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산책 24. 「진짜 친구가 되는 법」 「애너벨의 신기한 털실」

진짜 친구가 되는 법
염소 아주머니와 동물친구 소개
수많은 인연속 가치관 성찰 눈길

애너벨의 신기한 털실
흑백 마을에 색 입힌 작은 행동
대가 없는 노력 '마음의평화'로

카톡 창을 열어본다. 가족과의 일상적인 대화창, 오래된 친구와의 시시껄렁한 대화창,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사무적인 단체 대화창들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대로 줄줄이 따라 올라간다.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내 살아온 역사인 것 같아 차마 지우지 못한 오래된 창들도 곰팡내를 풀풀 풍기며 끄트머리에 붙어 있다. 미련스럽게 쥐고 있던 대화창들이건만, 손가락 방향을 바꿔 밀자 툭 소리 하나 없이 너무나도 쉽게 삭제돼 버린다. 다시는 열어볼 일 없는 창들을 하나 하나 지우면서 사람들과의 인연을 생각한다. 지워지는 이름들 속에는 소중한 사람도, 보기 싫은 사람도,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연연해하던 인연을 툭툭 끊어내며, 그 사람들처럼 쌓아두고 돌아보지 않았던 책 더미 속으로 손을 뻗는다.

많은 인연 속 진짜 인연

「진짜 친구가 되는 법」에도 많은 인연이 등장한다. 그 인연들은 염소 아주머니의 밀크로 이어진 인연들이다. 염소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 동물 친구들에게 자신의 밀크를 나눠 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염소 아주머니에게 밀크가 나오지 않게 된다. 동물 친구들은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갔고, 염소 아주머니는 큰 슬픔에 빠진다. 울며 잠이 든 염소 아주머니 옆을 밤새 지키며 함께 한 작은 새 한 마리, 새는 열매를 따서 염소 아주머니를 먹게도 하고, 잠 못 이루는 염소 아주머니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한다. 염소 아주머니는 새에게 왜 밀크도 나오지 않는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새는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며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염소 아주머니가 주는 밀크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염소 아주머니를 좋아해요. 밀크가 안 나오더라도 염소 아주머니는 소중한 내 친구잖아요. 그렇지요?" 

작은 새의 보살핌으로 염소 아주머니의 밀크는 다시 나오게 되고, 동물 친구들은 다시 염소 아주머니에게 찾아와 미안함과 고마움의 말들을 건넨다. 염소 아주머니는 전과 다름없이 밀크를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별말씀을, 우린 친구잖아요" 라고 방긋 웃으며 말한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이어진 보이지 않는 끈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자를 수 없는 것도 있고, 이미 너무 삭아 거의 끊어져버린 것들도 있다. 그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셈을 하기도 한다. 내가 친구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절반이라도 돌려받으려는 심보가 생기기도 하고, 간당간당한 끈을 이어보려는 시도에는 또 다른 속내가 숨어있기도 하다. 욕심이 있는 사람인지라 손은 괜찮다며 열심히 휘젓고 있으면서도 눈꼬리는 쉽게 내려가지가 않는다. 

이렇게 셈하는 관계 속에서 염소 아주머니 같은 사람은 늘 손해를 본다. 밀크를 받는 친구들은 차츰 받는 것이 당연해지고, 어느 순간엔 권리처럼 여기게 된다. 밀크로 맺어진 인연들은 밀크가 나오지 않게 되면 자연스레 끊어지고 만다. 그 속에서 상처받는 것은 밀크를 나눠주던 염소 아주머니다. 받던 친구들이 도리어 인상을 쓰며 등을 돌려버린다. 하지만 인연을 연결해주던 매개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 진정한 벗이 남게 되는 법이다. 밀크 때문이 아니라, 나의 친구이기 때문에 염소 아주머니를 찾아왔던 작은 새. 그 새가 다른 수많은 친구들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됐다.

나의 생활을 들여다본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돌려받지 못한 감정들에 서운해 하던 내가 보인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것을 해주기를 바라던 내가 서있다. '내가 호수만큼의 물을 너에게 쏟아 부어줬으니, 너는 나에게 연못만큼의 물이라도 주어 나의 마음을 적셔야 마땅하지 않나' 하는 일말의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충족되지 못한 나의 마음은 가뭄에 갈라진 땅처럼 날카롭게 금이 가 상대를 메마른 눈으로 쏘아보게 됐다. 상대는 영문도 몰랐을 것이다. 당연해진 관계 속에, 나에게 무언가를 받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가 100을 해 주었는데 5도 바뀌지 않는 상대를 보며 셈하고 억울해하는 마음은 품어봐야 내 속만 상할 뿐이다. 나의 필사적인 노력이 상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자만과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상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 노력으로 나를 바꾸는 것이 오히려 더 쉽게 마음의 평화를 얻어내는 길이라는 뜻이다.  

욕심을 걷어낸 묵묵한 행동의 힘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나의 질문에 답을 준 책이 「애너벨의 신기한 털실 」이다. 애너벨은 어느 날 털실이 든 조그만 상자를 하나 발견한다. 그 털실은 애너벨의 스웨터를 뜨고도, 강아지 마스의 스웨터를 떠 주고도 계속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애너벨은 자신을 놀려대는 친구 네이트에게도, 네이트의 강아지에게도 스웨터를 떠 준다. 그래도 줄지 않은 털실로 애너벨은 반친구들, 자신을 혼내는 선생님, 가족,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스웨터를 떠 준다. 겨우내 짧은 옷을 고집하는 크랩트리 아저씨에게는 털모자를 떠 주고, 그래도 남은 털실로는 마을의 동물들 옷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옷을 입지 않는 물건들에게도 스웨터를 떠 주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눈 덮인 흑백의 작은 마을은 파스텔 빛 색깔들로 아름답게 물들어 간다. 이 소식을 들은 높은 귀족이 애너벨의 털실을 훔쳐가지만, 귀족의 손에 들어간 털실 상자 속엔 털실이 없다. 분개한 귀족은 애너벨에게 행복은 없으리라 저주하며 상자를 버려버린다. 상자는 물길을 따라 애너벨에게 돌아가고, 애너벨은 다시 털실을 뜨며 행복에 젖는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묵묵히 털실을 떠가는 애너벨은 결국 마을에 빛깔을 찾아줬다.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작은 손으로 털실을 엮어가는 작은 행동이 온 마을을 바꿔놓은 것이다. 어떠한 욕심도 바람도 없었다. 고요한 손놀림이 평화를 가져다주고, 마을에 온기를 심어놓았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담담히 해낸 것뿐이다. 

타인에 대한 기대를 걷어내고, 내가 위치한 자리에서 내 할 일을 해나가는 예사로운 행동이 마음에 평화를 들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단, 그것은 애너벨의 뜨개질처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한다. 원하지 않는 일을 단순히 타인을 위해, 혹은 관계의 유지를 위해 억지로 해나가는 것은 내 마음에 불편함을 남기고, 그것은 결국 불만이 돼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기꺼운 마음으로 남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은 내 마음에 생명의 물을 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기쁜 마음으로 내 안의 밀크를 타인에게 나눠주고, 털실을 한 코 한 코 묵묵하게 뜨는 날들이 이어지면, 언젠가는 작은 새 한마리 날아와 노래를 부르고, 내 마음도 평화로운 파스텔 빛깔로 물들어 있는 순간이 선물처럼 찾아와 주지 않을까. 장지영 독서 치유 모임 '산책' 회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