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도시' 오스트리아 그라츠 2. 공존의 가치 실현

무르강 동·서쪽 이질적 공간구조…사회적 불균형 심화
전통·현대 정체성 확립…쿤스트 하우스·무어인젤 건축
과거·현재·미래 연결…구도심과 차별화 도시개발 착수

오스트리아의 제2의 도시 그라츠시는 '엄격함'이라는 독일 문화권 특징과 '개방성'이라는 발칸 문화권의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통과 현대성, 개발과 보존처럼 함께 하기 어려운 양면적 가치들이 공존하는 것이 그라츠시의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도심 불균형 발전

그라츠시를 관통하는 무르강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구도심인 동쪽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많은 건물이 많다. 요새에서 출발해 발달한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해발 473m의 슐로스베르그 언덕을 중심으로 구릉을 따라 상점가와 고급 주택가, 대학이 들어서 있다. 그라츠시의 모든 행정·문화·종교·교육·상업시설도 구도심인 무르강 동쪽에 밀집해 있다.

이 때문에 중세시대부터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중심 무대였고, 지금도 중산층과 상류층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다.

반면 무르강 서쪽지역은 과거 가난한 이민자들과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다. 과거 이 지역에는 기차역과 공장·양조장·제련소 등의 산업시설, 정신병원과 감옥 등이 있었다. 여전히 홍등가의 흔적도 남아있고, 건물 임대료도 동쪽 지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무르강 동쪽과 서쪽의 공간구조는 완전히 이질적이고, 사회·경제적 불균형도 극심했다. 그라츠시는 이 같은 무르강 양안 문제 해소를 위해 오랜 기간 고민했다. 그 결과 무르강 서쪽 지역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역사와 미래의 만남

그라츠시는 무르강 서쪽에 1848년에 지어진 철제건물과 그 옆 공터에 1998년부터 미래적 디자인의 현대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바로 '쿤스트하우스'다.

그라츠시는 1980년대 현대미술관 건립계획을 추진했지만 두차례나 무산됐다. 무어강 동쪽에 미술관을 짓는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가뜩이나 동서 격차가 심한데 미술관마저 동쪽에 건립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그라츠시가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무르강 서쪽에 현대미술관 건립 계획이 급물살을 탔다. 문화예술적으로 소외된 곳에 현대미술관을 건립해 '예술을 통한 사회의 통합과 균형발전, 공존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건축가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는 무르강을 두고 이질적으로 발전해온 도시의 역사와 혁신적인 디자인을 합성, 2003년 쿤스트하우스를 완성했다.

'친근한 외계 생명체'로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형태의 쿤스트하우스는 1000년 역사의 도시의 해묵은 과제였던 무르강 동·서간 이질감과 사회적 불협화음을 해소시키면서 그라츠시의 문화적 위상에 공존의 가치를 더했다.

건물 상층부의 '바늘'이라는 전망대는 강 건너 구도심과 소통을 의미하고 있다.

쿤스트하우스의 가치는 또 있다. 완공과 함께 주변에 고급 레스토랑과 상점, 영화관, 식당, 카페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도시의 새로운 문화의 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동서간 화합

미술관인 쿤스트하우스와 함께 무르강 동·서간 화합을 의미하는 인공섬 '무어인젤'도 주목받고 있다. 

유럽문화도시 선정을 기념해 설치된 이 조형물은 '공존과 통합'이라는 그라츠시의 정책을 대변한다. 강을 중심으로 동·서쪽 강변에 연결된 철제 다리가 이 섬을 고정하고 있는데 다리의 길이는 양안까지 모두 30m로 동일하다. 도시 동서의 균형발전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 섬 모양도 양쪽 강변에서 팔을 뻗어 거센 물살 위에서 힘차게 악수하는 것을 형상화 한 것으로, 섬 중앙에는 카페와 공연장이 들어서 있다. 

그라츠시는 최근 무르강 서쪽에 '라이닝하우스 프로젝트'라는 도시개발계획에 착수했다. 1980년대 문을 닫은 맥주공장 부지를 매입, 전통의 구도심과 차별되는 현대적인 시가지를 꾸미겠다는 20년 계획의 장기 프로젝트다. 

그라츠시는 이를 통해 도시의 동쪽(구도심)은 역사문화적 전통을, 서쪽은 현대성을 각각 정체적으로 발전시켜 이를 통해 갈등과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터뷰] 베르트람 베를레 건축개발국장

"새로운 건축물들이 역사적인 건축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미래에는 의미가 있는 유산으로 후손에 전해질 수 있다"

베르트람 베를레 그라츠시 건축개발국장은 "신축 건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보다는 엄격한 규제를 통해 기존 건축물과의 조화를 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기 때문에 도시의 이미지와 역사성을 유지하는데 민감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그라츠 역사지구 서쪽에 들어선 쿤스트하우스와 도심을 관통하는 무르강에 건설한 인공섬 '무어인젤'을 꼽을 수 있다"며 "시민들 사이에서 이들 건축물들은 그라츠의 미래를 위한 선물로 불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르트람 베를레 국장은 "쿤스트하우스는 기존 건축물과는 파격적인 외관을 갖고 있지만, 오래된 도시 속에 신기하게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무르강의 인공섬 무어인젤은 2003년 그라츠시가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조형물이었지만 지금은 그라츠시의 대표적인 명소"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의 다양한 문화양식의 건축물을 보존하고 지금 세대에 지어지는 최고 수준의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면 그라츠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의 가치를 미래에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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