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산책 30.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살아남은 여성들의 목소리
침묵을 강요받았던 그녀들의 절규로 완성된 걸작
설 연휴 기간에 강정 마을 올레길을 걸었다. 설 준비로 분주했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이어진 발걸음이 강정 마을 안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노란 깃발이 비에 젖었고, 생각보다 바람은 따스했다. 구석진 밭담 아래에서 냉이들이 금방이라도 고개를 내밀 것 같은 싱그러움이 좋았다. 물웅덩이에 비친 그림자, 몽돌로 이은 담, 여느 집 강아지, 계곡 아래 고양이… 모든 것이 평온했으나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트럭 한 대가 휘익하고 내 옆을 스치더니 하우스 귤밭 앞에 세웠다. "삼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써예" 운전자는 나이 든 아주머니였고, 아마도 밭주인에게 설명절 선물을 건네는가 싶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나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전쟁으로 인한 참혹상이야 한 두 번 들은 게 아니고, 영화로, 책으로도 많이 봤다. 그런데 이 작품이 주는 충격은 '삶 그 자체를 담고 있다'는 그것, 전쟁은 몸에 대한 역사요, 내가 느낀 것은 몸의 충격이었다. 그것이 나를 강정마을로 이끌었던 모양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쟁에 참전했던 200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해 싸웠다. 하지만 전쟁의 역사에서 여성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잔다르크와 같은 영웅론은 만의 하나다. 흥행 영화에서처럼 대개의 경우, 스파이나 섹스 스캔들로 여성을 폄하하고 대상화한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여성이 전쟁의 역사에서마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반쪽의 역사만 서술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한 전쟁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담보로 하고 있는 것임에도 죽음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전쟁의 서사를 정당화하는 행태일 것이다.
전쟁에서 남자와 여자의 다름은 무엇인가. 여자들은 전장에서도 사람을 보고, 일상을 느끼고, 평범한 것, 자연의 소리에 주목한다. 사람을 죽였을 때의 공포와 절망감이라든지, 전투가 끝나고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진 들판을 걸어갈 때의 끔찍함과 처절함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전장에서 싹튼 사랑 이야기, 구두가 사고 싶어 가게에 들어가 구두를 샀다는 순진무구함도 이야기한다. 그런 그녀들이 나이가 들고 이제와 전쟁 이야기를 하려니 어떤 감정이겠는가. "할 얘기가 뭐가 있겠어"라며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우린 눈이 멀었으면서 순수했어"라며 담담해지기도 하지만 몸에 각인된 슬픔, 절망, 억울함, 참혹함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고 누가 싸워서 이겨야만 한다고 가르쳤는가. 무엇을 위해서….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어… 어느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곳 숲 주변에 빨치산 병사들이 줄줄이 죽어 있는 거야. 그 때 독일놈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세상에,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말이 안 나와. 다들 갈기갈기 찢겨서… 내장은 내장대로 다 쏟아져나와 있고… 그렇게들 누워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게 보였어. 안장까지 그대로 얹혀 있는 걸로 봐서 빨치산 병사들 말인 것 같았어. 독일군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온 건지, 아니면 독일군이 미처 못 잡아간 건지 알 수 없더군.
녀석들은 멀리도 안 가고 근처에 머물렀어. 풀이 많았거든. '어떻게 사람이 돼가지고 말들이 보는 데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었지. 동물이 있는 데서 말들이 다 보았을 텐데…(중략) 폭격이 쏟아지는데 갑자기 염소 한 마리가 우리 쪽으로 뛰어든 거야. 녀석도 우리와 같이 바닥에 엎드렸지. 우리 옆에 엎드려서는 꽥꽥 비명을 질렀어. 폭격이 멈추자 녀석이 우리를 따라오며 우리한테 자꾸 달라붙는 거야. 저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 무서웠던 게지. 마을에 도착하자 우리는 마을 여인에게 염소를 부탁했어. '데려가세요. 불쌍해서요' 염소를 구해주고 싶었지…(본문중)"
자진해서 전쟁에 참여한 여성들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것은 생명 사랑이었다. 조국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놓겠다고 비장한 각오로 참여한 전쟁이었지만 그들이 아직도 기억하는 건 불길에 타오르는 들과 숲, 나무들, 짐승들의 울음소리였다. 아무 말 못하는 짐승들이 폭격에 맞고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건 풀 한 포기도 다 생명이라는 것. 즉,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몸에 각인된 피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들의 말을 받아 적은 것이고….
강정 마을 해군기지 앞에는 설명절 연휴임에도 천막을 지키며 군사기지화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겨울바람 세찬 천막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평화 활동가의 얼굴을 보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떠올렸다. 그들이 나눠준 마을 신문을 보니 벌써 3500여일이 넘어가는 기간 동안 평화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해군 제주기지'는 준공됐다. 그 사이 연인원 700여명이 경찰에 끌려갔고, 재판에 회부된 건수만 392건에 이르며 벌금액은 4억여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해군이 마을 주민들에게 35억여원에 달하는 구상권을 청구하고 있는 상태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주민들이 겪을 고통과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밥과 법'의 싸움에서 이길 승산 없는 싸움인데도 그들은 주저앉지 못하게 하고 있는 힘은 무엇일까.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농어촌 마을에 '왜 군사기지가 있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더불어 평화를 외치는 이들에게 '왜 구상권을 물어야 하는가' 하는 현실적인 물음까지 이어지면서 내내 불편했던 하루. 하지만 '삼거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서 또다른 불편함의 정체를 알게 됐다. 제주도민이면서 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갖지 못했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 이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으니 이제 행동할 일만 남아 있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이니까. 행동하는 자는 자유롭다. 더욱 잊지 말자.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서부의 스타니슬라브(現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태어났다.
1972년 대학졸업 후 지역신문사 기자와 공립 학교 교사로 동시에 근무했고 이듬해 민스크 지역신문에 취직한 후 저널리즘에 온전히 종사하기로 결정했다. 1976년에는 첫 서적 「나는 마을에서 떠났다」를 완성했으나 소련 정부의 융통성 없는 여권정책을 비판한 내용으로 인해 출판이 금지됐다.
단편, 에세이, 르포 등 다양한 문학장르도 시도했다. 벨라루스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가 개척한 '집단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영역에 영향을 받아 '있는 그대로의 삶을 묘사하는' 자신만의 문학방식을 모색하게 됐다. 1983년 탈고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방식을 도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