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도시' 오스트리아 그라츠 1. 중세도시 형태 보존

고속도로 개설·자동차 우선정책 반대…구도심 보존운동 불씨
지방정부, 강력한 보호법 제정…'옛 건축물과 조화' 원칙 고수

오스트리아 그라츠시는 9세기부터 동서 유럽의 관문이었다. 1999년 그라츠 구도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2003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면서 그라츠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공존을 위한 노력이 부각되고 있다.

△동서 유럽의 관문

오스트리아 남동쪽 슈타이어마르크주의 주도인 그라츠시는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반경 50㎞ 동쪽으로는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남쪽으로는 슬로베니아와 인접해 있는 인구 25만명의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다.

그라츠시는 중세도시의 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특히 그라츠시를 관통하는 무르강 동쪽의 구도심은 전형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해발 473m의 슐로스베르그 언덕을 중심으로 구릉을 따라 상점가가 줄지어 있다. 평지로 내려오면 시청, 성당,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 도시가 전개된다. 구도심은 르네상스 양식의 엄격한 형식미가 인상적인 예수회수도원, 바로크 양식의 지붕과 외벽의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가 잘 어울리는 상가 건물, 탈르네상스 건축양식인 매너리즘 양식의 페르디난드 2세 유해안치소 등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다. 

V자를 거꾸로 한 모양으로 꺾인 붉은 지붕들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그라츠시 구도심(역사지구)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도시의 역사성을 공인받았다. 

이와 함께 그라츠시내 구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한 에겐베르그성도 그라츠시의 문화유산 보전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1656년 그라츠에서 태어난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가 이 성을 지었다. 성은 사계절을 상징하는 4개의 탑과 12개월을 뜻하는 12개의 출입문, 1년 52주와 365일을 의미하는 52개의 방과 365개의 창문이 있다.

△개발정책 반대

그라츠시 구도심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9세기부터 동서 유럽의 관문역할을 했던 그라츠시는 다양한 문화가 교류되는 도시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있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침범했을 때도 도시는 파괴되지 않고 유지됐다.

이처럼 역사·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음에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그라츠시 구도심 보존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당시 그라츠시 시장이던 구스타브 쉐르바움이 '친자동차 정책'을 적극적으로 앞세우면서 구도심의 중심 도로이자 보행자도로였던 헤렝게세를 왕복 4차선의 자동차도로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면서다.

또 구스타브 쉐르바움은 그라츠시 외곽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자 구도심 보존운동의 불씨가 일게 됐다.

시장의 이 같은 정책에 언론과 시민들은 '그라츠 구도심 보존운동'으로 맞섰고 논쟁이 가열됐다. 결국 개발정책에 주력했던 구스타브 쉐르바움은 1973년 시장선거에서 낙선했고 점차 보행자 우선 정책, 역사유산 보존 정책을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힘을 받았다. 

이후 슈타이어마르크주 그라츠시 구도심 보존을 위한 보호법을 만들었다.

그라츠시의 구도심 보존정책은 상당히 강력하다. 건물 증·개축 때 주위의 역사적 건물보다 층고를 높이 올리면 안된다. 또 증·개축을 위해서는 슈타이어마르크주, 그라츠시 등 4개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정책이 도시의 활기를 잃게 만든다는 일부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라츠시는 오래된 건물 사이의 조화를 깨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인터뷰] 다니엘라 리탁 코디네이터

"구도심 개발과 보존의 핵심은 도시의 품격유지다"

다니엘라 리탁 그라츠시 소속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코디네이터는 "기록상 그라츠시가 조성된 것은 1129년이지만 실제로는 더 오래됐다"며 "독일과 발칸반도의 중간지점이기 때문에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도시"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구도심 보존을 위한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니엘라 리탁은 "유네스코의 규칙이 없어도 될 정도로 주정부에서 제정한 법률이 더 엄격하고 강력하다"며 "창문 하나를 새로 만들려고 해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할 정도로 정부에서 제정한 법률이 더 강력하다"며 "법이 없다면 세계문화유산은 제대로 보존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도심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신축 건물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구도심 개발정책의 핵심인 도시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역사적 가치가 있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의 조화를 깨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라츠 구도심과 에겐 베르그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일반시민은 물론 청년과 학생에게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세계문화유산도시가 지속 발전할 수 있다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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