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공동체를 엿보다 1. 올해 첫 해남의 탄생


평균연령 70세 이상 잠수회
1년 수습 후 신입회원 가입
"상군 중심 문화 기본 바탕"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제주해녀가 공동체의 상징이 됐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강인한 생활력과 여성 중심의 해양문화에 '가치'가 보태진 것이다. 그렇다면 '해녀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본다.
# 공천포잠수회 해남 가입
정유년을 시작하자마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9번째' 제주해남(海男)의 탄생이다. 지난해 말 30대 해남까지 나온 마당에 9번째 해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싶지만 그 과정은 제주해녀의 공동체문화를 함축하고 있다.
공천포어촌계(어촌계장 오명찬)의 김형준·김은주 부부다.
아내 김은주씨가 먼저 공천포잠수회의 막내 해녀가 됐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해녀학교를 거쳐 '수습'을 자처했다. 몇 번 물질에 따라나선 뒤 간신히 "(물질)해도 되켜(되겠다)"란 말을 들었다. 인정을 받은 셈이다.
남편 김형준씨는 다른 절차를 밟았다. 처음에는 물질을 마친 아내를 돕기 위해 바다에 갔었다.
아내의 망사리를 들어주다 보니 옆에서 같이 작업한 삼촌들의 망사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순간 그 것도 그의 몫이 됐다. 프리다이빙 경력을 앞세워 몇 번 자맥질도 했다. 그러던 차에 해녀 삼촌 몇 명이 아내 김씨를 불렀다. "니 벗 해사지 않으크냐". 남편 김씨에게 수습의 기회가 주어졌다.
김씨 부부를 제외하고 공천포잠수회 평균 연령은 70세가 훌쩍 넘는다. 최고령 해녀는 올해 89세의 문인진·양두희 할머니다. 올해 잠수회장을 맡은 한복난 해녀도 상군이지만 올해 74세다.
막내 격인 김순주·현화순 해녀가 71세다 보니 "(해녀)탈의장에 가서 나이 자랑은 금물"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번 해보겠다'고 아내 김씨가 나섰을 때만 해도 "할 수 있으면 해봐라"했던 해녀 삼촌들이었다. 그렇게 1년여 수습기간을 거치고 '간신히' 잠수회에 이름을 올렸다. 남편 김씨는 사정이 더 했다. 주변에서 아는 사람은 다 말렸다.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품은 것은 다름 아닌 해녀였다.
# 소속감의 필요성
1년여 수습을 거치고도 잠수회 가입이 불투명하던 차에 어촌계 총회에서 최고령 해녀가 "잠수회에 필요하다"는 소리를 내고, 상군해녀가 "앞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 해남이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목숨을 의지하고 작업을 하는 이들의 동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예전에는 불턱 안에서 이뤄지던 일이지만 '상군'은 물질을 잘 한다는 의미 외에 도덕성과 어른으로 자질이 있음을 확인 받는 지위다. 그들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 절대적이다.
다만 조건은 있다. '당분간 더 이상의 후배는 없다'는 다짐과 '공천포를 떠나서는 물질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다.
하나는 갈수록 물건이 줄어드는 바다에 대한 노파심이고, 다른 하나는 해녀들 간의 불문율이다. 한 번 해녀로 인정받았다고 어느 바다에서나 작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규칙과 더불어 공천포 바다를 지켜달라는 바람을 담았다. 점점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아내 김씨 혼자 남을 것에 대한 걱정에 시작한 일이었다. 위급하거나 힘든 상황에서 손을 내어줄 '파트너'를 최소 1년을 지켜본 후에 결정했다.
해녀공동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촌계에 가입을 한다고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동료 의식과 소명, 책임 따위를 인정받은 뒤에야 비로소 '해녀'라는 소속감을 얻게 된다.
하나 둘 늘어난 해남이 벌써 양 손가락을 채워간다. 그들 역시 '해녀문화'라는 범주 안에서 나름의 민속지식을 쌓고 있다.
지역 언론의 사회적 역할 재확인 의미 |
| [해녀기획 한국기자상 수상] '지역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제민일보의 사명감이 다시 통했다. 한국기자협회(회장 정규성)는 6일 제민일보 해녀기획팀(고 미 문화부·한 권 정치부·이소진 편집부 기자) 의 '대하기획 인류무형유산 제주잠(해)녀-제주해녀 미래성장동력으로'(지역기획보도 부문)를 포함한 제48회 한국기자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제민일보 해녀기획은 이미 지난해 제315회(2016년 11월) 이달의 기자상(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을 수상하면서 지역 언론의 역할을 확인했다. 지난 2005년 시작한 해녀기획은 이후 내·외적 사적으로 팀이 분산되는 과정에서도 명맥을 이어가며 11년 넘는 장기 연재를 이어왔다. 사회적 관심에 앞서 '제주해녀'의 정체성(Identity)을 화두로 꺼내면서 그들이 품고 지켜온 민속지식과 정체성을 인정했는가 하면 문화동력의 가치 선점을 주문하며 지난해 11월30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11차 무형유산정부간위원회에서 '제주 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견인했다. '등재까지'를 목표로 하면서 옛 자료와 고문서를 뒤지는 일부터 도내 100개 어촌계를 직접 탐방하며 해녀들의 삶을 살피는 작업을 마쳤는가 하면 해녀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필요성과 전·현직 해녀들이 마을과 제주 사회에 끼진 영향을 확인했다. 1950년대 부터 1990년대까지 40년에 걸친 독도 물질사(史)를 완성한 것은 물론 자치단체 등의 관심에 한 발 앞서 '해녀문화'와 정책을 연결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2006년 6월 '제주해녀박물관' 개관과 2009년 '해녀문화 보존 및 지원 조례' 제정,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의 대한민국무형문화유산국가목록 '해녀'포함 등 일련의 과정을 발빠르게 보도했는가 하면 지역학으로 '해녀학'정립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등 제주해녀에 대한 도내·외 인식 변화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지역 공감대 확산과 적극적 대응으로 '살아있는 문화유산'과 나눔과 배려의 공동체성을 부각해왔다. 유네스코 등재 이후에도 제주 정체성으로 해녀문화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체계적 유산적 관리를 통한 전승·보존 필요성을 제안하고 방법을 제시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등 후속 작업을 진행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