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산책 23. 린다 몰라리 헌트 「가족연습」

혼자만의 벽 쌓던 열두살 소녀 주변과 교감
성찰·치유로 발전…따스한 말 한마디 중요

거리 두고 기다려주기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 상태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빈말인걸 알면서도 어떤 땐 흐뭇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했겠구나 싶다. 

「가족연습」의 주인공 칼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자란, 말장난과 독설을 즐기는 까칠한 12살의 여자아이다. 하지만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꿈꾸는 민감성을 지닌 아이이기도 하다. 

칼리는 새 아버지를 화나게 해서 폭력을 휘두르게 만들고, 그 폭력에 동조한 엄마로 인해 잠깐의 기억을 잊어버릴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새아버지의 폭력은 칼리가 섣부르게 쏟아버린  거칠고 부정적인 말들 때문이었다. 폭력으로 인해 새 아버지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되고 엄마는 몇 달간 재활이 필요할 정도로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칼리는 위탁 아동으로 머피네 가정에 맡겨진다. 모든 생활과 상황들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환경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받은 상처들은 큰 흔적과 아픔을 남겼다. 

칼리의 엄마는 칼리를 잘 돌보지 않았다. 칼리의 성격이 거칠고 반항적으로 된 데는 엄마의 잘못도 있었던 것이다. 칼리가 처음 유치원에 간 날,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아 밤늦도록 유치원에 남아 있어야 했고, 엄마가 파티를 열 때면 화장실 욕조에 밤새 웅크리고 있어야했다. 그리고 칼리가 반대한 새 아버지와 결혼했다. 12살이 된 칼리에겐 세상의 전부이던 엄마를 믿지 못하게 되는 일까지 겪게 된다. 

하지만 머피 부인은 칼리에게 따뜻하고 소중한 엄마의 모습을 선물한다. 삐딱하게 굴어도 화내거나 나무라지 않고, 늘 다정한 눈빛으로 칼리의 슬픔과 외로움을 살피고 위로해 준다. 처음에 칼리는 자신에게 따스하게 대하는  머피 부인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다. 엄마가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고 믿는 칼리에게 세상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믿지 못할 대상이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자신이 받을 상처와 아픔에 대비해 미리 방어막을 치는 칼리. 머피 부인은 그런 칼리가 안타까웠다. 모두가 상처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리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지니고 있는 토니와의 교감을 통해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머피 부인의 따뜻한 말에도 그 뒤에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며 방어막을 치던 칼리였지만 말이다. 혼자만의 벽을 쌓고 지내던 칼리가 조금씩 주변과 소통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이해하게 되고, 마음의 어둠도 치유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내 안의 장벽 허물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누구 하나 내 맘 같지 않고,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을 털어놓고 살기가 힘들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런데 마음의 벽을 허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내 안에 쌓인 장벽을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장벽은 대체로 상처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일 수도 있고, 살면서 이래저래 겪게 되는 갈등, 이해받지 못함, 무시당함과 같은 경험들 때문이다. 그것은 가족 안에서 생길 수도 있고, 학교에서, 동네에서, 지역사회 등 둘 이상의 관계가 맺어지는 단위에서는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경험이다. 인간 모두는 개별적 존재이며, 이해관계, 욕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모두가 하나가 돼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나와는 다른 이들,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되지 못하는 일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의 어우러짐으로 채워지고 있다. 다르기 때문에 더 조화로울 수 있다. 누군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그가 처한 환경이 나와 다른 조건, 처지이기 때문일 수 있다. 마음이 안맞는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고, 속깊은 대화를 하다보면 오해가 풀리기도 하고, 오히려 남다른 정이 생기기도 한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상처가 많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머피부인이 칼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멀리 돌아가더라도 거리를 두고 기다려주기, 요즘처럼 모든 게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지혜인 것 같다. 

진심만이 통한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어지럽다. 집안에서나 나라안에서나 소통이 어려운 현재를 살고 있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풀어보고자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표현하기 시작했다. 함께 하는 걸음의 가치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동안 먹고사는 일이 급하다며 주변을 돌아보거나 나라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위기의 극점에 이르니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삶 혹은 내 가족의 일에만 매몰돼 주변도, 나라도 살피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 표현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내 아이만 잘된다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무조건 '공부 공부' 했던 것은 아닌지, 정치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면 된다고 생각해왔던 것은 아닌지…. 비로소 나로부터 반성과 함께 내 주변까지 보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따스한 한마디가 더욱 필요한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느껴지는 게 있고, 알게 된 것들이 있으면 표현을 해야 한다. 글로든 말이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걸어가기 위한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다. 그렇다고 완벽한 소통은 쉽지 않다. 우리는 완전한 개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기에 나의 마음, 너의 마음, 나의 이익, 너의 이익 모두가 고려돼야 한다. 공존이야말로 변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가족 연습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 진심어린 반성과 성찰이 있다면 소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진심만이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 작가 소개    

린다 몰라리 헌트

린다 몰라리 헌트는 전직 교사이자, 'FPSP'(Future Problem Solving Program)에서 시나리오 집필 코치로 활동해 왔다. 또한 어린이 책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작가 수련회를 열고 있다. 「가족 연습」은 데뷔작이며, 코네티컷에서 활동하는 어린이 책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태시 월든 상'을 수상했다. 코네티컷에서 남편과 두 아이, 극성맞은 개 비글, 비글을 싫어하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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