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국장

증학교 역사1·2, 고등학교 한국사 등 정부의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공개됐다. 교육부는 다음달 23일까지 현장 검토본에 대한 여론 수렴을 마치고 향후 현장 적용방안을 결정해 발표한다는 방침이지만 앞날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 전국적으로 반발이 거센데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직접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계의 경우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부가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면서 밝힌 것과 달리 '균형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는 교과서'라고 볼 수 없다는데 따른다. 공개된 국정교과서는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이 주장해온 건국사관으로 "1919년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정신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항일 독립운동의 의미 축소와 친일·독재에 대한 미화도 지적되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에서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설명이 무려 9쪽 가량 할애되면서 '효도 교과서'란 비아냥까지 받고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 등을 부각하고, 5·16 쿠데타 세력의 6개 혁명공약을 별도 글로 상세히 소개하는가 하면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찬양 수준'으로 자세히 담았다. 반면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은 "기본권은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의해 제한되었다"고 짤막하게 서술하는데 그쳤다.

이에 반해 극우세력이 끊임없이 폄훼했던 제주4·3의 경우 단 7줄로만 언급돼 도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욱이 '1948년 4월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고만 기술하면서 4·3의 발생 원인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현재 학교에서 채택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기존 검정교과서가 별도 글, 참고자료, 사진, 각주를 통해 당시 시대상황과 4·3의 발발 배경, 수만명에 이르는 도민들의 무고한 희생, 특별법 제정 등을 다루고 있지만 공개된 국정교과서는 단지 '국회가 4·3특별법을 제정했다'는 2줄짜리 짤막한 각주를 달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번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정부가 밝힌 것처럼 균형있는 역사관을 담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각에 맞춰 생산한 역사만을 담은 '그들만을 위한 역사교과서'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날 함께 공개된 집필진은 편향성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31명의 집필진에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대거 포함된데다 6명으로 이뤄진 현대사 분야에는 정통 역사학자가 단 한명도 없이 전원 비전공자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은 '정부가 하나의 역사를 보급해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논리에 따른다. 하지만 역사는 어느 시대에 누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이를 정부에서 강제하고 한 방향으로만 가르치겠다는 것은 역사를 독점하겠다는 생각과 같다. 이는 곧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춘 국정교과서로 역사에 대한 해석과 기술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통해 사고의 탄력성과 창의적 역량을 키우게 된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무한 상상력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런 까닭에 전 세계적으로도 북한 등 국민들의 생각을 통제해야 하는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면 단일 역사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거의 없다. 

'역사는 거울'이라고 했다. 우리는 과거라는 거울에서 현재를 보고, 현재라는 거울에서 과거를 보며 미래를 예측한다. 그리고 그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보고,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는 정부 등 특정세력이 아닌 바로 국민들이 결정할 일이다.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야 할 학교 교육을 정부의 눈으로 재단하는 것은 또 다른 독재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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