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2. 기록유산

한국 13건 기록유산 등재…타 지자체 등 추가 등재 노력
4·3, 2013년 세미나 이후 진전없어…최근 물밑 움직임도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한 4월, 제주 섬을 붉게 물들였던 제주4·3이 올해로 69주기를 맞았다. 하지만 제주4·3 70주년을 목전에 둔 지금, 누구도 제주4·3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첫 단계로 모두가 피해자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화해와 상생의 공동체 정신을 공유하며 평화와 인권의 미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제주4·3의 기록을 세계 공동의 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남았다. 도민들의 가슴에 남은 응어리진 기억을 기록으로, 그 기록을 다시 후세와 세계인을 위한 '유산'으로 만드는 작업이 절실하다.

△ 유네스코 '세계의 기억' 사업 시작

유네스코(UNESCO)는 기록유산의 보존에 대한 위협과 이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세계 각국의 기록유산의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1992년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사업을 시작했다.

세계기록유산은 영향력, 시간, 장소, 인물, 주제, 형태, 사회적 가치, 보존 상태, 희귀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된다.

기록유산은 일국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세계적인 중요성을 갖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선정된다.

또는 전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 및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관련된 기록유산도 있다.

△ 한국의 기록유산

인류 모두의 소유인 세계의 기록을 미래세대에 전수하기 위한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처음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해례본'을 시작으로 2001년 '승정원일기'와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2007년 '조선왕조 의궤',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2009년 '동의보감', 2011년 '일성록'과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3년 '새마을운동 기록물'과 '난중일기 : 이순신 장군의 진중일기', 2015년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특별생방송-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등 모두 13건이 등재됐다. 한국은 현재 중국(10건)과 일본(5건)을 제치고 세계 공동 4위, 아시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추진 중인 기록유산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 등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관련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마치고 올해 등재를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또 4·19혁명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이미 '4·19혁명 UN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등의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이들 단체를 중심으로 국제학술토론회를 갖는 등 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제시도 나서 한국전쟁 당시 기록물을 모아 거제포로수용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기록과 민주화 관련 기록물 등의 등재 추진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 멈춘 제주4·3 세계화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적극적으로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제주4·3 세계화의 시계는 멈춰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직후인 지난 2011년 12월 제주4·3기록물 기록유산 관련 토론회를 갖고 같은 해 5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과정을 소개했다.

또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도의회는 지난 2013년 3월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출범 20주년 기념해 '새 정부의 4·3해결과제 및 4·3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주제로 공동 정책세미나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후 논의는 진척되지 못했고 제주4·3의 세계화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 기록유산 등재 움직임 꿈틀

이 같은 상황에서 제주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세계섬학회와 제주대 세계환경과섬연구소,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은 지난해 11월 대만을 방문해 대만국립중앙대학 역사연구소와 대만 2·28재단과 함께 제주4·3의 발단이 된 1947년 3·1시위와 3·10 총파업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받은 328명의 재판 기록을 대만 2·28 관련 자료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공동 등재를 위한 연구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이들 단체는 오는 2018년 1월1일부터 펀드를 만들어 4년간 공동기금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4·3 유족 등은 기록유산 등재 작업을 평화재단에 건의한 상태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이문교)도 지난 2일 대회의실에서 시무식을 갖고 올해 국민 4·3 의식조사를 통해 4·3의 미래방향을 설정하고 평화 정신의 숭고한 가치를 국제사회에 확산하기 위해 4·3자료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키로 했다.

금기시됐던 제주의 역사는 1988년 제민일보 4·3취재반의 노력으로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기록하는데 까지는 성공한 셈이다. 어렵게 세상과 마주한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통해 화해·상생의 공동체 정신을 공유하며 화해·인권의 미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제주4·3의 세계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인터뷰] 고창훈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제주4·3 기록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4·3역사를 공식화하고 세계화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고창훈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제주도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시대의 인권 탄압 사례로서의 세계사적 의미와 이를 극복하는 진상규명의 세계사적 의미를 같이 생각한다면 제주4·3의 세계사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947년 3·1시위가 제주4·3의 도화선이 됐다"며 "제주4·3 관련 기록은 물론 '비폭력 평화시위'로 상징되는 3·1시위 당시 재판기록이나 신문기록 등의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로 4·3의 위상이 정립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를 통해 4·3흔들기나 왜곡문제 등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투옥된 로벤섬의 감옥이 복원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며 "제주도 주정공장이나 다랑쉬굴, 4·28 화평회담 현장 등과 백조일손지지, 북촌리 학살현장 등의 유적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문제를 함께 검토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 교수는 "4·3이나 해녀, 자연유산 등은 모두 힐링을 상징한다"며 "유네스코 등재는 다크투어리즘과 평화섬보트산업 등 관광을 바탕으로 한 평화산업에 기여하고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 모델로서 평화교육의 허브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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