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산책 34.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아미엘의 일기」

스스로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가는 영혼의 발자취
사회적 통찰, 인간 내면의 반성, 고뇌가 담긴 걸작

매일 같은 음식만 먹으면 새로운 맛을 찾게 되듯이 독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사가 중심인 소설작품을 한동안 읽다가 요즘은 에세이, 시집, 일기나 명상록에 눈이 간다. 그 가운데 오랜만에 「아미엘의 일기」를 펼치니 주옥같은 사색의 향기가 진하게 전해온다. 특히 이런 구절들은 내 머리를 쿵하고 내리찍는다. "그렇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너무나 일을 가졌다. 너무 지나치게 활동한다. 걱정, 근심, 현학, 지시의 짐을 바다 속에 집어던지고 그전대로 단순히 어린이가 돼 감사의 마음으로 순진하게 행복하게 현재의 이때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렇다.

게으름뱅이가 될 마음씨가 필요하다" 「아미엘의 일기」 가 1800년대 중후반의 작품이니 이 시대도 지금처럼 바쁜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시대 격차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미엘은 제네바대학의 미학교수와 철학교수로 재직했는데, 그 인생을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1847년부터 죽을 때 까지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성찰적 삶을 살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아미엘의 일기」 다. 이 작품은 일종의 자아 분석서 혹은 수상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높은 지성과 예리한 감수성은 종종 시대와의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찬 시대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흔적이 「아미엘의 일기」다. 

"교만에는 단계가 있다. 하나는 자기가 자기를 시인하는 일, 또 하나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일. 아마도 이 후자 편이 한층 더 신경질적인 것이리라. 

즐거움과 자기와의 사이에 언제나 무엇인가가 그림자가 지나간다. 

진실될지어다. 이것이 웅변과 덕성의 비결이다. 윤리적 권위다. 예술과 생활과의 최고 격언이다. 

풀잎 하나하나에도 말할 이야기가 있고, 하나의 마음에도 그 소설이 있으며, 하나의 얼굴에도 그 미소가 슬픔을 덮고 하나의 생애에도 침이 든 가지든 비밀이 숨겨져 있다.

천국도 지옥도 세계도 우리 안에 있다. 인간은 위대한 심연인 것이다"(본문중)

무엇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작품을 읽으면서 명언이다 싶은 데에 밑줄을 긋고 다시 필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모르는 말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고, 누군가 전해줬던 것 같은 말들. 하지만 다시 읽은 「아미엘의 일기」는 아주 새로운 느낌과 의미로 다가온다. 

이를 테면 원래 알던 단어가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마음의 고통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일 것이다. 나의 생김새, 나의 재산, 나의 가족, 나의 직업 등 모든 게 못마땅하게 여겨진다면 사는 게 지옥 같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기분이 드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 아닐까. 타인의 평가에 우쭐해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인의 평가는 믿을만 한가. 상대는 나의 무엇을 알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하고 따져보면 설득력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상대방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거나 특정 가치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의 지나친 주관이라 폄하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즉 타인의 시선, 평가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말들도 마찬가지다. 눈이 작다, 크다의 기준이 어디 있는가. 상대적이다. 그리고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것이 내 인격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아무런 의미 없는 시선이며 평가이다. 전혀 쓸모 없는 말들이다. 그러니 마음 쓰지 말자. 아미엘의 말처럼, "천국도 지옥도 세계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해 자신을 그에 맞추는 삶은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의 욕망에 나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타인에 맞춰진 것이다. 그래서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한 것이다. 내 에너지의 집중을 타인에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내면이나 자연에 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풀잎 하나하나에도 말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풀잎 하나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뿌리의 사연, 바람의 언어, 구름의 여행, 우주의 진실과도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들은 다시 내게로 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골몰하게 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나의 결핍, 나의 감정, 나의 욕망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과의 진실한 대화가 필요해

자신과의 진실한 대화, 그것만이 마음의 평온과 새로운 힘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미엘은 "진실 될지어다. 이것이 웅변과 덕성의 비결이다. 윤리적 권위다. 예술과 생활의 최고 격언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책의 주인공과도 대화하고, 저자와도 대화하고, 시대와도 대화한다. 그런데 자신과의 대화가 빠지면 마치 재료를 냄비에 다 놓고 끓이지 않은 것과 같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을 가져다준다고 하지만 소화(대화)시키지 않은 좋은 책은 의미가 없다. 즉, 자신과의 진실한 대화로 이끌지 못한 책은 단순하게 줄거리나 요약을 통해 상식을 보태었다는 데는 의미 있지만 더 나은 삶 혹은 좀 더 행복한 삶과는 별로 상관없게 된다. 

「아미엘의 일기」를 읽으면서 자신과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자신과의 대화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줏대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타인과 세상의 가치, 관념, 이데올로기, 상술 등에 휘둘리는 삶은 속된 말로 가랑이가 찢어질 뿐 내 삶이 아닌 것이다. 불의에 찬 세상에 위로를 받고 싶거든, 세상이 확성기 소리에 정신에 없거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거든 오늘부터 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삶이 어제와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낙숫물의 위력을 일기를 통해 느낄 것이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1821~1881)

제네바 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가르쳤던 아미엘은 여러 권의 시집과 평론서를 냈다. 

아미엘은 프랑스계 스위스인으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후 그의 일기가 출판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 밑에서 자랐으며, 평생을 기관지염으로 고생했다.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이성과 공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특이한 성격 때문에 독신으로 살았다. 대신 그는 고독하고 복잡한 내면의 성찰과 명상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18세부터 죽기 직전인 60세에 이르기까지 삶이 담긴 「아미엘의 일기」는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이다.

그리고 자기분석의 즐거움과 기쁨을 담고 있는 영혼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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