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4. 광주 5·18 기록유산 등재

신군부 총·칼 앞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기록 '5·18'
과거 청산 모범사례…철저한 자료 수집으로 가능

1980년 5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서슬 퍼런 신군부의 총·칼 앞에 당당히 맞섰던 광주의 기록이 세계인의 역사가 됐다. 5·18의 역사성과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담고 있는 기록물을 통해 동아시아의 작은 분단국가 대한민국에서 군사정권의 폭압에 대항한 시민들의 분노, 눈물, 그리고 용기 등이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다. 5·18이 기억되는 과정을 살펴 제주4·3이 세계인의 기억에 아로새겨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 등재 과정

2009년 10월 5·18기념재단과 광주시, 전남대 5·18연구소 등은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와 관련해 협의를 시작, 2010년 1월 5·18 관련 단체와 기관, 국회의원 등이 공동으로 '5·18민주화운동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등재 추진에 나서게 된다.

2010년 3월29일에는 유네스코 본부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하고 이듬해인 2011년 1월30일 등재신청서 수정본을 다시 제출한다.

2011년 5월20일에는 국무총리가 주 유네스코대사에게 '5·18은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을 전달한다.

2011년 5월22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총회를 거쳐 사흘 뒤인 25일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등재를 최종 서명했다. 5·18이 발발한지 31년만에 광주시민들의 명예가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순간이다.

5·18 관련 기록물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록유산 갈래로 포함됐다.

△ 등재 기록물

5·18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는 5월의 가치와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유네스코에 등재될 기록물은 민주와 인권, 평화 메시지를 담고 있는 '5월 정신'에 초점이 맞춰졌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발발과 진압, 그리고 이후의 진상 규명과 보상 등의 과정과 관련해 정부, 국회, 시민, 단체, 그리고 미국 정부 등에서 생산한 방대한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기록물이다.

5·18 기록물은 △정부가 생산한 5·18민주화운동 자료 △군사법기관 재판 및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사진과 필름 자료 △시민들의 기록과 증언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 △국회 5·18 진상규명 회의록 △국가 피해자 보상 자료 △미국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등 9개 주제로 분류해 등재를 추진했다.

△ 등재 의의

5·18민주화운동은 불의한 국가 권력이 국민의 존엄성을 유린하고 권리를 짓밟을 때,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이며 반인권적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5·18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물론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 민주화 과정에서 실시한 진상규명 및 피해자 대상 보상 사례도 여러 나라에 좋은 선례가 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

세계의 학자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전환기의 정의'라는 과거 청산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사례라고 말한다. 남미나 남아공 등지에서 발생한 국가폭력과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과거청산작업이 단편적으로 이뤄진 반면, 광주에서는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피해 보상' '기념사업'의 5대 원칙이 모두 관철됐기 때문이다.

5·18 민주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룩하도록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선례를 따라 필리핀, 타이, 중국, 베트남 등 여러 곳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 제주4·3을 위한 시사점

이러한 과정을 거친 '광주5·18'은 최근 들어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제주4·3'에 시사점이 크다. 철저한 자료 수집과 검증 등의 준비과정을 통해 일부 보수단체의 4·3 왜곡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우선 여러 단체와 기관에 분산돼 수집·보관되고 있는 제주4·3 자료를 통합하고 재분류하는 '사료의 정리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제주4·3과 비슷한 성격의 세계기록유산 신청서를 수집하고 출력해 비교·분석하는 등 기존 신청서에 대한 면밀한 분석 또한 필요하다.

아울러 세계기록유산 심사는 현지에 대한 실사가 없고 완전히 신청서에 작성된 내용만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신청서 작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외에도 신청서 영문화 작업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도움, 심사위원 네트워크 구성, 반대 운동에 대한 대비 등이 중요하다.

4·3과 광주5·18은 국가폭력에 의해 인권의 처음이자 최종적인 생명권이 처참하게 유린된 현장이다. 이러한 점에서 공통된 현장을 기록한 역사 유산을 잘 간직하고 전파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3세계 국가들에게 전해줘 그들도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도움이 돼야 한다. 이는 유네스코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안종철 전 5·18기록물유네스코기록유산등재추진단장

"여러 단체와 기관에 분산돼 있는 자료들을 한곳에 일정하게 통합, 재분류하는 등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

안종철 전 5·18기록물 유네스코기록유산등재추진단장은 "제주에서 직접 보관하고 있지 않은 원본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기관이 등재 동의서를 발급해줄 것인지 걱정이고, 수구 보수세력이 반대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무마하면서 진행해 나갈 것인지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안 전 단장은 "등재추진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기록유산이기 때문에 기록물이 원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며 "그동안 광주에서는 많은 자료를 수집했으나 복사물도 많아 최대한 원본을 수집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했으며 만약 원본이 없을 경우는 원본을 소유하고 있는 기관의 동의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만원, 서석구 등 극우세력의 반대와 이에 동조한 집단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광주에 출몰해 분탕질했고 이 때문에 광주사건은 '광주폭동'이고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항의를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까지 방문해 전달했으며 심사위원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는 '방해공작'을 했다"며 "국무총리가 직접 총리훈령을 내리고 외교라인을 통해 정부가 보증하는 채널을 가동함에 따라 심사위원들에게 정부의 보증 공문이 전달되면서 심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안 전 단장은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이 한국 현대사 관련 기록물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며 "전두환 군부독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광주시민들이 굴하지 않고 5·18관련 자료를 꾸준히 보존해 왔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 등을 끊임없이 주장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과정의 기록물이 하나도 빠짐없이 축적됐다는 점에서 광주시민들의 공은 대단히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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