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산책 29. 용기를 주는 그림책

진실이 참된 가치임을 깨닫는 자세 필요
험한 시대에 갖춰야 할 용기 담긴 교과서
현대의 우리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수많은 눈들에 둘러싸여 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버리는지 곳곳에 숨어있는 감시카메라들이 우리의 잘못된 행위를 잡아내기 위해 24시간 분주히 돌아간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욕구는 속도위반 카메라 앞에서 누그러지고, 요일제를 무시하고 가져다 버리고 싶은 재활용 쓰레기는 CCTV와 경고문이 두려워 그냥 베란다에 꾸역꾸역 쌓아두기로 한다. 이제 더 이상 사회는 인간의 양심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사회는 더 이상 양심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양심은 카메라로 통제하면 그만이다.
소유할 수 있는 물질적 요소가 삶의 가치의 기준이 된 지금의 시대에 보이지도 않고, 나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도덕적 마음 따위는 어쩌면 빼버리고 싶은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저 제도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만 행하는 것이 가장 필자에게 이득이 되는 양심의 행동범위라는 생각마저 든다.

양심이 사라진 사회
최근 TV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이것이다. "본 적 없다. 한 적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거짓말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때로는 역정을 내가며 힘줘 말한다. "그런 적 없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고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에 있는, 소위 높은 사람들이 온 나라에 울려퍼지도록 목소리 높여 거짓말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차마 아이에게 양심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양심의 가치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거론될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양심에 관한 그림책을 읽어준다. 나의 욕심을 버리고 양심을 지키면 끝끝내 복이 온다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읽어주며 내면에 이는 작은 소용돌이를 무시하려 애를 쓴다. 필자 역시 양심에 관한 그림책을 찾다가, 뻔한 줄거리들에 감흥없이 책을 덮어버린 적이 여러 번이었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우연히 나타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가 존 크라센이 그린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에 나오는 모자 쓴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그랬다. 남의 모자를 훔쳐 쓰고 달아나는, 양심없는 그런 작은 물고기다. 배경은 지금의 우리나라를 연상케 하는 짙은 어둠의 바다. 물고기가 없다면 바다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검은 빛의 바다다. 그 속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커다란 물고기의 모자를 슬쩍 훔쳐 키 크고 굵은 물풀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곳으로 도망간다. 그 곳에 숨으면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다. 물론 누군가가 도망가는 자신을 보긴 했지만 비밀로 해주기로 약속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모자를 훔치는 게 나쁘다는 건 알아. 이게 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냥 내가 가질래. 어쨌든 커다란 물고기한테는 너무 작았어. 나한테는 요렇게 딱 맞는데 말이야"
모자의 주인인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의 예상과는 달리 일찍 잠에서 깼고, 모자가 없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고, 작은 물고기가 지나간 방향을 순순히 일러바친 것으로 인해 작은 물고기가 숨어 든 물풀 속으로 순식간에 찾아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물풀들 밖으로 유유히 헤엄쳐 나오는 큰 물고기의 머리 위에는 작은 물고기가 훔쳤던 그 모자가 씌워져 있다. 그리고 그림 어디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찾을 수 없다. 보이는 것은 물풀 뿐이다. 그것이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이다. 작은 물고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결말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 섬뜩한 기분으로 차마 책을 덮지 못할 것이다.
필자도 작은 물고기의 형상을 찾아 물풀들 사이사이를 코를 박고 눈으로 헤집어 봤다. "어린이 그림책이 이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결국 작은 물고기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이게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 올바른 현실적 결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훔쳐 달아나는 작은 물고기의 독백 속에선 어떠한 양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한테 어울리는 것이니까 당연히 나의 것이라는, TV에서 보이는 어른들의 생각과 같은 이야기를 내뱉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믿으며 물풀 속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는 것. 결국 작은 물고기는 발견됐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우리가 바라는 현실의 그림이 이 책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사람은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변명에만 급급한 사람은 용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
처음의 으스스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왠지 박하사탕 한 알 살살 녹여먹는 개운함마저 느껴진다.

행동하는 양심의 힘
데미라는 중국의 작가가 그린 「빈 화분」은 앞서 말한 거창한 결말의 양심 이야기다. 꽃을 사랑하는 나라의 임금이 꽃을 잘 키우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기로 하고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꽃씨를 나눠 준다. 주인공인 핑이라는 아이도 화분에 꽃씨를 심고 예쁜 꽃을 피우고자 애를 쓴다.
하지만 꽃씨는 싹조차 틔우지 않는다. 약속한 날이 되고 아이들은 아름다운 꽃을 피운 화분을 하나씩 품에 안고 궁궐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임금님이 준 씨앗은 모두 꽃을 피울 수 없는 익힌 씨앗임이 밝혀지고, 정직하게 빈 화분을 들고 온 핑이 후계자가 된다.
여러 어린이 책에서 조금씩 다른 줄거리로 다뤄지는 인기있는 소재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는 거꾸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른이 읽기에는 너무나 허무맹랑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책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빈 화분을 들고 와 왕에게 이유를 고하는 핑의 이 말 때문이었다. "임금님께서 주신 씨앗을 심고 날마다 물을 주었지만, 싹이 나지 않았사옵니다. 더 좋은 화분에 더 좋은 흙을 담아 심어도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꼬박 한 해를 돌봤지만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꽃이 없는 빈 화분을 들고 온 것입니다. 이 빈 화분이 제 정성이옵니다"
빈 화분의 사연을 당당하게 말하는 용기, 필자는 핑에게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용기의 힘을 느꼈다. 핑은 꽃을 피우지 못한 화분을 그냥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냥 집에서 슬퍼하고 앉아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왕을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부지게 말한다. 이 험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양심이 우선 갖춰야할 것이 바로 이 용기가 아닐까. 용기있는 양심. 그것으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행동하는 양심 말이다.
지난 늦가을부터 밝혀진 촛불은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지금도 꺼질 줄 모르고 있다. 작은 촛불로 진실을 밝히려 하는 열망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여들게 했다. 그 발걸음이 사라져버린 이 시대의 양심을 찾아내고, 양심을 지킨 자가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증명케 할 것이다.
물질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힘이 더 크다. 양심은 세상을 밝힌다. 나는 그 힘을 믿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