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물·안소룡이물·새물통 중심으로 나눠 방목
옛 저지리 주민들 숯장사로 불리는 등 생산 활발
벳바른궤·개탕지목·몰묻은밭·쇠눈빌레 등 전승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는 마종오름 주변의 강정물과 명리동의 안소룡이물 및 새물통 등 크게 3지역으로 나뉘어 방목이 이뤄졌다. 저지곶자왈 내 지명들도 마을 주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방목지에 따라 기억되고 있다. 특히 곳곳에 분포하고 있는 봉천수는 목축뿐만 아니라 옛 주민들의 숯 생산 범위를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냥꾼 총 훼손된 '총벌른곶'
저지곶자왈을 지나는 올레14-1코스 인근에서 발견된 '벳바른궤'는 햇볕이 비치는 궤(동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
벳바른궤의 채광 범위는 주위 동굴에 비해 비교적 넓은 12.4m로 동굴의 특징이 지명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곶자왈에서의 방목이 '물'을 중심으로 구역화될 만큼 저지곶자왈은 봉천수가 많은 게 특징이다.
암반 위에 웅덩이처럼 패인 돌혹에 고였다고 해서 명명된 '돌혹이물'을 비롯해 마중오름 앞·뒤에 위치한 '앞새물'과 '뒷새물', 우마 400두가 마실 물이 고였던 '강정물' 등이 대표적이다.
또 작은 용(龍) 모양처럼 생긴 '안소룡이물'과 나무가 우거져 그늘진 '어둔흘' 인근의 '어둔물' 등 수많은 봉천수들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주민들의 식수와 우마용 물로써 역할했다.
골프장 및 관광지 개발로 사라져버린 옛 지명도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의 라온골프장 부지에는 사냥꾼들이 사냥하다 총이 훼손된 곳이라는 의미의 '총벌른곶'과 지대가 높아 우마를 살펴볼 수 있었던 '벨란지동산', 탱자나무가 자생했던 '개탕지목' 등이 있었다.
꼴밭에 넓적한 돌이 있어서 명명된 '너분팡'(팡돌아진밭)은 옛 주민들이 대정에서 돼지 등을 사서 몰고 오거나 무거운 짐을 지고 마을로 돌아오다 넓은 돌 위에서 쉬었던 곳으로 지금은 유리의 성이 조성되면서 사라졌다.
또 유리의 성 주차장 부근의 '젯단'은 마을에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마을제를 지냈던 곳으로 현재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외에도 마을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는 '앞가시에 노루가 울면 비가 온다'는 말의 '앞가시'는 가시나무와 덩굴이 엉클어진 가시자왈을 이르는 말이며, 바람이 잘 통해 소들이 누워 있던 곳인 '쇠눈빌레', 일제강점기 일본 장군의 애마가 묻혀있는 '몰묻은밭' 등도 구전돼 오고 있다.


여성들도 숯 구워
곶자왈을 끼고 있는 저지·청수·산양리 3곳의 중산간 마을 중에서 저지리 주민들의 숯 생산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근 마을에서 숯을 굽는 저지리 주민들을 '숯장사'라 일컬었는데다 청수리와 산양리 마을과 달리 여성들까지 숯을 제조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남성들의 경우 벗이나 친척, 마을 동료들과 작업을 했다면 여성들은 가족과 함께 숯을 구우러 다녔다.
여럿이 숯을 구우러 가더라도 개별적으로 숯가마를 축조해 생산했다. 워낙 생활이 어렵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숯을 구워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제주4·3 당시 1948년 10월 중산간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진 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생계 수단으로 마을 주민 대부분이 숯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저지리 마을 주민들은 너분팡, 붉은 동산, 보난물, 강정물 등 저지곶자왈 내에서 주로 숯을 구웠다. 일부 주민들은 숯을 생산하기 위해 마을에서 직선거리로 6~7㎞ 떨어진 당오름까지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하기도 했다.
숯이 완성되면 가족들이 집에서 기르던 말을 끌고 와 숯을 운반했으며, 말이 없는 집은 소를 이용하기도 했다. 숯의 양이 많을 때는 말 3~4마리가 동원됐다. 구운 숯은 모슬포와 한림 오일장에 가서 팔았다. 한림 오일장보다 군인과 가족들이 거주하는 모슬포장에 가야 값도 잘 받고 빨리 팔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팀=한 권 정치부·고경호 경제부 기자 / 자문=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

전문가 기고 / 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
지난 2012년부터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저지곶자왈을 비롯해 청수·무릉·구억·신평곶자왈을 아우르는 한경곶자왈에 대한 지속적인 학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곶자왈 학술조사팀은 '역사고고학 조사연구팀'과 '인문지리학 조사연구팀' 등 두 팀으로 구성됐다.
역사고고학 조사연구팀은 한경곶자왈 내 역사문화유적 분포 현황을 조사하는 등 종류와 성격을 파악하고 있으며, 저지곶자왈 내 '볏바른궤' 동굴주거유적, 구억곶자왈 내 숯 생산공장(돌숯가마·2차 숯제조장·숯막) 및 수혈식 움막, 서광곶자왈 내 돌숯가마 등 대표성을 띠는 중요 유적들을 실측 조사했다.
인문지리학 조사연연구팀은 목축·사냥·숯 제조 등 생활 문화적 측면의 변화와 이용 실태, 역사문화자원의 존재 형태와 가치 평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또 고지도·탐라지·향토지 등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곰숯가마의 실제적 재현과 함께 재현 기록의 보전에 대한 연구, 1970년대 이전의 마을 공동목장의 변화와 실태 파악, 곶자왈과 주민생활에 관한 스토리텔링 소재의 개발과 활용, 지오투어리즘과 생태관광을 융복합한 '지오-에코 투어리즘'(Geo-Eco Tourism) 도입 등을 제안키도 했다.
결국 이러한 연구 결과물을 통해 곶자왈 자연 생태와 역사문화유적을 하나로 묶는 '제주 곶자왈의 자연생태와 역사문화유산 생활사 자료관' 건립 등 곶자왈 내 역사문화유적에 대한 지속가능한 보존 및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