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산책 20. 해릴린 루소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감금 증후군'으로 온 몸에 마비가 온 주인공이 한 쪽 눈커풀을 깜빡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잠수종과 나비'.

시대 편견과 싸우는 자신의 한계 고백
평범한 일상에서 찾은 삶의 해법 제시 

"네 꿈이 뭐니"

청소년을 위한 자아성장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한 남학생이 '20년 후의 어떤 하루를 묘사해보라'는 주문에 이렇게 적었다. "20년 후 나는 아내와 딸 둘과 살고 있을 것이다. 6시에 퇴근을 해서 저녁을 먹고 아내, 딸 둘과 공원 산책을 할 것이다.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텔레비전을 보며 놀 것이다" 이런 글을 누군가 읽었다면 이렇게 재미없는 삶이라니 하며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읽는 순간, 미소가 내 안에서 흘러나왔다. 아주 평범한, 그런 일상을 이 학생은 꿈꾸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즉 꿈을 이야기 할 때, 학생들은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물으면, 대체로 "00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좀 더 구체화된 대화를 이끌어가고자 "왜?" "어떻게?" "지금의 나는?"을 연달아서 묻게 된다. 그러면 질문이 재미없다는 듯 짜증을 내는 게 태반이다. 오히려 "선생님이 너무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닌가요?"라는 눈빛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런 삶을 꿈꾸는지, 그런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신의 현재 처지, 조건, 사회의 요구 등은 무엇인지, 어떻게 반응하고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탐색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조급한 물음이 밀려오다가도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을 하기엔, 생각을 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 자체가 사치가 돼버린 시대인 것이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아이들을 생각 없이 살게, 생각하지 않으며 살도록 조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에 대한 탐색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며 다니고 있다. 

글쓰기의 힘

얼마 전, 고마운 단비처럼 내 고민에 방점을 찍게 한 책이 있다. '글쓰기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단연코, '그렇다'고 확신을 얻게 된, 해릴린 루소의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하는 책이다. 장애인 인권 운동가, 심리치료사, 작가인 해릴린 루소가 이 시대의 편견과 싸우고 있는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에세이집이다.

루소는 사회가 한 개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타자화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문체가 투쟁적이거나 아프다고 질질 짜지 않는다. 담담하고, 때로는 유머스럽기도 하여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유머는 고통과 정면으로 부딪쳐본 자만이 갖는 여유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을 몸으로 써내려가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루소는 그럴 수 있는 비결을 '글쓰기의 힘' 덕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릴린 루소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녀의 60여년 삶은 장애인을 연민 혹은 괴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의 투쟁 그 자체였다. 그는 '생긴 그대로의 나', 혹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가엾다" 혹은 "대단하다"는 동의어로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했다. 그런 시선에 저항해 분투하는 삶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용기 있는 삶이란

해릴린 루소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를 느낀 부분은 '내가 대단하지 않은 이유'에 관한 글이다. 루소는 아주 평범한 여성이다. 남편을 소개할 때는 잠시 격앙된 목소리가 느껴지고 텔레비전 범죄 드라마의 열렬팬이며, 충격적일 만큼 발이 크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녀의 발은 290㎜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겠다. 물어보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나는 집세 낼 것을 걱정하고, 초콜릿을 과다 섭취하고 숨길 수 없는 주름살에 호들갑을 떠는 그런 사람이다. 이래도 내가 대단해보이는가?"

루소는 사람들이 그녀의 행동이나 몸에 대해 "대단하다"거나 "용감하다"거나 하는 말에는 심히 심기가 불편해짐을 느낀다고 한다. '뭐가 대단하다는 말인가? 그냥 걷고 있는 것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단다. "그건 내가 온갖 장벽, 바리케이트, 그러니까 당신들이 뭔가를-아마도 자기 자신을-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신과 나 사이에 둘러치는 몹쓸 것들을 다 참고 견디면서 동시에 제때 집세를 내고 다크초콜릿을 음미하는 삶을 누리고 있어서다."

세상이 친 벽들에 무수히 부딪치면서도 제때 집세를 내고, 초콜릿을 음미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는 말, 참 의미있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편견, 벽들이 있음에도 하루하루 참고 견디면서 집세를 걱정하고, 맛있는 저녁밥을 그리면서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루소의 말을 빌리자면, "용기 없는 사람은 견디지 못할 삶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용기 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혹여 자신의 삶이 지루하고, 고루해서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해릴린 루소의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용기 있는 삶이 무엇인지, 아주 평범한 데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해릴린 루소

1946년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자 여성 운동가, 심리 치료사, 작가, 화가이다.

브랜다이스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경제기회국에서 일했다. 이후 심리 치료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던 중 뇌성마비 장애인은 심리 치료사로서 부적격하다며 연구 과정 이수를 거부당한 것을 계기로 장애인 인권 운동에 몸담게 됐다.

사회적 편견과 불의에 맞선 그녀는 보스턴 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뉴욕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고, 뉴욕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연구소에서 심리 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장애인 인권 운동, 특히 장애 여성과 소녀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YWCA/NYC의 '장애 여성 및 소녀들을 위한 네트워킹 프로젝트'를 설립했다. 현재 '디스어빌러티 언리미티드(Disabilities Unlimited) 컨설팅 서비스'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중 차별 : 특수 교육에서의 성 형평성 문제에 대하여」(공동편집), 「장애인이고 여자인 내가 자랑스럽다!」 등이 있다. 오랫동안 장애인 인권 운동에 헌신한 바를 인정받아, 2003년 미국 여성사 프로젝트가 매년 3월 '여성사의 달'을 맞아 선정하는 열 명의 모범적인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장애 여성으로서는 첫 번째 수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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