃들겠는가”

 ‘한 이불 속에서 엄마와 나누는 살과 살의 대화는 입에 물려주는 우윳병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는 커서도 결코 비뚤어나갈 수가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내 아이 키울 땐 아이가 오줌을 싸서 내 옷이 흥건히 젖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혹 아이가 감기 들까봐 밤새 작업을 해야했다”

 그 작업이란 아이가 깨지 않게 일어나는 일에서부터 마른 이불 쪽으로 아일 옮기는 일, 자신은 옷이 젖은 채로 누워 그대로 날을 새는 것이다.

▨손자를 아예 맡아야 했던 부모들
 옛 엄마는 철의 여인인가. 이완순씨(72·서귀포시 중문동)는 외아들의 자식 두 명을 초등학교에 차례로 들어갈 때까지 돌봤던 사례를 가지고 있다.

 이혼을 하고 육지로 돈을 벌러 나간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자들의 아기업개 노릇을 해야했다.

 포대기에 싼 채 물건 주 듯 핏덩이를 넘겨주고 떠나버린 며느리를 원망할 수만은 없었다.

 “부부가 정이 떨어져 헤어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손주가 뭐 모른 채 배시시 웃는 것을 보니 왜 이 험한 세상에 나왔는지 측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로부터 받아야하는 따가운 시선을 묵묵히 참아내면서 우유 사다 먹이고 아이가 잘못 될까봐 늘 노심초사하면서 어르고 다독여 주었다. 이씨는 ‘조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진다’는 말을 행여 듣게 될까봐 이를 늘 염두에 두면서 조심해야했다.

▨자식들아, 아이들에게 정 듬뿍 주어라
 평소 자녀를 키울 때 너무 고생을 했던 사람들은 손주 돌보는 것을 꺼려한다.

 심지어 ‘내 할 일도 있고 이젠 좀 편하게, 신경 쓰지 않고 살고싶다’면서 아기업개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 조부모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부모는 자신의 손주들을 떠맡아 키우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자식들의 사회활동을 위해 자신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보육시설이나 개인 탁아시설에서 키우는 것을 별로 미덥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젊은 부부들은 자녀교육이나 여러 편의성을 내세워 탁아시설에 맡기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어른 눈치 안보고 치른 대가만큼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작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정’이라는 데 있다.

 독립심을 기른다면서 아기 방에 따로 재우고 탁아소에 맡기거나 일찌감치 젖병이 엄마 젖을 대신하는 모습들이 조부모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기계가 아니고 살아있는 따스한 생명체인데 엄마의 정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온갖 사회성에 일찌감치 길들여지는 것이 조부모들에겐 영 탐탁치가 않다.

 어른들은 ‘일도 좋고 독립심도 좋지만 예전,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일은 아예 뒷전이던 시절을 생각하면 요즘 엄마들은 너무 편한 삶을 산다’는 얘기들을 자주 한다.

 자신들에게 아기를 맡아 키우게 하는 일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함 없이, 아낌없이, 몸 사리지 않고 헌신하는 부모의 모습을 어른들은 아직도 기대하고 있다.<글=현순실·사진=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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