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1. 프롤로그

피처럼 붉은 동백꽃이 송이채 툭툭 떨어지듯 안타까운 목숨들이 이유도 모르고 세상을 떠난 지 이제 60여년. 그동안 국가 원수의 사과와 추념일 지정 등의 작업이 있었다. 하지만 제주4·3 70주년을 앞두고 '암묵적 봉합'을 반성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상생을 위해서는 국정교과서의 단 몇 줄짜리 기억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감춰졌던 것들인 만큼 제대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기록으로, 그 기록을 다시 유산으로 만드는 작업이 절실하다. 제민일보는 올해 '평화'와 '인권' 화두로 제주4·3에 역사적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으로 '4·3 70주년'을 준비한다. 

△ 아직 흔들리는 '제주4·3'

그동안 제주4·3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제정과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발간, 제주4·3평화재단 출범, 제주도민과 희생자 유족에 대한 대통령 사과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국가추념일까지 지정됐지만 누구도 제주4·3이 완전 해결됐다고 말하지 못한다.

보수단체 인사들은 4·3특별법과 일부 희생자 결정에 대한 위헌 및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과 망언으로 끊임없이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첫 국가추념일인 66주기(2014년)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않으면서 4월이면 정부의 과거사 청산 의지를 묻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말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속 제주4·3은 현대사 속 짧은 언급에 그쳤다. "제주도에서는 1947년 3·1절 기념 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1948년 4월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4년 9월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는 내용은 희석·왜곡 서술 논란과 더불어 4·3 희생자와 유족은 물론 도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 '정명찾기' 요구 부활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 4·3단체 내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열린 4·3평화재단의 제6회 제주4·3평화포럼과 ㈔제주4·3연구소(이사장 김상철) 주최의 제주4·3 제68주년 기념 학술대회 등에서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4·3 70주년'을 말했다.

1990년대 이후 진상규명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포괄적 개념의 '4·3'으로 불려지고 있을 뿐 여전히 '4·3'의 성격을 규명할 올바른 이름이 없다는 반성이 바닥에 깔렸다. 추념일 지정을 기점으로 양극화된 진실규명 움직임과 제주 안에서도 잊혀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불거졌다. 국가적 폭력에 대한 배.보상 문제를 구체화하자는 논의도 나왔다.

보다 필요한 것은 상징적 의미의 추념일이 아니라 제주 4·3을 바르게 공감할 수 있는 계기다.
몇 번을 강조하지만 제주4·3은 기억 그 이상이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비극은 살아남은 이들과 학자.연구가, 언론에 의해 기록화됐다. '기록'의 범주 역시 활자는 물론이고 문화예술·사진·영상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과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또 후세에 남기는 것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필요성을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 그중 근·현대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 현대사 최초로 2011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5·18기록물)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이 됐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의 5대 원칙이 모두 관철된 예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산가족찾기 기록이나 새마을운동 자료도 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기록유산 등재로 '평화의 섬' 각인

제주에서도 유의미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세계섬학회와 제주대 세계환경과섬연구소,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은 지난해 11월 대만을 방문해 대만국립중앙대학 역사연구소와 대만 2·28재단과 함께 제주4·3의 발단이 된 1947년 3·1시위와 3·10 총파업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받은 328명의 재판 기록을 대만 2·28 관련 자료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연구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이들 단체는 오는 2018년 1월1일부터 펀드를 만들어 4년간 공동기금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4·3 유족 등은 기록유산 등재 작업을 평화재단에 건의한 상태다.

오는 3월9일 제주대학교에서 제주4·3과 관련된 컨퍼런스를, 같은 날 도교육청은 미국 세계사 교사 등을 초청해 미국 교과서에 실린 제주4·3을 중심으로 컨퍼런스를 열고 제주4·3의 기록유산 등재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더 이상 방법이 없고,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는 말로 차례를 미룰 수는 없다.

금기시됐던 제주의 역사는 1988년 제민일보 4·3취재반의 노력으로 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역시 기록이다. 이들 기록이 단순한 제주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보편타당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역사로 기록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인터뷰] 나간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제주4·3 기록이 세계의 인권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지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지역사회의 역사에 더욱 빛나는 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나간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제주4·3 기록은 인간의 존엄과 국가폭력의 만행을 상기하게 하는 제주도민의 위대한 역사자산"이라고 평가했다.

나 관장은 "5·18기록물의 기록유산 등재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추진주체가 활동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의 확보가 충분하지 못함으로써 적극적인 활동에 한계를 보였고 국내 반대세력의 방해책동을 막아내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록유산에 등재, 한 지역이나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전 인류가 공유해야 할 세계사적 역사 유산으로 공인됐다"며 "지역민에게는 드높은 자긍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고, 특히 5·18항쟁을 폄훼하고 왜곡해왔던 수구보수의 반대세력들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한 효과를 수반했다. 말하자면, 전국화의 장벽을 세계화를 통해서 극복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4·3의 기록유산 등재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나 관장은 "등재추진주체의 확고한 정립과 충분한 지원체제이고 다음은 추진에 필수적인 정보, 특히 유네스코의 구조와 작동체제 및 비교가 되는 다른 사례들의 등재과정 및 내용검토가 중요하다"며 "특히 4·3항쟁에 관한 정품 원본자료의 충실한 확보가 관건이라고 본다"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근래에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국가와 단체들이 급속히 증가해 그만큼 경합이 거세지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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